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라스트 사무라이] -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감동...

쭈니-1 2009. 12. 8. 16:33



감독 : 에드워드 즈윅
주연 : 톰 크루즈, 와타나베 켄
개봉 : 2004년 1월 9일
관람 : 2004년 1월 2일


2004년입니다. 2004년 새해 벽두부터 제겐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넘쳐납니다.
구정을 맞이하여 개봉되는 우리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은주([안녕! 유에프오], [태극기 휘날리며]), 하지원([내사랑 싸가지]), 김하늘([빙우], [그녀를 믿지 마세요]), 김정화([그녀를 모르면 간첩]) 등등. 어쩜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로 영화의 라인업을 꽉 채워놓았는지... 기특하기도 하죠.
이에 맞서는 헐리우드 영화들은 스펙타클로 관객들을 유혹하려 합니다. 신식 군대와 사무라이의 대규모 전투씬이 압권인 [라스트 사무라이]를 비롯해서, 피터 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블럭버스터 [피터 팬], 오우삼 감독과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인 필립 K.딕이 조우한 [페이첵], 언제나 매력적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블럭버스터 [브라더 베어], 존 그리샴 원작의 치밀한 법정 스릴러 [런 어웨이] 등등. 왠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손해일 것 같은 영화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말 이 많은 영화들을 전부 볼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생활고에 시달리는 구피의 날벼락과도 같은 선언... "1월달엔 절대 돈내고 영화 안볼꺼야." 이건 쭈니를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구피에게 여러번 간청했지만 한번 한 결심은 절대로 거둬들이는 일이 없는 구피는 눈하나 꿈쩍 안합니다. 이왕 결정된 일이라면 저도 나름대로의 살 궁리를 할 수 밖에...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영화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시사회라는 시사회는 전부 신청하는 겁니다. 작년에 이미 [무간도 2]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재미를 봤으니 최소한 한 편 이상은 걸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저는 열심히 시사회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피터 팬] 시사회에 당첨되었죠. 하지만 시사회만으로는 보고 싶은 영화를 모두 볼 수는 없는 법. 각종 영화 사이트의 마일리지를 열심히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벌써 6,500원이나 마일리지를 모았으니 조조할인으로 본다면 저 혼자 영화 한편은 공짜로 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것만으로 여의치 않다면 어쩔수없이 몇편의 영화는 컴퓨터로 다운받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안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쉬운대로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는 있죠. 그리고 그 방법으로 [라스트 사무라이]를 봤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영화의 스펙타클로만 따진다면 1월에 개봉되는 영화중에서 최고이지만 사무라이라는 왜색 짙은 소재탓에 극장에서 볼것인지 말것인지 고민했던 영화죠. 하지만 결국 이렇게 컴퓨터로 보고 말았네요.
[라스트 사무라이]에 대한 글은 '아주짧은영화평'에 올릴 생각이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후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갑자기 많아져 이렇게 '영화이야기'에 올립니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꽤 멋진 영화입니다. [반지의 제왕]의 무대이기도 했던 뉴질랜드에서 촬영된 대규모 전투씬은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고도 스펙타클의 묘미를 충분히 살려냈으며, 톰 크루즈는 여전히 매혹적인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영화에 가득 묻어나는 비장미는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충분히 불편함을 안겨줄 수 있는 소재를 오히려 감동적으로 포장하고 있으며, 와타나베 켄은 세계적인 스타인 톰 크루즈와의 연기 대결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이 영화의 감동에 부채질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감동이 관객의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제가 [라스트 사무라이]를 꽤 멋진 영화라고 말 할 수는 있지만, 감동적인 영화라고 말 할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에드워드 즈윅의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여 영화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가을의 전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을의 전설]은 초창기 미국을 배경으로 혼란의 시대에 휩쓸린 3형제와 그들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았던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수려한 영상과 비장미, 그리고 브래드 피트의 남성적 매력으로 관객의 감성을 흔들며 흥행에 성공을 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선 초창기 미국의 혼란을 보여주기 보다는 브래드 피트의 매력에 의한 1인 영웅극에 그쳤다는 비난도 받았던 영화입니다.
[가을의 전설] 이후 [커리지 언더 파이어], [비상계엄]의 잇따른 흥행실패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결국 [가을의 전설]류의 영화로 돌아왔으며 그것이 [가을의 전설]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라스트 사무라이]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톰 크루즈의 연기는 [가을의 전설]의 브래드 피트에 전혀 뒤지지 않으며, 일본의 이국적인 풍경과 뉴질랜드 대자연에서 촬영된 스펙타클은 [가을의 전설]보다 한단계 아니 몇단계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트 사무라이]는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꽤 재미도 있고, 멋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을의 전설]에서도 그랬듯이 이 영화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할지는 한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자! 먼저 이 영화가 이끌어내는 감동의 원천지는 바로 사무라이 정신입니다. 솔직히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하지 못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나타난 사무라이 정신은 돈과 목숨보다도 명예와 신념을 중요시합니다. 그러한 사무라이 정신에 매료된 알그렌대위(톰 크루즈)는 신식 무기를 일본 군대에게 전수하려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일본의 신식 군대의 적인 카츠모토(와타나베 켄)의 편에 서서 사무라이 정신을 계승합니다.
여기에서 이 영화는 아무런 감정없이 대량 학살을 목표로 제작된 신식 무기인 총과 비록 적이지만 적의 신념을 존경하고, 적의 명예를 존중하면서 적을 죽이는 구식 무기인 검을 비교합니다. 그리고는 총의 비인간성보다는 검의 정신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총과 검이 차이가 있을까요? 이것들은 모두 살상을 목표로 만들어진 무기들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적을 존중하고 존경한다고는 하지만 검에 의한 살상도 엄염한 끔찍한 살인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폼나고 멋진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러한 총과 검의 대결은 '안개 전투'와 '최후의 전투'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치 [브레이브 하트]을 연상시키는 이 전투씬은 분명 새로운 것과 옛 것의 흥미로운 대결로 묘하게 검의 멋들어짐을 강조합니다. 일렬로 총을 들고 쏴대는 어리버리한 신식 군대의 모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사무라이들의 그 멋진 모습은 관객들을 검의 매력에 빠지게끔 유도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본다면 이 전투씬에는 그러한 멋들어짐보다는 무고한 살상이 난무하는 참으로 의미없는 전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식 군대의 지휘자인 오무라는 조국의 근대화라는 명분을 위해 동족에게 총을 들이대고, 카츠모트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으로 동족을 칼로 베어댑니다. 과연 조국의 근대화와 천황의 충성심이 이 처참한 전투의 명분이 될수 있는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알그렌이라는 캐릭터를 한번 짋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그렌은 남북 전쟁과 인디언과의 전투를 치룬 미국의 베테랑 군인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에게 남은 것은 명예도, 신념도 아닌 죄책감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고한 부녀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죽였던 기억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영화의 초반 전쟁에 대해서 상당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알그렌이라는 캐릭터는 그렇기에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츠모토를 만나고 그의 사무라이 정신에 매료된 이후 알그렌은 다시 예전의 영웅으로 돌변합니다. 총대신 칼을 들었다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카츠모토를 구하기 위해 보초병을 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겠다며 별 명분없는 전투에 영웅적으로 나섭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카츠모토의 죽음을 대신하여 사무라이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1인 영웅극의 모습도 서슴치않고 보여줍니다. 물론 그것이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주특기이기는 하지만 영화 초반에 인간적이며 매력적이었던 알그렌이라는 캐릭터가 사무라이 정신에 매료되며 점점 영웅으로 돌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최소한 영화를 보는 동안은 관객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에 호소하며 감동을 이끌어내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연출력은 충분히 찬사를 보낼만 합니다. 저 역시 이 영화의 재미를 충분히 만끽했으며 오랜만에 꽤 잘만들어진 영화를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단지 영화로 받아들이고 영화가 이끄는대로 감동을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의 감동이 진정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동인지는, 아니면 수려한 화면과 배우들의 매력에 매료된 눈에서부터 비롯된 감동인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