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해영
주연 : 신하균, 엄지원, 심혜진, 성동일, 류승범, 백진희, 오달수
[쓰리 데이즈]를 포기하다.
오늘 [러브 & 드럭스] 시사회에 가기 위해 하루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저는 연차 휴가를 내면 회사에 출근하는 것보다 더 바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극장에 가서 조조할인부터 내리 세 편 정도 영화도 봐야 하고, 제가 연차 휴가를 낼 때만을 손꼽아 기다린 구피의 심부름도 해야하고, 밀린 집안 청소도 해야하고, 그 흔한 늦잠잘 시간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달랐습니다. 애초에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쓰리 데이즈] 한 편뿐이니 일찌감치 극장에 갈 필요도 없었고, 왠일로 구피가 심부름도 시키지 않았고, 청소는 지난 토요일에 했으니 안 해도 무방하고...
결국 9시 넘은 시간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늦잠을 자고 일어나 지난 일요일에 보다가 만 [나탈리]도 마저 보고, 어제 본 [헬로우 고스트] 영화 이야기도 쓰며 그렇게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이제 점심 식사만 챙겨먹고 느즈막하게 [쓰리 데이즈]보러 나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갑자기 나가기 싫어지네요. 기왕 오랜만에 집에서 뒹굴거리며 여유를 만끽한 김에 조금 더 뒹굴거리고 싶다는 생각에 극장에서 [쓰리, 데이즈]를 보는 대신 집에서 [페스티발]을 보기로 했습니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 또다시 비주류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페스티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감독인 이해영입니다. 2006년에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비평가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감독 데뷔를 했던 이해영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여자가 되고 싶었던 고등학교 1학년 소년이 수술비를 벌기 위해 씨름부에 들면서 벌어지는 웃지못할 사건을 담은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러한 [천하장사 마돈나]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비주류에 속한 소년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기 때문입니다. 남성성을 강요하는 아버지(김윤석이 처음 주목을 받은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 강압적인 아버지 연기 덕분입니다.) 밑에서 여자를 꿈꾸는 사춘기 소년. 이 우울한 이야기를 이해영 감독은 해맑은 웃음과 희망적인 해피엔딩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젠 변태들의 이야기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로 완벽에 가까운 감독 데뷔를 했던 이해영 감독은 이번엔 [페스티발]을 통해서 비주류 이야기를 좀 더 확장시킵니다. 이번엔 특이한 성적 판타지를 가진 사람들 즉 우리가 변태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물건 크기만을 중요시하는 장배(신하균)와 그런 그의 배려없는 섹스가 불만인 영어 강사 지수(엄지원), 오래 전에 남편을 잃고 남편의 빚을 갚고 어린 딸을 홀로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일만 했던 순심(심혜진)과 그녀에게 SM의 진정한 재미를 가르쳐주는 철물점 주인 기봉(성동일), 사람같은 인형에 푹 빠진 오뎅장수 상두(류승범)와 그런 상두를 짝사랑하는 당돌한 여고생 자혜(백진희), 그리고 여성 속옷에 빠져 있는 고등학고 국어 선생님 광록(오달수)까지...
이들 캐릭터는 결코 평범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내 주위에 저런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변태는 좋은 의미는 아니니까요.
그들이 뭘 잘못했지?
그런데 이해영 감독은 말합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잘못했냐고...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서로 사랑을 하고 있을 뿐인데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냐고...
따지고 보면 맞습니다. 그들은 잘 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가죽 옷을 입고 서로에게 채찍을 가해도, 남자가 여자 속옷을 입고 있어도, 혹은 사람같은 인형에 사랑을 느껴도... 그것은 그들의 사생활입니다. 그들은 변태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인식은 편협한 선입견에 불과하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만의 우월감에 빠졌던 장배가 결국 좌절을 맛보듯이 나와 틀리다고 해서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해를 끼칠 뿐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여러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바람에 [천하장사 마돈나]의 진솔한 주제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마지막 엄정화의 노래 '페스티발'이 흘러 나올땐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나가는 그들의 경쾌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됩니다. 하긴 이해영 감독은 항상 이런 식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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