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 베송이 헐리우드 영화같은 프랑스 액션 영화들을 만들며 보수적인 프랑스 영화계를 일시에 바꾸었던 것도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사이 뤽 베송은 제작자로 한걸음 물러서서 능력있는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며 계속 관객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설수 있는 오락 영화에 치중했으며 그 결과 프랑스 영화는 무거운 자기도취적인 예술 영화를 벗어던지고 점차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들어서 그런 뤽 베송 사단의 영화들이 위험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 예전과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뤽 베송은 지루한 프랑스 영화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킨 감독이며, 뤽 베송 사단의 젊은 감독들은 프랑스 영화계에 희망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여기 뤽 베송 사단과는 상관없으면서 헐리우드의 액션 영화를 표방하며 나선 두명의 프랑스 감독이 있습니다. 한명은 [피스피커]라는 영화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프레데릭 포레스티에 감독이고, 다른 한명은 [파파라치], [식스팩]을 만들어 흥행에도 성공시킨 알랭 베르베리앙 감독입니다. 그들은 아주 맘먹고 철저하게 대중을 위한 코믹 액션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한 듯이 보입니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블리트]는 프랑스와 유럽에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며 이 두 감독은 프랑스 영화계의 새로운 스타 감독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의 시작은 그야말로 쥑입니다. 놀이공원에서의 액션씬은 미니어쳐라는 것이 뻔히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영화만의 스펙타클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장면만으로 오랜만에 [택시]와 같은 제대로된 프랑스 코믹 액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섣부르게 생각한 저는 곧이어 실망감을 느껴야 했고, 실망감은 지루함과 분노로 바뀌어 갔습니다.
[블리트]... 이 영화는 분명 뤽 베송 사단의 영화처럼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를 적당히 흉내내며 영화적인 재미를 추구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자국의(혹은 유럽의) 관객들에게 만족을 줬을지는 모르지만 유럽이라는 그 자그마한 대륙을 벗어나면 어처구니없는 액션영화로 전락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과장된 캐릭터와 설정때문입니다.
특히 멍청한 교도소 간부 레지오(브누와 폴블루드)라는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짜증은 그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꽉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쉴새없이 입을 놀려대며 실수만을 연발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코미디 부분을 책임지기는 하지만 그가 제게 웃겼던 것은 영화 초반 아주 잠깐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며 레지오의 파트너인 몰테츠(제라드 랑방)의 인내심이 경이롭게 느껴지더군요. 영화 초반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을 배신한 동료를 쏴 죽이던 그 냉철한 모습은 간데없고 쉴새없이 떠들어대며 매번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레지오에겐 왜그리도 너그러운지... 그가 레지오를 한대 때렸을때 오히려 제 속이 다 후련하더군요. 만약 제가 몰테츠였다면 레지오는 이미 오래전에 쏴 죽였을 겁니다. ^^;
이런 과장된 캐릭터 묘사와 더불어 이 영화의 상황은 억지 웃음을 연발하기위한 억지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무법천지로 그려낸 아프리카의 모습은 이 영화가 약소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말해줍니다. 물론 웃자고 만든 코미디 영화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쓰는 것은 쓰잘데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무대가 아프리카가 아닌 우리나라였다면 정말 분통이 터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믹 액션... 뭐 좋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코믹이라고 할지라도 어느정도 상황이 설득력이 있어야 하며 캐릭터도 너무 과장되어서는 안됩니다. 유럽의 관객들은 레지오같은 짜증나는 캐릭터를 보며 웃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다른 관객들은 웃음보다는 짜증을 낸다는 것도 알아야 할겁니다. 결국 [택시] 이후 조금 더 진보된 프랑스식 액션 영화의 진수를 맛보려다가 예전과 다름없이 과장된 액션과 캐릭터, 상황설정으로 일관하는 퇴보된 액션 영화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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