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제 생체시계는 2월 23일로 맞춰져 있었습니다. 2월 23일은 내한한 리즈 위더스푼이 [디스 민즈 워] 홍보를 위해서 CGV 영등포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2001년 [금발이 너무해]를 본 이후 리즈 위더스푼을 좋아했던 저는 레드카펫의 행사가 있는 날 [디스 민즈 워]의 CGV 영등포에서 하는 시사회에 초대되었고, 리즈 위더스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굉장한 흥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2월 23일 [디스 민즈 워]의 시사회에 참가하기 위한 길은 험하기만 했습니다. 부하 직원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관두는 바람에(적성에 맞지 않다네요. -_-) 일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코피를 쏟으며 야근을 해서 회사 일을 마무리지었지만 23일 연차휴가를 내려는 제 계획은 직장 상사가 먼저 휴가를 내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무언가 자꾸 일이 꼬이는 상황.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쭈니가 아니죠. 23일 하루 종일 눈치를 보다가 퇴근 시간까지 아직 1시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회사를 빠져나와 곧장 영등포 CGV로 향했습니다.
6시 조금 넘어 도착한 영등포 CGV. 먼저 시사회 티켓을 받고, 구피를 기다렸습니다. 리즈 위더스푼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 그리고 덩치큰 경호원들이 한데 엉켜 영등포 CGV는 인산인해 상태였습니다.
7시 리즈 위더스푼이 레드카펫 행사를 한다고 해서 자리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좋은 자리는 기자들이 전부 차지하고 있었고, 저와 구피는 사람들에게 밀려 뒷자리로 밀려났습니다. 그나마 둿자리도 험악하게 생긴 경호원들이 인상을 팍팍 쓰며 '여기 서있으면 안되요.'라며 자꾸 저와 구피를 내쫓으려 하더군요.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며 리즈 위더스푼을 봐야해?'라고 짜증을 내는 구피. 하긴 시사회장에 무대인사를 하러 오는 리즈 위더스푼을 보면 될터이니 굳이 레드카펫 행사장에서 이렇게 경호원들에게 내쫓기는 수모를 당할 필요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시사회는 영등포 CGV의 스타리움관과 6관에서 진행되는데 리즈 위더스푼의 무대인사는 스타리움관에서만 진행을 하고 6관은 안한다는 새로운 소식이 듣게 되었습니다. 설마 설마하는 생각에 확인한 제 시사회 티켓에는 원망스럽게도 6관이라 찍혀 있었습니다. 럴수 럴수 이럴수가...
리즈 위더스푼을 보겠다고 코피를 쏟으며 일했고, 업무시간에 회사에서 도망치기까지 했는데 이럴수가... 망연자실한 저는 리즈 위더스푼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피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겁니다. 제게 '걱정마. 내가 리즈 위더스푼 사진 찍어가지고 올께.'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저 많은 사람들 사이를 뚫을 생각도 못하고 그저 구피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경호원에게 내쫓겼고, 그래도 리즈 위더스푼 얼굴 한번 보겠다며 까치발을 들고 서서 안간힘을 섰지만 사람들 사이의 리즈 위더스푼의 실루엣을 보는 것이 전부.
결국 레드카펫 행사가 끝나고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자 저는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구피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구피는 제게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며 '내가 기자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사진 찍었어.'라며 보여주더군요. 순간 감동의 물결... 그날 저는 리즈 위더스푼보다는 구피가 내겐 훨씬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구피가 온갖 수모를(자기들 사이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구피를 보며 기자들이 '이 아줌마가 왜이래'라며 짜증을 냈다네요. 경호원들의 구박도 당연히 있었고요.) 당하며 찍은 리즈 위더스푼의 사진을 올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사진을 찍어준 구피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하며, 거짓 시사회 정보로 저를 패닉 상태로 몰고간 분들을 너그럽게 용서하겠습니다.(요즘은 용서가 대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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