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크 리
주연 : 블렌다 블레딘, 마리안느 진 밥티스트
96년 49회를 맞이한 깐느 영화제는 영국의 마이크 리 감독의 사려깊은 가족 영화 [비밀과 거짓말]에 그랑프리를 안겨주며 막을 내렸다.
그리고 97년 3월에 거행된 아카데미는 [비밀과 거짓말]을 작품상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려놓아 그 관심이 증폭되었다.(그러나 역시 [비밀과 거짓말]은 아카데미에서 한개의 상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비밀과 거짓말]은 예술영화의 중심에 서있는 깐느 영화제에서(일반인의 잣대로 생각해볼때) 최고의 영예를 차지했으며 상업 영화의 중심에 서있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소한의 관심을 받았다.
과연 무엇이 이 영화를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의 논란 대상이 되게끔 했을까?
이 영화는 한마디로 가족 영화이다. 양부모의 죽음으로 생모를 찾으려는 흑인 여성 호텐스(마리안느 진 밥티스트)는 자신의 생모가 백인인 산티아(블렌다 블레딘)라는 사실에 놀란다. 한편 신티아는 딸 록산느와의 불화와 남동생 부부와의 단절과 절망에 빠져있던중 호텐스와 만나게 되고 27년전 포기한 호텐스로 인해 신티아는 다시 생의 즐거움을 되찾는다. 그리고 록산느의 21번째 생일날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신티아의 가족들은 서로를 향한 비밀을 털어놓고 화해한다.
이 영화는 분명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좀더 깊숙히 들어가보면 전 인류의 화해에 대해서 마이크 리 감독은 이야기하고 있다. 인종간의 화해(호텐스와 신티아) 세대간의화해(신티아와 록산느) 그리고 남녀간의 화해(모리스 부부)를 한가족의 이야기속에 비유하여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유럽 통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모든 이들은 이제 비밀과 거짓말을 털어버리고 진실로써 서로를 대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마이크 리 감독의 이 우화같은 이야기는 깐느 영화제의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으며 보수주의적 색체에 대한 아카데미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논쟁에 비켜서서 관객의 입장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정말로 곤혹스러운 영화이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동안 이 영화가 펼쳐놓은 이야기로는 고작 한 가족에 대한 비밀들 뿐이다. 별다른 클라이막스도 반전도 없는채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영화의 플롯을 쫓아가기엔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지루하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디오 출시를 위해 2시간 15분으로 러닝타임이 단축되었다는 것이다. 가위손이 고마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관객의 재미뿐 아니라 관객의 행복(영화를 보는 동안의)따위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모리스 부부의 생활은 무미건조하기만 하고 산티아와 록산느의 갈등은 짜증나기만 하다. 깐느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산티아역의 블렌다 블레딘은 코맹맹이 소리로 징징 울어대기만 하고 록산느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짜증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그야말로 짜증나게 몰아간다.
영화가 시작한지 1시간 30분동안 영화에서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티아와 호텐스의 만남후 영화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마이크 리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비밀로 인한 타인과의 단절로 인한 불행 이것이 영화 초반 마이크 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며 흑과 백 그리고 신세대와 구세대의 신티아와 호텐스의 만남을 계기로 영화의 분위기를 조금씩 조절한 것도 그의 주제 정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런 면에서 마이크 리 감독은 자신의 주제의식을 확실하게 스크린 속에서 펼쳤으나 관객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수 없다.(난 전 인류의 화해보다 2시간동안의 행복이 더 소중한 이기적인 동물이다.)
1998년 2월 14일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마지막 글귀가 가슴에 확 와닿네요.
제가 예술 영화보다도 오락 영화에 취향이 편중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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