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 영웅을 만나기 위해 영화도 포기했다.
3월 18일 일요일 밤. 평소 같으면 느긋하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바빴던 주말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날 만큼은 극장으로 향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보고 싶은 영화도 있었고, 극장으로 향할 시간도 충분했지만 저는 집에 앉아 TV만 우두커니 바라보며 어서 11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OCN의 새로운 케이블 드라마 [히어로]가 첫 방영을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히어로 영화를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한 소심한 아이였기에 상상 속에서라도 악당을 무찌르는 초능력 영웅을 꿈꾸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저는 영화 속 영웅들의 활약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코믹스 영웅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극장으로 향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영화 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히어로]를 기대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영웅은 '홍길동', '전우치'와 같은 토속적 영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초능력을 지닌 영웅을 스크린 안에 구축하기엔 우리나라의 특수효과 기술은 열악했고, 영화 시장은 협소했습니다.
그런데 OCN에서 시도를 한 것입니다. 초인적인 힘을 지닌 영웅의 탄생이라는 [히어로]의 설정은 처음부터 제 마음을 사로잡았고,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초인적 영웅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한 마음에 저는 평소엔 잘 보지 않던 TV를 켜고 시계만 쳐다보며 11시가 되기를 기다린 것이죠.
널 만나기 위해 난 일요일 밤을 그토록 기다렸나보다.
과감한 오프닝
11시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야속하게도 [히어로]가 시작해 버렸습니다. 서둘러 뒷 마무리(?)를 하고 나왔지만 이미 TV 화면에서는 교회를 덮친 정체불명의 괴한들 장면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히어로] 제1화 히어로의 탄생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습격한 괴한의 총기 난사. 교회 목사는 물론 어린 아이들마저 무참하게 살해되는 현장. 그리고 그러한 현장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 한 청년. [히어로]의 오프닝은 과감하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파격이었습니다.
[히어로]의 오프닝이 파격인 이유는 살해 대상을 성직자는 물론 어린 아이들로 설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죄가 없는 어린 아이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장면은 TV에서 보기 힘든(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히어로]는 그러한 오프닝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럼으로서 악당에 대한 분노를 시청자들이 함께 느낄 수 있게끔 유도를 합니다. 결국 오프닝의 불편함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영웅이 되어 저런 무자비한 범행을 저지른 악당을 무찌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 셈입니다.
저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꼴통 영웅의 닮은 꼴은 [핸콕]이 아닌 [그린 호넷]이더라.
그렇게 시작된 [히어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흑철이 등장하면서 오프닝의 불편함은 잠시 잊혀집니다. 저는 [히어로]를 기대했던 만큼 [히어로]의 캐릭터와 기본 설정을 사전에 꼼꼼하게 체크하였습니다.(너무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하긴 싫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통제불능 꼴통영웅'이라는 흑철(양동근)에게 붙은 수식어였습니다.
'통제불능 꼴통영웅'이라는 수식어에서 가장 먼저 제 기억 속에 떠오른 것은 윌 스미스 주연의 [핸콕]입니다. 기억을 잃은 영웅 핸콕의 좌충우돌 영웅담을 코믹하게 펼쳐낸 [핸콕]. 저는 [핸콕]과 [히어로]가 닮았을 것이라 예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히어로] 제1화 히어로의 탄생을 보고나니 [핸콕]보다는 [그린 호넷]과 더욱 닮아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 받은 망나니 브릿(세스 로겐)이 케이토(주걸륜)와 함께 영웅 놀이를 하다가 진짜 악당 처드노프스키(크리스토프 왈츠)을 무찌르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비록 국내외 흥행에서 참패를 한 영화이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영웅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제겐 상당히 인상 깊었던 영화입니다.
그런데 흑철이 그러합니다. 항구도시 무영. 그리고 무영의 최고 권력자 김훈(손병호) 시장. 흑철은 바로 김훈의 둘째 아들로 엘리트의 길을 걷고 있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무영시의 최고 말썽꾼임을 자처합니다. 그가 영웅짓을 하는 것도 타프한 여형사 윤이온(한채아)를 꼬시기 위한 것일뿐, 정의를 위해서와 같은 진지함은 없습니다. 흑철과 브릿이 묘하게 닮은 이유입니다.
윤이온 VS 김흑철 전혀 다른 캐릭터 성격을 가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잘 어울릴 듯...
딜레마에 빠진 흑철
윤이온을 꼬시기 위해 사건 현장에 뛰어든 흑철은 총에 맞고 새로운 의학 기술을 통해 초인적인 영웅이 됩니다. 사실 [히어로]는 이러한 부분을 대충 넘어갑니다. 흑철을 죽음에서 살린 의학 기술의 비밀이 무엇인지, 마치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흘려버립니다.(그 부분은 나중의 에피소드에서 다시 설명이 될런지는 미지수입니다.) 초인적 영웅에게 가장 중요한 힘의 원천을 대충 생략하는 무모함이라니...
하지만 [히어로]가 그런 무모함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흑철이 빠진 딜레마라는 흥미로운 설정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지 않는 불사의 능력을 가진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흑철은 윤이온를 도와 교회를 습격한 진짜 범인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흑철은 굉장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죠. 바로 잔인무도한 악당의 뒤에 아버지를 비롯한 자신의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가 영웅이 되어 무영시의 악을 무찌른다는 것은 가족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수 많은 할리우드의 히어로물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설정입니다. [히어로]가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흑철은 윤이온을 도와 무영시를 구하는 것과 무영시의 최대 권력자인 아버지와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에피소드에서 그러한 흑철의 딜레마는 많은 재미를 안겨줄 것으로 보입니다.
무영시의 악의 축이자 흑철의 아버지 김훈 시장.
과연 흑철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제2화 무원이 기대되는 이유
이번주 일요일에 방영될 [히어로] 제2화 무영은 성매매 여성들이 숙소로 사용되는 어느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되고 그 방에 감금되어 있던 한 여성의 질식사로 사망하는 사건을 다룬다고 합니다. 제1화가 어린 아이들이었다면 제2화는 여성이 범행 대상인 셈입니다.
예고편에는 영웅이 되기 위해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는 흑철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는 무영시의 망나니에서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자신의 딜레마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딜레마를 안고 있는 통제불능 꼴통영웅 흑철. 그의 활약상은 이번 주 일요일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듭니다. 이번엔 화장실 가고 싶은 것을 참고 시작부터 봐야 겠네요. (이 망할 놈의 설사병 ^^)
은근히 잘 어울리는 양동근의 영웅 의상.
멋진 영웅 의상만큼 흑철의 활약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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