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뱅상 뻬레
주연 : 데이빗 듀코브니, 올리비아 썰비, 릴리 테일러
일본 영화 [비밀]의 프랑스 리메이크
제가 [비밀]을 본 것은 6년전 쯤의 일입니다. 빙의라는 특이한 소재의 이 영화는 딸의 몸에 아내의 영혼이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딸이기도하고 아내이기도한 여자를 앞에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꽤 코믹하고 로맨틱하게 잡아냈었습니다. 같은 빙의라는 소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중독]이 상당히 무거운 영화였던 것과 비교한다면 [비밀]은 너무나도 가벼운 영화였습니다.
그러한 [비밀]이 뤅 베송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습니다. 뤅 베송은 감독 자리에 배우 출신인 뱅상 뻬레에게 맡겼으며 뱅상 뻬레는 [비밀]을 프랑스 정서에 맞는 영화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더 시크릿]은 [비밀]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화가 되었습니다.
[비밀]가 같은 소재, 같은 줄거리
기본적으로 [더 시크릿]은 [비밀]의 소재와 줄거리를 고스란히 가져왔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하여 딸인 사만다(올리비아 썰비)의 육체에 들어가게된 한나(릴리 테일러)의 사연과 슬픔과 혼란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편 벤자민(데이빗 듀코브니)의 이야기가 [비밀]과 [더 시크릿]을 이어주는 끈입니다.
물론 디테일한 상황은 프랑스에 맞게 상당 부분 수정했지만 [더 시크릿]이 [비밀]의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보더라도 영화 초반에 '어, 이거 [비밀]과 똑같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그 부분에선 원작에 충실했다고 할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비밀]과 다른 전개, 다른 결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시크릿]은 [비밀]과 180도로 다른 영화입니다. [비밀]이 딸의 육체와 아내의 영혼을 가진 딸도, 아내도 아닌 이로 인하여 혼돈을 겪는 남자의 에피소드를 코믹하고 귀엽게 잡아냈다면 [더 시크릿]은 오히려 벤자민보다는 사만다와 한나에게 더욱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혼돈을 겪는 벤자민의 이야기는 뒤로 밀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딸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시크릿]이 [비밀]과 다른 것은 결말입니다. [비밀]은 남편의 행복을 위해서 다시 딸의 영혼으로 돌아간척 했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며 남편을 자유롭게 풀어준 것에 비해 [더 시크릿]은 실제로 사만다의 영혼이 다시 돌아옵니다.
난 [비밀]이 더 좋다.
이렇게 [비밀]과 [더 시크릿]은 서로 같으면서도 서로 다릅니다. 만약 제게 이 두 영화중 어느 영화가 더 좋냐고 묻는다면 전 주저없이 [비밀]을 선택할 것입니다.
일단 [비밀]은 재미있습니다. 특이한 소재를 부담없는 방식으로 풀어나간 것도 좋았고 마지막 반전도 조금 억지가 보이지만 그래도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더 시크릿]은 그냥 잔잔합니다. 딸과 어머니가 서로 이해하는 이 평범하고 흔한 소재에 왜 굳이 빙의라는 소재를 끌어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마지막 한나가 사만다에게 비디오를 남기는 진부한 설정도 서슴치않고 자행합니다.
[비밀]이 제목인 이유는 영화의 결말에 나타납니다. 남편에게 자신이 아직 그의 아내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숨긴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는 그녀의 선택. 그것이 비밀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더 시크릿]은? 이 영화엔 비밀이 없습니다. 사만다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고, 한나는 사만다의 몸에 잠시 머물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전 [더 시크릿]보다 [비밀]이 좋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밀]이 더 극적이라서...
딸의 육체에 아내의 영혼이 들어갔다. 벤자민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딸의 욱체에 들어간 사만다. 그녀는 원작과는 달리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반항적인 10대 소녀의 육체와 40대 여인의 영혼을 가진 사만다. 이 영화의 유일한 발견이다.
아무리 아내의 영혼을 가졌다고해도 딸의 육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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