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브라 그래닉
주연 : 제니퍼 로렌스, 존 호키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느 산골 마을... 한참 친구들과 꺄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고, 남자친구와 달콤한 데이트를 즐겨야할 17세 소녀 리 돌리(제니퍼 로렌스). 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사춘기 소녀의 추억을 즐길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마약판매 혐의로 실형 선고를 앞두고 있고, 어머니는 넋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허공만 쳐다봅니다. 부모 대신 어린 동생들을 부양해야 하는 그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아버지가 집을 담보로 보석금을 냈고, 만약 선고일까지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집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리는 삶의 터전인 집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서늘한 시선과 위협은 이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벅찼습니다. 그녀는 제발 도와 달라고 외치지만 되돌아 오는 것은 차가운 외면 뿐이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그곳...
[윈터스 본]을 보는 내내 저는 목마름을 느꼈습니다. 너무나도 건조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침조차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내 입안을 바짝 마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리는 분명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군에 입대하려고 하는 것도 차라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녀가 군에 입대하면 몸이 아픈 어머니와 너무 어린 동생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녀는 너무나 담담하게 맞서 싸웁니다. 17세 소녀의 모습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한 그녀의 행동과 용기.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침착함 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만큼 녹록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렇게라도 살아 남아라!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버지를 찾는 장면은 이 영화의 섬뜩함을 종결짓습니다. 그렇게 강인했던 그녀조차도 무서워 덜덜 떨어야만 했던 현장. 아버지의 잘린 손을 들어선 그녀의 눈에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영화 내내 침착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이지만 살아 남기 위해 죽은 아버지의 손을 잘라야 하는 그 현실만큼은 참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 남았습니다. 집을 지켜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을 지켜내야 합니다. 여전히 희망은 없습니다. 행운처럼 약간의 돈이 그녀에게 쥐어졌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해피엔딩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그녀는 웃지 않습니다. 그냥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 들이고, 당찬 표정으로 자신이 부양할 가족들을 쳐다볼 뿐입니다.
차가운 메마름에 압도되다.
솔직히 이 영화를 영화적 재미를 위해 본다면 상당히 실망할 것입니다. 스릴러라고 하기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결핍되어 있고, 그 어떤 장르에 이 영화를 끼어 넣는다고 해도 장르적 재미 따위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제니퍼 로렌스의 차가운 연기와 영화의 메마른 분위기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는 꽤 강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잠든 그날 밤, 저는 제 옷 속으로 한 마리의 커다란 구렁이가 기어 들어가는 꿈을 꿨습니다. 너무나 징그럽고 무서워 비명을 지르고 구렁이를 떼어 내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구렁이가 저를 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꿈이었습니다. 차디찬 구렁이를 온 몸으로 느끼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구렁이가 제 옷 밖으로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윈터스 본]은 제가 꾼 꿈과 같은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가장 먼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차가운 메마름에 압도되었던 제 몸을 진정시켜야만 했습니다. 이 압도적인 차가움, 메마름, [윈터스 본]을 두고 '재미있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압도적인 영화, 인상적인 영화'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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