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브라더스] - 감독의 주제의식도, 배우들의 연기변신도 최고였다.

쭈니-1 2010. 5. 17. 17:16

 

 

 

감독 : 짐 쉐리던

주연 : 토비 맥과이어, 제이크 길렌할, 나탈리 포트만

개봉 : 2010년 5월 5일

관람 : 2010년 5월 12일

등급 : 15세 이상

 

 

수요일이 내게 중요한 이유.

 

요즘은 목요일에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기 때문에 기존 개봉작을 보려면 수요일이 마지막 기회일 때가 많습니다. 특히 극장에서 인기가 없는 영화들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러한 경향이 짙은데 개봉 첫 주에 극장에서 놓쳐 버리면 비디오 시장마저 죽어버린 현 시점에서 놓친 영화를 보려면 다운로드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전 수요일만 되면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뭔가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수요일이 마지막 기회임을 잘 알기에 수요일만 되면 영화 예매 사이트를 뒤지며 어떻게해서든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발버둥치죠.

[브라더스]는 그러한 제 발버둥의 산물입니다. 5월 31일까지 신고해야 하는 종합소득세 자료를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 야근을 하면서까지 일찌감치 끝낸 이유는 수요일날 세무사 사무실로 해당 자료를 가져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꼭 수요일이냐고요? 그건 앞에서 언급한 어쩌면 [브라더스]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급한 업무를 마치고 편안한 기분으로 오랜만에 학창 시절 영화광의 꿈을 키운 종로의 거리에 선 저는 종로 3가의 극장들인 서울 극장, 피카디리 극장, 단성사(요즘엔 피카디리 극장은 프리머스 피카디리로, 단성사는 씨너스 단성사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전 아직도 예전 이름이 좋습니다.)를 차례로 방문하여 [브라더스]의 시간대를 확인하고 결국 서울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예상대로 관객이 별로 없는 텅 빈 극장에서 느긋하게 앉아 [브라더스]가 시작되기를 기다리자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어린 시절 극장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던 그 설레였던 기억이 새록 새록 되살아 났습니다. 그리고 극장 안이 텅빈 덕분에 저는 초반부에 두 뺨위로 흐르는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둘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요일이 지나기 전에 놓칠 뻔한 영화를 보고나면 꼭 해야할 일을 결국 해낸 것만 같은 후련한 느낌입니다. 특히 놓칠 뻔한 영화가 기대대로 재미있었을 경우엔 그 쾌감이 더합니다. [브라더스]가 딱 그러했습니다.    

 

 

너무나 단란했던 한 가정이 있다.

 

미 해병대에서 군무중인 샘(토비 맥과이어)에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와 두 딸이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 짐 쉐리던 감독은 샘과 그의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을 정성껏 화면에 잡아 줍니다. 이러한 단란한 모습엔 토비 맥과이어와 나탈리 포트만의 매력이 많은 기여를 합니다.   

[스파이더맨]에서 어쩔 수없이 떠안게된 초인적인 능력에 대해서 고뇌하고 방황하던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이었던 토비 맥과이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십분 발휘하여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에 나탈리 포트만의 매력까지 더해지는데 [레옹]의 당돌한 소녀 마틸다로 연기 인생은 시작한 그녀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3], [콜드 마운틴], [클로져], [브이 포 벤데타]를 거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지성미가 넘치는 배우로 맹활약 중입니다. 이러한 토비 맥과이어와 나탈리 포트만의 부부 연기는 그리 길지 않은 영화의 초반을 제어하며 단란했던 한 가정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청객이 끼어 듭니다. 바로 샘의 동생인 토미(제이크 길렌할)입니다. 조만간 국내 개봉할 기대작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에서 블럭버스터에 도전하는 제이크 길렌할은 사실 [투모로우], [브로크백마운틴]으로 블럭버스터와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할리우드 최고의 기대주입니다.

그러한 그가 [브라더스]에서는 감옥에서 막 출소한 말썽쟁이 동생으로 출연하여 단란했던 샘의 가족의 일상에 잔잔한 파동을 안겨 줍니다.

무언가 위태위태해 보이는 그의 돌발 행동과 그런 동생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샘의 모습은 완벽하게 대비가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모두 영화 후반을 위한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너무나도 단란했던 샘의 가정도, 위태위태해 보였던 토미의 행동도 모두 한순간에 깨지고 맙니다. 그러한 균열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간 샘의 전사 소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두 뺨으로 흐르는 눈물,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게 하는 참혹함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간 샘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습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레이스에게 샘의 전사 소식이 전해집니다.

샘의 죽음을 통보 받았지만 어린 아이들 앞이라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제 눈에서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게 했습니다. 물론 샘이 사실은 살아 있다는 것도 영화를 보기 전 인터넷 영화 정보를 통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만으로는 제 눈물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놓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지 못하는 그레이스의 슬픔은 이제 8살난 아이의 아버지인 제게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샘의 전사 소식은 토미에게도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데 샘을 대신하여 다정다감한 삼촌이되기 위해서 토미는 최선을 다하고 그러한 토미 덕분에 그레이스와 아이들은 점점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테러범들에게 붙잡힌 샘이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했던 끔찍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노출이 됩니다.

너무나도 참혹하여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었던 그러한 장면들은 토미로 인하여 점점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는 그레이스의 모습과 교차 편집되면서 영화의 후반부에 발생하게될 거대한 파국을 예감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샘이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그레이스의 곁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샘의 고통과 남겨진 이들이 겪어야 했던 슬픔을 토미로 부터 이겨내야 했던 그레이스. 그 둘의 만남은 영화의 초반처럼 단란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두려워하던 두 어린 딸들의 울부짖음처럼 샘은 그토록 사랑했던 자신의 가족들에게 격리되며 오히려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샘의 잘못도, 그레이스의 잘못도, 그렇다고 토미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가장 추악한 범죄인 전쟁이 한 단란한 가정을 파괴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의 작은 행복은 전쟁으로 인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이의 슬픔

 

어찌보면 짐 쉐리던 감독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영화의 초반 너무나도 단란한 가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이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되는 아픔을 관객에게 느끼게 함으로써 전쟁으로 인한 한 가정의 몰락을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어필한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형제인 샘과 토미를 대비시키는데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샘은 한 가정의 착실한 가장으로, 토미는 직장도 변변하게 없는 말썽쟁이 문제아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쟁을 겪으며 샘은 사회 부적응자로써 자신의 가정을 위협하는 가정 폭력범으로 전락하고, 토미는 사려깊고 형제애가 깊은 남성으로 변합니다. 과연 이들을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의심의 여지없이 전쟁입니다. 짐 쉐리던 감독은 직접적이지 않은 화법으로 두 형제의 변화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해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샘에겐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레이스와 토미의 사이에 대한 의심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의 괴로움은 사실 자신이 평생 안고 살아가야할 비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 비밀의 무게가 자기 자신을 짓누르기 때문이죠.

그러한 비밀의 무게가 너무나도 컸기에 그레이스를 원망했고, 토미를 의심했던 샘은 결국 그 모든 무거운 짐을 그레이스에게 나눠줍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초반을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어두웠던 이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도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피폐해진 이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과 대화 뿐임을 짐 쉐리던 감독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비단 영화 속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아직 전쟁을 겪으신 분들이 많으니까요. 우리 젊은 세대가 겪지 못했던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야 했던 그 분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짐 쉐리던 감독의 주제의식이 싫다면 배우들의 연기 변신에 포커스를 맞춰도 좋다.

토비 맥과이어와 제이크 길렌할은 전부 그들답지 않게 변신했고,

나탈리 포트만은 여전히 눈부시도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