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0년 아짧평

[방가? 방가!] - 슬픔이 묻어나는 코미디.

쭈니-1 2010. 12. 13. 10:31

 

 

감독 : 육상효

주연 : 김인권, 김정태, 신현빈

 

 

슬픈 코미디를 지향하다.

 

전쟁과도 같은 주말을 보내고 난장판이 되어 버린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저는 '그래, 오늘은 웃음이 필요해.'라는 굳은 결심으로 [방가? 방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방가? 방가!]는 분명 코미디 영화입니다. [해운대]를 통해 명품 코믹 조연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김인권이 주연으로 나선 이 영화는 외모도, 능력도 딸리는 한심한 백수가 동남아 불법 체류자 행세를 하여 취업에 성공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는 마냥 웃기기만 한 영화일까요? 청년 실업 문제, 불법 체류자 문제 등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에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웃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보신다면 아무도 실망할 것입니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 만큼 [방가? 방가!]는 슬픈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으니까요.

 

한심한 청년의 백수 탈출기

 

먼저 이 영화가 가장 먼저 건드리는 것은 청년 실업 문제입니다. 사실 저 역시 20대를 직장인 아닌 실업자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아픈(?) 과거가 있는 만큼 방태식(김인권)의 문제가 남 같지 않았습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제 몸무게는 50kg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격증도 일찌감치 땄고, 학교 성적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면접만 들어가면 '그런 호리호리한 몸으로 회사는 다닐 수가 있겠어?'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고, 면접 결과는 언제나 탈락이었습니다. 제 외모가 취업의 걸림돌이 되었던 셈입니다.(전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지각 한번 없이 개근을 했지만 면접관들은 제 호리호리한 몸매만 걸고 넘어지더군요.)

방태식 역시 그러합니다. 남들보다 작은 키에 남다른 외모를 지닌 그는 사회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 결국 그는 자신의 외모를 살린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불법 체류자들... 그들도 한국인일까?

 

방태식의 백수 탈출기가 초반에 아주 짧게 그려지고 그 다음으로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건드리는 문제는 불법 체류자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수를 샐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불법 체류자들이 산업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자이기에 더 많은, 그리고 더 어려운 일을 하지만 한국인 근로자에 비해 턱 없이 작은 돈만 받고 있습니다.

제가 한때 대기업 구내 식당에 양념을 납품하는 회사의 경리부에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인도에서 온 두 명의 불법 체류자가 있었는데 공장에서 어려운 일은 전부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한국인 근로자에 비한다면 절반 정도의 급여만 받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들어온 범죄자 취급을 하지만 그들도 어찌되었건 한국이라는 나라에 발 붙여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린 말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상당히 폐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방가? 방가!]는 그러한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코미디의 정제성을 보여준 몇몇 웃기는 장면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그러한 사회적 문제를 무조건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되었건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니까요.

한국인이지만 동남아적인 외모를 가진 방태식이 부탄출신의 불법 체류자로 위장해 취업에 성공한다는 기본 설정도 그러하고, 방태식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말 강의를 하던 도중 욕설 강의를 하는 장면은 정말 웃깁니다. 불법 체류자들이 외국인 노래 자랑에 나가기 위해서 '찬찬찬'을 연습하는 장면 중 공장의 소품들을 악기 삼아 부르는 장면과 갇혀있는 상황에서 아카펠라로 '찬찬찬'을 부르는 장면은 육상효 감독의 감각의 돋보이는 명장면입니다.

육상효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난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확인됩니다. 코미디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면서 그들의 현실에 맞게 과도한 희망을 안겨주지는 않는 방법으로 이 슬픔이 묻어나는 코미디를 마무리한 것이죠. 그들은 여전히 불법 체류자로 한국 땅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을 것이며, 방태식은 여전히 희망 없는 실업자로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국 공통어인 음악이 있고, 웃음이 있기에 어쩌면 그들은 예전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