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현남섭
주연 : 배두나, 김태우, 주현, 고두심
개봉 : 2002년 10월 18일
1년전 가을... 저는 금순이라는 이름의 여인에게서 실연을 당했습니다. 정말 그 당시엔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고, 혼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점차 그녀를 잊어가고 있을때쯤...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왜하필... 금순이란 말인가...
처음엔 그녀의 전화번호를 잊고, 점차 그녀의 얼굴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금순이라는 그 특이한 이름만은 계속 제 언저리를 빙빙 돌며 절 괴롭혔습니다. 그때 저는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영화가 개봉되면 어떻게하나?' 하는 고민을 해야했습니다. 어렵게 그녀에 대한 것들을 잊었는데, [굳세어라 금순아]가 개봉되면 그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 절 괴롭힐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그리고 올 가을 드디어 [굳세어라 금순아]가 개봉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우려했던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이 영화가 개봉되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물론 생각도 못할 일이며, 이 영화의 포스터만 보면 피해다니느라 정신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막상 이 영화가 개봉되던 첫날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유쾌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곁엔 사랑스러운 그녀가 제 손을 꼬옥 잡고 함께 웃어주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상처앞에는 세월보다도 더 좋은 약이 있습니다. 효과도 좋고 시간도 휠씬 적게 소모되는 약... 그것은 새로운 사랑입니다. 이제는 금순이때문에 아파 할 일도 우울해 할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곁엔 그녀가 있으니까요. ^^
[굳세어라 금순아]... 제목부터 무지 촌스러운 이 영화는 내용 자체도 촌스러움의 극치입니다. 전직 배구 선수였던 아줌마가 술집에 잡혀 있는 남편을 찾아 유흥가를 헤맨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라고 하더군요. '과연 이러한 것들이 영화적인 재미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이 영화를 처음 맞이하였을때의 제 첫 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하고 초보 아줌마 금순(배두나)의 모험이 점차 무르익을때쯤 영화 시작전의 그 의문은 단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줌마... 지금까지 우리가 무시하고 지내왔던 아줌마라는 소재가 이토록 영화의 재미를 윤택하게 할줄이야...
한마디로 이 영화의 모든 재미는 아줌마라는 그 단어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도 아줌마이며, 첫사랑의 소녀도, 거리에서 만나는 그 우아한 미소의 여인도 몇년후엔 아줌마가 될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라는 단어는 결코 듣기 좋은 단어는 아닙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선 자리에 앉기위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리 투쟁을 하는 아줌마. 자리에 앉자마자 신발을 벗고 남들이 보던말던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는 아줌마. 지금까지 제게 아줌마라는 단어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러한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정면에 내세운 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줌마를 통해 영화적인 재미를 확실하게 잡아냅니다. 무식한 욕설이 난무하는 것도 아니고, 억지 상황이 관객들을 억지 웃음속에 몰아 넣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아줌마가 남편을 찾기위해 무법천지 유흥가를 헤맨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새로운 재미를 획득하며, 저를 무한한 웃음의 세계로 이끌었던 겁니다.
이 영화가 이렇게 아줌마라는 캐릭터만으로도 웃음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배두나라는 배우의 힘이 컸습니다. 배두나... 지금까지 그녀가 연기를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잘하는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앳띤 얼굴로 어쩜 저렇게 아줌마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잘할 수 있을까.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하더군요.
결국 [굳세어라 금순아]는 배두나를 캐스팅함으로써 아줌마라는 영화속의 캐릭터를 좀더 영화적으로 변모시킵니다. 만약 금순이라는 캐릭터가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중년의 아줌마였다면 과연 이 영화가 이토록 재미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이 영화는 아줌마라는, 영화와는 안어울리는 캐릭터를 사용함과 동시에 선남선녀 배우인 배두나와 김태우에게 아줌마, 아저씨 역활을 맡김으로써 아줌마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 시키는데에 성공한 겁니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아줌마의 스크린 진출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 시키며 영화적인 재미로 이끌어가는 현남섭 감독의 그 현명함만은 눈여겨 볼 만합니다.
이렇듯 영화속의 아줌마 나이를 20세라는 꽃다운 나이로 국한시키고 배두나라는 예쁜 배우를 아줌마에 캐스팅함으로써 '아줌마 영화'에 약간의 편법을 가미한 이 영화는 초보 아줌마 정금순의 진정한 아줌마로 태어나기라는 스토리 형식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다시말해 아줌마 성장 영화라고나 할까요. ^^;
20세의 초보 아줌마 정금순. 할 줄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이 어리버리 아줌마는 남편을 찾기 위한 유흥가에서의 하룻밤을 통해 진정한 대한민국의 아줌마로써 성장하는 겁니다.
이렇게 순진무구하고 실수투성이인 정금순이 점차 무시무시한 아줌마로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 주의의 어리고 예쁜 여자들도 저렇게 나중엔 아줌마로 성장할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더군요. 특히 제 옆에 순진한 웃음만을 짓고 있는 그녀도 언젠가는 정금순이 그랬던것처럼 무시무시한 파워의 아줌마로 변신하겠죠? ^^;
이 영화는 이렇게 초보 아줌마의 아줌마 성장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새롭고 풋풋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현남섭 감독은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리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역시 아줌마라는 캐릭터만으로는 영화의 재미를 끝까지 끌고 가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요즘 우리 코미디 영화의 주류 아이콘인 어설픈 조폭을 영화속에 등장시킵니다.
온 몸을 하얀색으로 도배를 하고 그 하얀색에 티끌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여느 조폭 코미디 영화속의 조폭처럼 조금은 과장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조폭 백사(주현)는 아줌마라는 코미디 영화계의 새로운 아이콘과 진검 승부를 하며 영화의 재미를 끝까지 이끌어냅니다.
조폭 대 아줌마의 대결이라... 마징가Z 대 태권V의 대결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대결임에는 분명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배두나의 연기에 감탄하고, 김태우의 술취한 연기에 감탄하고, 아줌마라는 새로운 코미디 영화계의 스타가 탄생했음에 감탄을 하며 극장을 나섰습니다.
비록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뻔뻔스러운 아줌마가 나오지는 않았으며, 코미디 영화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폭이 역시 이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그래도 아주 깔끔하게 웃고 나온 것 같습니다. 특히 조폭한테 쫓기는 그 싱황에서도 시부모를 위해 고등어를 사는 정금순의 그 아줌마다운 면모... 역시 아줌마를 이길수 있는 것은 정녕 시부모밖에 없단 말인가...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들더군요.
영화가 끝나도 금순의 그 울트라 파워 손찌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는 대단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