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윤현
주연 : 한석규, 전도연, 추상미, 김태우
96년 추석은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들이 일제히 개봉되어 관객을 기쁘게 했었다. 그중 [접속]과 [창]은 성공하였으며 ([접속]은 7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96년 한국 영화 흥행 1위가 되었으며, [창]은 48만명 동원으로 2위가 되었다.) [현상수배]는 그저 그랬고, [마리아와 여인숙], [블랙잭]은 실패했다. (그 결과 [마리아와 여인숙]의 제작사인 선익 필름은 부도가 났으며, [블랙잭]의 정지영 감독은 또다시 슬럼프에 빠졌다.)
이러한 흥행 결과는 멜로 드라마를 한국 영화의 새로운 유행으로 번지게 했고 한국식 스릴러는 아직 시기상조임을 알려주었다.
솔직히 [접속]은 그리 새로운 영화가 아니다. 사랑의 상처를 지닌 두 남녀의 사랑을 조용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소재를 PC통신으로 했을뿐 내용상으로는 새로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80년대 운동권 영화를 만들었던 장윤현 감독은 이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를 아주 새로운 영화로 탈바꿈 시켜 버렸다.
그는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왕가위 스타일의 도시적 고독과 사랑을 스크린 속에 그려내고 있지만 현란한 카메라 워크를 철저히 배제하고 안정적인 카메라 앵글을 선택하여 무조건적인 왕가위 따라가기가 아닌 아주 한국적인 모던한 신세대 감각적 사랑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의 신세대적 감각은 영상에서 뿐만 아니라 음악과 소품들에서도 엿볼수 있다.
그가 극중 사용한 올드팝은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리며 관객을 감동시켰고, PC통신, 삐삐, 플라로이드 카메라 등의 소품은 신세대 관객들을 영화속에 동화시켰다.
대학시절 선배의 애인인 영혜를 사랑했던 동현(한석규)은 군에 입대한 선배의 죽음과 그로인해 떠나버린 영혜에 대한 사랑의 상처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꺼리는 라디오 방송국 PD이다. 그에겐 지금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작가 은희(추상미)가 있으나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리고 또한명의 주인공인 수현(전도연)은 친구의 애인인 기철(김태우)을 짝사랑하고 있다.
영화는 두사람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우연에 대한 영화이며 그 우연속에 내제된 필연에 대한 영화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대사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만난다고 생각해요'라던 수현의 대사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두사람은 세번 마주친다. 첫번째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고 나오던 비오는 피카디리 극장앞(실제 [접속]은 피카디리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그리고 벨벳언더그라운드 LP판을 사기위해 수현이 들린 동현의 친구 레코드 가게, 마지막으로 지하철에서 이다.
이러한 우연적 만남은 두주인공의 필연을 설명함과 동시에 우리가 스치고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주제는 만남이다. 사랑의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마나는 것을 꺼리는 동현도, 소심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친구의 애인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하는 수현도, PC통신앞에서는 자유로워지고 용감해지며 솔직해 진다.
그리고 이 영화의 라스트는 두사람의 새로운 사랑이 아닌 단순한 만남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박한 주제는 외형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영화들은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표현했다. 다른 영화들이 당연시했던 사랑이라는 주제를 [접속]은 영화가 끝난후 관객에게 맡기고 있다.
동현은 수현을 만났을뿐, 수현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것도, 호주 이민을 포기한 것도 아니기에 이 영화의 해피엔딩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또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현실적인 캐릭터 구축이다.
한국 영화계의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인 한석규는(데뷔작 [닥터봉]에서부터 [접속]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마저 흥행중이다.) [넘버3]의 껄렁한 껄렁한 깡패에서 [은행나무 침대]의 주인공으로 돌아갔으며 그에겐 그 어떤 역이든 어울린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TV의 세계에서 이제 막 영화의 세계로 뛰어든 전도연 역시 영화 배우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보다 더 큰 역할을 해낸이는 조연인 추상미와 김태우이다. 동현의 선배 PD 태호와 은희 사이에서 원치않는 3각관계에 빠진 동현. 이는 곧 동현의 과거에 대한 현재의 또다른 연결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추상미는 거의 완벽하게 은희라는 캐릭터가 되어 동현을 과거의 상처속에 빠뜨린다.
기태역의 김태우 역시 마찬가지. 기태라는 캐릭터는 수현의 내성적인 성격을 영화속에서 표현해내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주변 인물들은 자칫 감상주의에 빠지기 쉬운 동현과 수현의 관계를 신선하게 떠받들어주고 있다.
감각적인 연출과 효과적인 소품들 그리고 새로운 주제의식과 주연배우들의 매력. 이 모든것이 [접속]을 새로운 한국 영화의 유행으로 만든 주범(?)들이다.
P.S. 동현이 영혜가 보내준 벨벳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를 방송에 처음 틀던 날 영혜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녀는 시속 120이 넘는 속도로 차를 몰다 결국 전복된다. 그리고 영혜의 차를 겨우 피한 수현은 급정거를 하고 놀란듯이 사고현장을 바라본다. 놀랍게도 이 장면은 한국영화로선 드물게 사실적 스펙타클로 표현되었으며 삶을 포기하는 여인과 전복되는 차 그리고 폭발속에서 은근히 들려오는 올드팝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장윤현 감독의 선곡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1998년 2월 13일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이제 감기몸살이 조금 나아졌네요.
사실 영화노트를 업뎃하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하필 이번 영화노트중에서도 가장 분량이 많은 [접속]이라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업뎃이 늦어졌답니다.
글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에 대해서 할말이 많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제 [접속]도 끝냈으니 다시한번 영화노트를 열심히 업뎃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읽지만 말아주시고 가끔 덧글을 남겨주시길...
그래야 의욕이 쏫아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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