아주짧은영화평/2012년 아짧평

[원 포 더 머니] - 어이없게 단순한 코믹 범죄물.

쭈니-1 2012. 4. 15. 01:37

 

 

감독 : 줄리 앤 로빈슨

주연 : 캐서린 헤이글, 제이슨 오마라

 

 

너무나도 취업이 간절했던 적이 있는가?

 

저는 꽤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그래서 2002년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에도 깊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오히려 그동안 못봤던 영화도 실컷 보고, 운전면허도 따고, 산악동호회에도 다니며 1년 동안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구피를 만나고, 구피와 결혼 이야기가 오고가며 저는 제 처지를 뒤돌아봤습니다. 직장도 없었고, 모아둔 돈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신혼 살림을 차릴 집도 없었습니다. 부모님께 손을 내밀 처지도 되지 못하는 그야말로 백수건달 신세였습니다.

그땐 정말 취업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정리해고한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가서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제발 취업을 시켜달라고... 가진 것은 없어도 자존심만큼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가지고 있던 제가 처음으로 남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한 것이죠. 그땐 그만큼 취업이 간절했습니다. 구피마저 놓치면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았거든요.

 

스테파니도 그 만큼 간절했는가?

 

제가 갑자기 10년 전의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방금 [원 포 더 머니]를 봤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니 플럼(캐서린 헤이글)은 취업이 간절합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고, 자동차는 압류되었으며, 집도 조만간 넘어갈 처지입니다.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인 그녀,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던가,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미 한번 이혼을 경험한 그녀는 '결혼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직장 구하기에 나섭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범죄 사무실에서 도망자를 잡는 위험한 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 백화점에서 속옷이나 팔던 그녀가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험한 일에 뛰어들 만큼 사정이 급했는가? 입니다.

[원 포 더 머니]는 우선 스테파니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해야만 하는 사정을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생략해 버립니다. 오프닝씬에서 나온 세금 독촉장과 압류 예고장, 그리고 자동차를 압류당하는 한 장면 뿐입니다. 그리고는 끝입니다. 그래놓고 스테파니는 돈을 벌어야 한다며 위험한 일을 하겠다고 덤벼드니 처음부터 스테파니라는 캐릭터가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위험한 일에 뛰어든 이유는?

 

[원 포 더 머니]는 스테파니가 살해 용의자인 전직 경찰관 조 모렐리(제이슨 오마라) 검거에 뛰어든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합니다. 조 모렐리는 스테파니의 첫사랑인 것이죠. 하지만 그는 그녀와의 첫날밤 이후 그녀를 외면했고, 스테파니는 그날의 앙금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스테파니는 조 모렐리를 잡아 경찰에 넘김으로서 돈도 벌고, 첫사랑의 아픈 기억에 대한 복수도 하겠다는 것인데... 제법 흥미로운 설정이긴 하지만 위험한 일에 뛰어든 스테파니의 모습은 무슨 소꼽장난을 하는 것처럼 미숙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원 포더 머니]는 이러한 설정에서도 또다시 과도한 생략을 해버리는데, 도대체 스테파니가 조에게 얼마나 앙금이 남아 있는지는 그녀의 나래이션과 스테파니와 조의 대화로 관객 스스로 상상을 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스테파니가 위험한 일을 해야만 하는 급한 사정도 생략하고, 스테파니와 조의 과거 관계 역시 생략하고, 무조건 스테파니는 돈이 급하고, 조에 대한 과거 앙금도 남아 있으니 이 위험천만한 일을 해야만 한다며 밀어 부치기만 합니다. 영화를 보며 '뭐 이런 막무가내식 영화가 다 있나?'라는 생각만 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이없이 단순하다.

 

[원 포 더 머니]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75주간이나 전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는 엄청난 원작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의 정체가 궁금할 정도로 어이없는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스테파니 플럼의 캐릭터가 생략된 것은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 때문이라고 너그럽게 봐준다고 해도, 그녀가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그 안일한 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무사하다는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놀랍기만 합니다.

레인저(다니엘 순자타)라는 뜬금없는 캐릭터가 등장해서 헌신적으로 그녀를 돕기도 하고, 거리의 여자들은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며 단서를 마구 말해줍니다. 사건의 증인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범인도 그녀에게 만큼은 친절하게 경고만 할 뿐입니다. 마지막엔 범인이 자기 입으로 범행을 순순하게 자백하다가 총 맞아 죽기까지 합니다.

캐릭터가 단순하다면 사건을 풀어 나가는 과정이라도 치밀하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스테파니와 조의 러브 라인이라도 달콤하던가... 이 영화는 놀랍게도 그 수 많은 것들 중에서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합니다.

 

캐서린 헤이글이 아닌 그 어떤 배우가 나와도 이따위로 영화를 만드면 흥행에 실패한다.

 

[원 포 더 머니]는 4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여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치고는 제작비 규모가 꽤 큰 영화이지만 미국에서는 2천6백만 달러,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고작 5백만 달러의 흥행을 올리는데 그쳤습니다. 그야말로 흥행 대참패를 당한 셈이죠.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캐서린 헤이글은 인기TV시리즈 [그레이 아나토미]의 스타로 [사고친 후에], [27번의 결혼리허설], [어글리 트루스] 등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등극이 유력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킬러스]에 이어 [원 포 더 머니]마저 흥행에 실패하며 그녀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원 포 더 머니]를 보니 캐서린 헤이글은 충분히 매력을 갖춘 배우이지만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는 눈은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 포 더 머니]는 캐릭터는 과도하게 생략하고, 스릴러 영화로서의 사건 전개는 평범하며, 마지막에는 사건 해결 장면은 요근래 봤던 스릴러 영화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이런 식의 영화라면 캐서린 헤이글이 아닌 그 어떤 배우가 주연을 맡아도 깐깐한 관객의 선택을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