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98년 8월 8일
감독 : 김지운
주연 : 박인환, 나문희, 최민식, 송강호, 이윤성, 고호경
최루성 멜로영화의 짧은 전성기를 보내고 98년 들어서면서 한국영화계엔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7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던 공포영화의 부활이다. 물론 '전설의 고향'식의 전통 공포영화의 부활은 아니지만 코미디와 멜로에 치중되어 있던 국내 영화계의 현실에 비추어본다면 분명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관객에겐 선택의 폭이 넓어 졌으니 말이다.
[조용한 가족]은 공포영화의 신호탄이 되었던 작품이다. 전통 공포영화 장르와는 거리가 멀지만 산장을 경영하던 가족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죽이는 상황을 코믹하게그린 코믹잔혹극이다. 어찌보면 공포보다는 코미디에 더 가깝다. 이는 어쩌면 갑작스러운 공포 장르의 부활보다는 공포와 코미디를 조화시켜 관객들의 낯설음을 최소화 시키려는 제작진의 전략일수도 있으며 어찌되었건 그들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98년도를 공포영화 부활의 해로 만들었다.
[조용한 가족]은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매우 새로운 영화이다. 음산한 산장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가즉들의 이상한 체험을 그린 이 영화는 살인과 시체유기가 반복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영화적 공간을 산장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제한해 놓고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라는 모티브를 이용해 평범한 가족들을 점차 벼랑 끝으로 몰고간다. 그러나 심각한 분위기보다는 미국독립영화의 대가 코헨 형제의 영화와 같은 블랙코미디냄새가 물씬 풍긴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산장 경영에 나선 강대구(박인환)와 그의 아내(나문희), 그리고 덜 떨어진 삼촌 창구(최민식)와 폭력전과가 있는 큰아들 영민(송강호), 큰딸 미수(이윤성)와 막내 미나(고호경)로 구성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악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다. 그러한 그들은 첫손님의 자살로부터 시작되는 예기치못한 사건들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두번째 손님인 연인들은 음독 자살을 하고 미수를 넘보던 한 남자는 벼랑에 떨어지고 킬러와 경찰이 서로 방이 뒤바뀌어 죽게되고 마을 이장도 계단에 떨어져 죽는다. 처음엔 영민이 누명을 쓸까봐 시체를 유기하던 가족들은 점차 시체묻는 일쯤은 김장독 묻는 일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게되고 사건은 사건을 낳고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인 [아담스 패밀리]를 연상케하는 이 영화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주는 묘미와 송강호, 최민식 등 스타는 아니지만 연기파 배우들이 펼치는 명연, 그리고 적절한 음악의 조화와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 등 신인 감독의 영화같지않은 노련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라스트의 어색함이라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권태로부터 시작하여 심상치않는 사건으로 이어지는 초반부와 사건이 점차 불어지는 중반부에 비해 느닷없이 등장하는 킬러로부터 시작되는 후반부는 힘이 실려있지 못하다. 킬러와 경찰의 방이 바뀌고 킬러는 실수로 경찰을 죽이고 영민은 킬러를 죽이고 킬러를 고용했던 이장은 대구와 싸우다 계단에 떨어져 죽는다. 조금은 억지스럽게 보이는 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렇기에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아무런 사건도 해결되지 않은채 만신창이가 되어 식탁에 마주 앉은 가족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는 감독이 내려주는 결말에 익숙한 관객에게 조금은 엉뚱하다. 마지막을 열어 놓아 관객의 몫으로 돌리려는 감독의 의도는 좋았으나 열어 놓아도 너무 열어 놓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요즘 여름방학 시즌이면 매주 끊임없이 개봉하는 공포영화들이 바로 1998년부터 시작되었군요.
당시엔 코미디와 멜로에 치중되어 있는 우리 영화가 공포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관객의 선택의 폭을 넓게 했지만 요즘은 그런 공포영화 조차도 코미디, 멜로와 더불어 너무 식상한 장르라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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