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한국영화의 전쟁터
올 추석은 근래 보기 드문 한국영화의 대 혈전이 펼쳐질 전망입니다.
이미 원빈 주연의 [아저씨]가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며 추석 시즌까지 롱런할 기세이고,
그 뒤로 설경구 주연의 [해결사]가 9월 9일 개봉하자마자 부동의 1위 [아저씨]를 밀어내고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9월 16일 추석을 며칠 앞둔 목요일에는 한국영화들이 대거 개봉하는데 장진 감독의 [퀴즈왕],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 연애조작단], 송해성 감독의 [무적자], 홍상수 감독의 [옥희와 영화],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 그리고 양윤호 감독의 [그랑프리]까지 무려 여섯 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하는 것입니다.
원래 명절에는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찾는다는 것이 극장가의 속설이지만 이렇게 많은 한국영화들이 일제히 개봉을 하니 관객의 선택을 받는 영화와 받지 못하는 영화로 뚜렷이 나눠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추석시즌의 대혈전에서 최종 승자로 남을 한국영화는 무엇일까요?
CF는 성공불패, 영화는 흥행불가... 김태희 이번엔?
그 중에서 오늘 제가 주목해 본 영화는 바로 [그랑프리]입니다.
왜 굳이 [그랑프리]냐? 라고 물으신다면... 다음주 화요일 시사회에 참가할 예정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네요.
자... [그랑프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역시 김태희입니다.
미모의 지성을 두루 겸비한 현대적 미인으로 각광받는 김태희... 하지만 그녀는 대표작이 없는 미스터리(?)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TV 드라마에서 [천국의 계단]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당시 그녀는 최지우를 괴롭히는 악역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러브스토리 in 하버드], [구미호외전]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TV 드라마에선 좀 나은 편인지도 모릅니다.
영화 배우로써 김태희는 흥행불가의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천]에서 정우성과 함께 한국형 판타지 영화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영화는 쪽딱 망하여 오히려 그녀의 명성에 흠집만 남겼습니다.
이후엔 설경구와 함께 [싸움]이라는 영화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였지만 역시 연기력 논란과 함께 흥행 참패.
[그랑프리]는 김태희에겐 세번째 스크린 도전작입니다.
만약 이번마저 흥행에 실패한다면 영화 배우로써의 김태희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 오빠 양동근이 아닌 칙칙한 예비역 양동근은 어떠한가?
어쩌면 김태희의 연기는 전작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연기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금방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동안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배우들을 통해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김태희의 연기력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상대역이 바로 양동근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돌이켜보면 [싸움]에서도 연기력에 대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설경구가 버티고 있었지만 흥행 실패라는 결과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설경구 탓이라기 보다는 애초에 설경구와 김태희라는 어울리지 않는 커플을 캐스팅한 한지승 감독의 탓일지도 모릅니다.
설경구와 김태희가 너무 어울리지 않았던 커플이라면 양동근과 김태희 커플은 좀 다릅니다.
예고편을 통해 본 양동근, 김태희 커플은 꽤 잘 어울렸기 때문이죠.
단, 문제는 젊고 톡톡 튀는 이미지의 양동근이 에비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관객들은 젊은 오빠 양동근에서 칙칙한 에비역 양동근으로 변한 그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양윤호 감독... 그는 2% 부족한 연출력을 보완했는가?
김태희가 연기력이 많이 좋아질 필요는 없습니다.
[중천]처럼 이쁜 표정 짓느라 영화의 분위기만 망치지 않으면 되고, [싸움]처럼 소리만 버럭 지른다고 연기 변신을 한것이라는 착각만 빠지지 않는다면... 그저 무난한 연기만 펼친다면...
양동근이 굳이 예전의 잚은 오빠 이미지를 고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 연예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감도만 잘 이용해도 양동근의 영화 복귀작은 실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양윤호 감독은 아닙니다.
[그랑프리]가 흥행에 성공하려면 양윤호 감독의 2% 부족한 연출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완되었어야 합니다.
양윤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본다면 데뷔작은 종교적인 찰학을 담은 [유리](박신양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입니다.) 입니다.
그런데 비평가들의 호평과는 달리 관객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던 [유리]이후 양윤호 감독은 관객들이 좋아할 영화를 만들겠다고 독하게 마음 먹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그가 내놓은 영화들은 김혜수, 김호진의 섹스 코미디 [미스터 콘돔], 차인표, 송윤아, 홍경인, 장혁 주연의 학원 코미디 [짱], 박신양과 전지현을 내세운 로맨스 [화이트 발렌타인]이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의 상업 영화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는데 한국판 [분노의 역류]인 최민수, 차승원, 유지태 주연의 [리베라메], 한때 정지훈(비)가 캐스팅되기도 했었던 무도인 최배달의 일대기를 다룬 양동근 주연의 [바람의 파이터], 군사독재 시절 '유전무좌 무전유죄'를 외쳤던 지강혁의 탈주극을 다룬 이성재, 최민수 주연의 [홀리데이], 그리고 양윤호 감독의 유일한 스릴러 김강우, 이수경 주연의 [가면]까지.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들 2% 부족한 영화적 재미로 인하여 비평면에서도, 흥행면에서도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재미있게도 전 그의 영화를 모두 챙겨 보았는데... 언제나 기획 의도는 좋았지만 과도한 감정 표출과 미숙한 연출력으로 언제나 실망만을 했었습니다.
이번 [그랑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획 의도는 신선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연출력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그의 이전 영화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흥행 결과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과연 [그랑프리]는 그 수 많은 한국영화들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결과는 다음 주말에 결판날 것입니다.
다음 주말에 이 영화 살아남는다면 추석 황금연휴까지 흥행이 이어질테지만
다음 주말에 관객의 이목을 잡지 못한다면 추석 연휴엔 다른 영화들에게 스크린을 빼앗기겠죠.
영화배우로의 중요한 기로에 놓인 김태희, 군제대후 복귀작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양동근,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했지만 이렇다할 히트작을 만들어 내지 못한 양윤호 감독에게 [그랑프리]의 성공은 무척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만에 시사회에 참가하는 제게도 기왕이면 [그랑프리]가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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