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 나이스한 이별?

쭈니-1 2011. 4. 21. 11:44

 

 

감독 : 이윤기

주연 : 현빈, 임수정

 

 

결혼기념일날 하필 이 영화를...

 

어제(4월 20일)은 구피와 저의 9주년 결혼기념일입니다. 그날 만큼은 9년 전으로 돌아가 신혼 분위기를 내자며 회사 끝나고 웅이에게 가는 것을 미루고 빕스에 가서 스테이크도 먹고, 메가박스에 가서 영화도 보려고 일찌감치 계획을 세웠었답니다.

하지만 전날  '엄마, 아빠, 내일 꼭 오세요.'라며 몇 번을 다짐하는 웅이가 마음에 걸려서 결국 동네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과 짬봉, 그리고 큰 맘 먹고 시킨 탕수육으로 조촐한 둘 만의 파티를 하고, 치즈 케잌을 사들고  웅이에게 갔습니다.

하긴 웅이가 없었다면 저와 구피 역시 부부가 아닌 남남이었을겁니다. 그렇게 저희 결혼에 지대한 역할을 한 웅이를 빼놓고 결혼기념일을 보낼 수는 없죠. 게다가 치즈 케잌에 촛불을 켜놓고 웅이가 자신이 직접 만든 결혼축하 노래까지 불러줬으니 빕스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것보다 어쩌면 더욱 행복한 결혼기념일 행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계획했던대로는 아니지만 나름 행복한 결혼기념일 행사를 마친 저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혼자 영화 한 편을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선택한 영화는 하필 어느 5년차 부부의 이별을 그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였습니다. 왜 하필 이 영화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땡기더군요.

 

10분간의 롱테이크로 잡아낸 오프닝...

 

구피는 배가 아프다며 쇼파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TV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구피를 두고 혼자 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솔직히 영화적 재미는 제로에 가까운 영화였습니다. 하긴 이윤기 감독의 영화를 보며 영화적 재미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그는 영화가 얼마나 잔잔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처음부터 잔잔함으로 일관된 지루함을 보여줬습니다.

첫 시작부터 그렇습니다. 일본 출장을 위해 아내인 영신(임수정)을 김포공항에 데려다 주는 지석(현빈)의 자가용 안에서의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10분 간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보통 부부들의 대화를 보여줍니다. 롱테이크로 진행된 이 장면은 앞으로 이 영화가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이윤기 감독의 선전포고와도 같습니다.

실제 영신은 뜬금없이 지석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지석의 반응은 이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 이후 1시간 30분 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고양이의 출연이 이 영화에서 일어난 유일한 돌발 상황이다.

 

5년 간 별 문제 없이 살아 온 부부, 그런데 아내는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이별을 요구합니다. 과연 이러한 상황이라면 다른 영화들은 어땠을까요? 남편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며, 어쩌면 아내에게 제발 날 떠나지 말라고 애원을 하거나, 아니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다며 화를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10분의 롱테이크로 활영된 오프닝씬에서 이미 예고했듯이 지석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영신의 가방을 챙겨주고, 어쩌면 영신과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저녁 식사를 준비합니다. 영신은 '왜 화내지 않냐?'며 오히려 따지지만 지석은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지 않냐?'며 체념한 듯이 말합니다.

이렇게 이상한 이별의 현장에서 유일한 돌발 상황이라면 이웃집의 고양이의 출현입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지석과 영신의 집에 불현듯 찾아온 고양이, 그리고 그 고양이를 찾으러 온 이웃집 부부(김지수, 김중기)의 활기찬 모습이 그나마 영화를 보는 제 답답함에 숨통이 트이도록 합니다.

 

나이스한 이별? 과연 당신이라면?

 

솔직히 예상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2005년 개봉했던 이윤기 감독의 데뷔작인 [여자, 정혜]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던 저로써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보여주는 답답함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지석의 저런 무덤덤한 태도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그는 영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요? 아니면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이 영화를 보다보니 10년 전의 이별이 생각났습니다.(또 구피가 싫어하는 과거 이야기 시작입니다. ^^) 나름 자존심이 센 저는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네가 싫다면 난 언제든 널 떠나줄수 있어.'라고 당당하게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을 때 저는 제가 선언했던 당당함과는 다른 비굴함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만나자고 그녀에게 애원했고, 결국 이별을 통보받은지 몇 주만에 그녀와 저는 종로의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날 저는 그녀에게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애원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막상 이미 결심을 굳힌 그녀를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그녀를 보냈고, 2시간을 걸어서 집에 돌아와 혼자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지석의 이별도 그런 것일까요? 막상 영신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가 그녀가 떠나고 나면 혼자 울음을 터트릴까요?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질거야. 정말...

 

영신은 말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질거야. 정말...' 뭐 그 말은 사실입니다. 이별이라는 것이 당장은 아프지만 그 상처는 세월이 치유해 줄 것입니다.

지석이 영신 몰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단 한 장면이라도 있었다면 (따지고 보면 지석이 우는 장면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영신 때문인지, 양파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10년 전 제가 흘렸던 눈물과 너무 달라서...) 저는 영신의 마지막 대사처럼 지석에게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질거야. 정말...'이라고 위로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지석을 보며 그를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제목 역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인 것을 보면 어쩌면 이러한 의문점은 이윤기 감독이 스스로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도대체 이 나이스한 이별과 이 5년차 부부의 사랑에 대한 의문점으로 이윤기 감독은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라는 점입니다.

차라리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질거야. 정말...'이라고 지석을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위로조차 관객 맘대로 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이윤기 감독의 답답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