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8년 영화노트

죽이는 이야기 ★★★★

쭈니-1 2009. 12. 9. 15:19

 

 



날짜 : 1998년 8월 12일
감독 : 여균동
주연 : 문성근, 황신혜, 이경영

95년 여균동이라는 괴짜가 [세상 밖으로]라는 영화를 내놓았을때 충무로는 발칵 뒤집어지고 말았다. 조금은 얌전하고 보수적이었던 한국영화를 비웃듯 온갖 욕설과 속어로 가득 채워진 [세상 밖으로]는 40만이라는 흥행성공과 함께 여균동에게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안겨 줌으로써 한국영화의 새로운 활력을 제공해 주었다.
그 후 관객은 여균동이라는 괴짜를 감독으로써가 아니라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주연배우로써 만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발기불능의 은행원으로 출연했던 그는 청룡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함으로써 한 해에 감독상과 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기행은 끊이지 않았다. 그의 두번째 연출작인 96년작 [맨]은 [포르노 맨]이라는 원제의 공윤과의 시비와 더불어 우리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포르노'를 소재로한 그야말로 파격적인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맨]은 너무 빨리 우리나라 관객에게 도착했다. 여균동 감독의 개인적인 상상에서 비롯된 이상한 포르노의 세계를 그린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면에서 완벽한 외면을 당함으로써 여균동 감독은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짧고도 긴 세월이 흘렀다. 여균동 감독은 단편인 [외투]라는 영화를 만들었을뿐 97년도를 조용히 보내는듯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세번째 프로젝트를 조용히 진행시키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우화 [죽이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죽이는 이야기]는 [맨]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세상 밖으로]의 세상에 귀환한 영화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맹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어떻게 관객에게 흥미를 던져줄 것인가?'와 '어떻게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할 것인가?'이다.
그 첫번째 맹점을 위해 여균동 감독은 스타 시스템을 이용했다. 유오성과 조민수라는 영화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기용하고 여균동 감독 자신이 주연을 맡은 [맨]과는 달리 [죽이는 이야기]는 이미 [세상 밖으로]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 문성근, 이경영과 한국 최고의 여배우 황신혜를 캐스팅했다.(원래는 황신혜의 자리에 3류 애로영화의 스타 진도희가 캐스팅될뻔 했다.) 그리고 '빨간 마후라 사건'을 빗대듯 훔쳐보기와 몰래 카메라의 이미지를 도용하여 관객에게 흥미를 던져 주었다.
두번째 맹점은 여균동 그 스스로 해결하였다. 구이도(문성근)라는 평범한 감독의 영화를 만들기를 통해 그는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우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블랙 코미디이다. 구이도 감독을 비롯하여 멍청한 여배우 말희(황신혜) 그리고 다분히 폭력적인 남배우 하비(이경영)를 통해 어이없는 웃음과 한국영화계의 슬픈 현실을 말해준다. 여관을 무대로한 슬픈 사랑이야기를 구상했던 구이도의 의도는 슬픈 사랑의 여주인공이고 싶은 말희와 이 영화를 폭력적인 느와르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는 하비의 참견에 어긋나게 된다. 구이도는 자신의 주관을 잃어버리고 그저 흥행영화 만드는 기계가 되어버린 충무로의 힘없는 감독들을 빗댄 것이며 말희는 허영에 빠진 스타 시스템의 허구와 구이도에 대한 성적 유혹을, 하비는 야비한 제작자들의 흥행 속성과 충무로의 폭력을 빗대고 있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춘자는 포르노와 몰래 카메라의 도용 속에 스스로 몰락해가고 구이도는 춘자의 몰락과 함께 끝장나고 만다. 그러나 말희와 하비의 영화는 성공한다. 이러한 결말은 한국영화계에 대한 여균동 감독의 곱지않은 시선이 담겨져 있다. 그는 충무로에는 작가주의 정신은 이미 죽었으며 스타와 돈만 남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여균동 감독 스스로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며 넋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문제점은 오히려 첫번째 맹점 과정에서 드러난다. 여균동 감독 그 스스로 [맨]의 실패에서 벗어나기위해 자신이 비판한 스타 시스템과 구이도가 처했던 유혹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는 과도하게 황신혜의 누드에 집착하고 급기야는 컴퓨터 합성을 통해 관객을 속이면서까지 황신혜의 가슴을 공개하였다. 여관방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는 요즘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나 여균동 감독은 너무 노골적으로 그것에 집착한다.
그는 아직 [맨]에서의 포르노의 세계를 포기하지 못했으며 이 영화에서는 좀 더 대중적으로 표현하다보니 감독의 목소리보다 여배우들의 누드가 더 두각을 나타내고 말았다.
그리고 또한가지, 이 영화가 우디 알렌 감독의 [브로드웨이를 쏴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러기엔 [죽이는 이야기]는 주제와 내용면에서 [브로드웨이를 쏴라]와 너무 닮았다. 우리나라 영화계의 현실과 미국 브로드웨이의 연극계의 현실이 여균동과 우디 알렌의 생각을 동일화시킬만큼 비슷한 걸까? 그것은 여균동 감독만이 알 것이다.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여균동 감독은 [죽이는 이야기]이후 [미인]이라느 영화로 준포르노에 도전했었죠. 그가 포르노의 세계를 포기못했다는 반증입니다. ^^
[미인]은 [맨]이나, [죽이는 이야기]와는 달리 고급스러운척 포장되었지만 여전히 흥행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여균동 감독의 영화가 좀 뜸하네요.
그의 개봉 예정작을 보니 [1724 기방난동사건]이라는 코믹사극을 준비중인 것 같은데... 그의 괴짜스러움을 다시 보게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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