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으로 친구들과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이 바로 강우석 감독의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강우석 감독은 저와는 매우 특별한 인연을 자랑하는 감독이 되었는데... 그가 연출한 영화는 왠만하면 극장에 봤고, 또 대부분 절 만족시켰습니다.
그러한 강우석 감독이기에 전 그의 신작인 [이끼]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습니다. 영화 [이끼]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다음 웹툰인 윤태호의 [이끼]를 단번에 완독해 버렸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본 [이끼]는 지금까지 강우석 감독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만화였습니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웃음이 있었습니다. 최악의 살인마가 설치고 다녔던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였으니까요. 제 기억으로는 그의 영화중 웃음이 없었던 유일한 영화는 정치 스릴러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였습니다. ([실미도], [한반도]도 가끔 웃긴 장면이 나왔던...)
그런 그가 과연 어둡고, 잔혹한 [이끼]를 어떻게 스크린 속에 담아낼까요?
싱크로율 100% 류해국
[이끼]는 가족을 버리고 낯선 시골에서 혼자 살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전해 들은 류해국이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서 시골 마을에 오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마을 주민이 몇 안되는 이 작은 마을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아버지의 죽음이 그 비밀과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마을 주민들... 그러나 류해국은 오히려 마을에 남아 그 비밀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사실 류해국이라는 캐릭터는 정의로움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입니다. 사소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집착을 하는 그는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칩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아버지의 죽음의 의문을 파헤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는 아주 사소한 것에 의심하고 집착하며 결국 또 다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비밀을 파헤칩니다.
윤태호 원작의 만화를 읽으며 류해국 역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박해일입니다. 그만큼 류해국에 적역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우석 감독도 저와 생각이 같았나 봅니다. [이끼]의 제작을 확정하며 가장 먼저 캐스팅된 것이 바로 박해일이라고 하네요.
의외의 캐스팅 정재영
하지만 [이끼]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마을 이장인 천용덕입니다. 작은 키에 대머리, 그리고 섬뜩한 눈을 가진 카리스마 이장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배우는 변희봉이었습니다. 변희봉만큼 카리스마를 지닌 노년의 배우가 드물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의외로 그가 꺼내든 카드는 정재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원작과는 달리 젊은 이장 컨셉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정재영에게 노인 분장을 시킨 것이죠.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굳이 정재영에게 노인 분장을 시키면서까지 그의 캐스팅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강우석 감독의 인터뷰 기사에 있었습니다.
대답 : 웃음이다. 원작은 진지하고 어둡다. 영화로 옮기면 지루하고 답답하다. 영화는 밝아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천용덕 이장, 박민욱 검사도 원래는 웃기지 않는데 웃음코드를 넣었다.
웃음이라고? [이끼]에서? 그 순간 정재영의 캐스팅이 이해가 되더군요. 정재영은 수 많은 영화에서 가장 진지해야할 순간에 뜻밖에 웃음을 안겨주는 연기에 국내에선 1인자라고 할만합니다. 그 진지한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관객을 웃길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의외의 캐스팅이 이루어진 배경인 셈이죠.
그리하여 모여진 코믹 조연 캐릭터
천용덕 이장을 축으로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섬뜩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캐스팅도 웃음 코드에 맞춰진듯 합니다. 유해진은 물론이고, 김상호도 여러 영화들에서 코믹한 조연으로 이름을 알린 베테랑 배우니까요.
이들이 얼마나 진지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겨줄 것인가에 따라 영화 [이끼]의 성패가 달렸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캐스팅 유준상, 유선
하지만 이 영화, 솔직히 불안요소도 있습니다. 일단 박민욱 검사 역에 유준상이 다른 캐스팅에 비해 약하다는 느낌입니다. 박민욱 검사는 류해국과의 악연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미래를 모두 잃어버린 인물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류해국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데 [이끼]가 류해국이 혼자 마을 사람들을 모두 상대한다는 설정이었다면 그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박민욱 검사의 존재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꽤 중요한 캐릭터인 셈입니다.
과연 영화 배우로써는 아직 관객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유준상이 박해일, 정재영 등 쟁쟁한 배우들 틈바구니 속에서 얼마나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강우석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박민욱 검사에게도 웃음 코드가 많이 가미된 것으로 보이는데 유준상이 이 막대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써는 그저 유준상의 능력을 믿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유준상이 배우로써의 능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아 불안 요소라면 유선의 캐스팅은 이영지 역에 김혜수를 기대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따라온 개인적인 아쉬움 때문입니다.
이영지는 이 영화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로 마을 사람중 유일하게 류해국에게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류해국은 끝까지 그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죠.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에 가장 충격적인 장면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강우석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그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게 세세하게 그려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답변 : 여자가 여러 남자를 상대하는 것이나 불태워 죽이기, 송곳으로 찌르기 등 걸리는 게 많다. 순화를 해 15살로 하면 200만~300만명이 더 들 수도 있지만 그런 손해를 감수했다. 진한 장면은 없다. 배우가 벗겠다는 걸 말렸다. 없어도 된다는 판단이었다. 잔혹함도 지금보다 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 불편해진다. 심의 때 자르겠냐고 묻더라. 거절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이기에 현존하는 충무로 여배우중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인 김혜수가 맡아주길 바랬는데... 부디 유선이 [검은 집]에서처럼 혼자 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결국 영화 [이끼]와 원작 만화 [이끼]의 극명한 차이점은 웃음 코드일 것으로 보이고, 강우석 감독이 얼마나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이 어두침침한 원작을 어색하지 않은 환한 웃음의 세게로 인도할지가 관건입니다. 물론 아무리 웃음 코드가 삽입되엇다고 하더라도 원작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섬뜩한 분위기도 잘 살려내야 겠죠?
글을 쓰고 나니 섬뜩한 분위기와 어색하지 않은 웃음 코드를 함께 살려낸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군요.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감독이라는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니 그가 잘 해낼 것이라 믿어봅니다. 이번에도 결코 절 실망시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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