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06년 아짧평

화양연화 花樣年華 (2000)

쭈니-1 2009. 12. 10. 21:52

 

 


감독 : 왕가위
주연 : 양조위, 장만옥

졸음이 한없이 밀려오던 일요일 저녁

[뮌헨]의 영화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컴퓨터를 구피에게 빼앗긴 저는 찍소리도 못하고 TV앞으로 쫓겨났습니다. 졸음이 한없이 밀려왔지만 구피없이 혼자 잠자리에 들기싫어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미스 에이전트]에 밀려 보지 못했던 [화양연화] DVD 타이틀을 꺼내들었죠.
예상대로 영화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음악은 흐느적거리며 제게 눈을 감으라고 유혹합니다.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 덕분에 스토리는 한켠으로 물러서있고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양조위, 장만옥과 그림엽서같은 화면들만이 브라운관을 가득 메웁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당연히 리모콘의 스톱 버튼을 누르고 쇼파에 그대로 고꾸라져 잠이 들었어야 마땅했는데 오히려 제 눈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또렷해졌다는 겁니다. 처음본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극적인 스토리도 아니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대는 영화도 아닌데 말이죠.

그여자, 그 남자, 서로 사랑하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옆집에 사는 차우(양조위)와 리첸(장만옥)은 어느날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의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으로 밀월여행을 간사이 차우와 리첸은 자신의 배우자가 그랬던것처럼 서로에게 조금씩 이끌립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을 하죠.
영화는 차우와 리첸이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그 순간을 결코 서두름이 없이 아주 천천히 잡아냅니다. 요즘처럼 처음만나 키스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초스피드 시대에서 이 두사람은 답답할 정도로 망설이고 끊임없이 '우린 아무 잘못도 하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채찍합니다.
영화를 보는동안 그들은 정말 사랑하는 것이 맞을까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혹시 배우자에 대한 복수심, 혹은 불륜에 대한 호기심에 저렇게 불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하지만 왕가위 감독은 이 두사람이 얼마나 애틋한 사랑을 했는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표현합니다. 처음엔 답답할 정도로 느린 그들의 사랑이 마지막 순간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컥거리는 감동을 몰고올줄이야...

명작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5년도 휠씬전에 저는 극장에서 [화양연화]를 봤습니다. 이미 그 당시 왕가위 감독의 열렬팬이었던 저는 [화양연화]도 넋을 놓고 봤었죠. 하지만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세월이 지나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음악과 아름다운 이미지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전 어느 영화 사이트에서 이벤트에 당첨되어 DVD타이틀을 고를 행운이 주어졌을때 저는 [맨 온 파이어]를 제치고 무작정 [화양연화]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냥 [화양연화]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묻어나는 아련한 추억에 중독되어...
그리고 이렇게 또다시 [화양연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군요. 이런 것이 바로 명작이 아닐런지... [화양연화]는 너무나도 강렬하여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는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마음속 깊숙이 아련히 남아 제목만 들어도 왠지 설레이고, 막상 영화를 보면 처음보는것처럼 새로운 재미를 안겨줍니다. 제가 왕가위 감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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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의전설
화양연화의 이미지는 그냥 이미지가 아니어서랍니다. 이미지에 무언가가 녹아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감각을 넘어선 감동을 주는게 아닐까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평범하지만 사랑하면서 점점 더 또렷한 존재감을 표현한 영화~ 화양연화입니다. 화양연화라는 뜻은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나타내는 중국사자성어로 알고 있습니다.  2006/02/14   
쭈니 턱의전설님의 말씀이 옳은 것 같네요.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그 속에 무언가가 녹아있나봅니다.
[화양연화]를 보고나니 왕가위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보고 싶어지더군요. 특히 [동사서독].. ^^
 200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