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8년 영화노트

억수탕 ★★★★

쭈니-1 2009. 12. 9. 14:44

 

 



감독 : 곽경택
주연 : 김의성, 방은희

박철수 감독은 [산부인과]에서 특정한 줄거리가 없는 에피소드만으로 영화를 진행하는 가십 시네마라는 장르를 창조해 냈었다.
그리고 여기, 신인 감독인 곽경택 감독은 의도했던, 그러하지 아니했던간에 가십 시네마의 장르를 이어나가는 [억수탕]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산부인과]와 [억수탕]은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산부인과]는 산부인과 병원이라는 조금은 낯선 공간을 통해 황신혜와 방은진이라는 두 여배우를 중심에 세워놓고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엿보기 향식으로 그려졌다. 생명을 탄생시킬수도, 또는 그 반대로 죽일수도 있고, 여성의 가장 내부적인 비밀을 볼수 있는 산부인과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감은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억수탕]은 목욕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녀노소가 모두 부꾸러움없이 알몸이 될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목욕탕을 배경으로 감독 지망생인 김의성과 실패한 사진작가인 방은희를 각 공간의 중심에 세워놓고 여러 에피소드만으로 영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억수탕]은 [산부인과]의 계보를 잇는 영화라 할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임완기(김의성)라는 영화감독 지망생과 황정미(방은희)라는 누드 사진 작가이다. 이 두 사람은 문화예술부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매우 많다. 완기는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야한 영화나 만들어보자는 내키지 않는 제의만 받을 뿌이다. 정미는 전시회 한번 제대로 열어보지 못한 무명 사진 작가로 갤러리 기획실장의 유혹에 빠져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신념과 성공이라는 두 길 사이에서 고민에 빠져 있다. 완기는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를 포기하고 성공을 위해 야한 영화를 찍을 것인가? 정미는 갤러리 기획실장에게 몸을 팔고 자기의 사진을 전시회장에 내걸것인가? 이제 영화는 목욕탕이라는 원초적인 장소로 옮겨진다. 섹슈얼리티에 빠져있는 두 주인공은 이제 가장 섹시한 그러나 느끼지 못하는 장소에서 각자의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영화는 두 주인공에게 멀어지며 목욕탕의 인간 군상들에게 그 초점을 맞춰진다. 환자들에게 포경수술을 하라고 설득하면서도 자신은 포경 수술을 하지 않는 비뇨기과 의사, 성병에 걸린 스님과 학교를 땡떙이치고온 중학생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한 코큰남과 건달까지. 남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여탕은 조금 시끌벅적히다. 여탕 훔쳐보기 상습법에서부터 갈등이 심한 고부, 그리고 남편의 선거운동을 위해 때밀이에 나선 구의원 후보 아내와 섹시한 러시어 여인까지. 여탕 에피소드는 도둑 소동과 여장 남자 소동을 절정으로 결말에 치닫는다. 그리고 정미는 일련의 사건들속에서 삶의 소박함을 느끼게되고 자신이 고집했던 누드 사진을 버린다.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지나친 섹슈얼리티에 빠진 이 땅의 문화예술인에 대한 경고이다. 그러나 더욱 웃긴 것은 섹슈얼리티를 경고하는 이 영화의 무대가 목욕탕이라는 것이다. 곽경택 감독은 목욕탕이라는 장소를 통해 주제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을 했으며 누드에 대한 훔쳐보기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남자 관객에겐 여탕 훔쳐보기를, 여자 관객에겐 남탕 훔쳐보기라는 상업적 무기를 내민 것이다.
그러한 곽경택 감독의 의도는 어느정도 적중한듯 하다. 영화사상 유례없는 누드씬들은 관객의 훔쳐보기 심리를 충분히 자극시켰다.
그러나 일련의 에피소드에 의한 주제 표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 영화에 표현된 에피소드들은 각자의 개연성을 표현하지 못한채 각자 따로 노는듯한 인상을 심어 주었으며 그러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얻은 완기와 정미의 깨달음은 그렇기에 억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곽경택 감독의 신선한 기획은 높이 살만하다.

1998년 2월 18일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친구]의 흥행 대박으로 어느새 거장이 되어 버린 곽경택 감독. [챔피언]을 거쳐 [똥개], [태풍]으로 흥행성에선 꽤 인정받는 감독이 되었죠.
[억수탕]은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입니다. 데뷔작답게 상당히 소박한 저예산 영화입니다.
하지만 목욕탕이라는 공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신인다운 패기는 과연 그가 한편의 영화로 사라지는 여느 신인 감독이 아닌 오래동안 장수 할수 있는 감독임을 증명한 것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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