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녁 시간을내서 아내와 함께 비디오 한편을 보기로한 무지 무덥던 어느날... 귀찮다고 투덜대는 아내를 뒤로하고 저 혼자 비디오 가게로 엉그적거리며 걸어갔습니다. 아내가 보고 싶다고 했던 영화는 [블리트]... 하지만 비디오 가게를 한바퀴 빙 둘러보다가 제 눈에 확 띄인 영화는 [맛잇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극장에 개봉한 것이 6월 27일이니 이제 겨우 한달남짓 지났을뿐인데 벌써 비디오에 출시되었다는 것과 야하다는 이 영화에 대한 소문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결국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개봉당시 제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제 호기심을 건드린 이유는 단 하나... 봉만대라는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 그는 비디오용 에로 영화의 감독으로 명성을 높이다가 극장용 장편영화로 당당하게 데뷰한 신인아닌 신인 감독입니다. 아직까지 성의식에서만은 배타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디오용 에로 영화들을 즐기면서도 겉으로 들어내기 꺼려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비디오용 에로 영화의 감독들과 배우들은 스타로 떳떳하게 대중앞에 나서기 보다는 뒤에 숨기 일쑤였고, 충무로의 그 콧대높은 영화인들과 대부분의 관객들 역시 그들을 모르는채하거나 괄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요즘들어서 유명 에로 배우들의 팬클럽이 생기는 등 비디오용 에로 영화들도 서서히 대중앞에 당당하게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더불어 드디어 에로 영화 감독이라는 이력을 가진 봉만대 감독이 당당하게 극장용 장편영화로 데뷰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겁니다.
제가 봉만대 감독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비디오용 에로 영화의 감독에서 당당하게 주류인 극장용 장편 영화의 감독으로 데뷰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극장용 장편영화 데뷰작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에로 영화라는 사실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봉만대 감독의 입장이라면 3류 에로 영화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벗기위해서라도 극장용 장편영화는 멜로나 액션 혹은 주류 장르인 코미디를 선택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에로 영화를 데뷰작으로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극장용 장편 영화 데뷰의 의미를 자기 자신의 성공을 위한 작업이 아닌 음지에 몰려있는 에로 영화의 활성화를 꾀한 겁니다. 이 얼마나 용기있으면서도 당당한 선택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확인한 봉만대 감독의 이 야심찬 극장용 장편 데뷰작은 실망만을 안겨주었습니다. 무언가 에로 영화 감독을 하며 느낀 섹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다른 에로 영화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비현실적인 상황과 별 특징없는 섹스씬때문에 지루함만 느껴야 했습니다.
화장실에서의 갑작스런 섹스... 고속버스안에서의 오럴섹스 등 이 영화가 선보인 섹스씬은 도발적이긴 하지만 비현실적이어서 가슴에 와닿지 않았으며, 캐릭터의 섬세한 성격묘사에 실패함으로써 이 영화가 그리고자하는 메세지는 느끼지 못하고 끊없이 이어지는 섹스씬에 지루함만을 느껴야 했습니다.
분명 봉만대 감독의 이 용기있는 선택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비디오용 에로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이 충무로로 유입됨으로써 우리 영화에 좀더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영화에는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극장용 장편 영화는 비디오용 에로 영화와는 관객층이 다르기에 스토리와 캐릭터 구성에 좀더 신경을 쓰지않으면 안됩니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없이 이어지는 섹스씬은 결국 섹스씬만을 위한 비디오용 에로 영화와 하나도 다른 점이 없는 겁니다. 주류로의 꿈을 간직한 제 2의 제3의 봉만대 감독은 그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만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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