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지영
주연 : 최민수, 강수연
[남부군], [하얀전쟁] 등으로 주목을 받아온 중견 감독 정지영이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이후 3년만에 신작을 냈다. 사실 공백기간동안 그가 준비했던 일련의 영화들([울밑에선 봉선화], [빅토르 최])이 좌절된 상태에서 완성된 작품이기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나 의외의 에로틱 스릴러 [블랙잭]은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코미디 영화에서 멜로 영화로 한국 영화의 경향이 바뀌어갈때쯤이라 관객들은 외외의 에로틱 스릴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블랙잭]은 분명 시기를 잘못 선택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스릴러 장르의 부재라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현실로 보아선 분명 반가운 작품이기도 하다. 정지영 감독은 최민수와 강수연이라는 스타 스시템을 이용하여 전형적인 '팜므파탈' 영화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는 안으로는 [투캅스]를 밖으로는 [로미오 이즈 블리딩]을 참고한듯한 스토리 전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패한 경찰에 대해 코미디로 일관했던 [투캅스]에 비해서는 좀 더 현실적이며, 요부에 의해 철저하게 추락당하는 한 형사의 이야기인 [로미오 이즈 블리딩]보다는 좀 더 한국적으로 각색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베테랑급 스타 연기자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헐리우드의 장르 영화속에 빠지고 만것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어느새 헐리우드에 물들어버린 우리 영화계를 슬프게 풍자했던 그가 그 스스로 '헐리우드 키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첫번째 이유가 바로 [로미오 이즈 블리딩]과 스토리 구조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게리 올드만이 맡았던 부패한 경찰은 최민수가, 레나 올린이 맡았던 요부역엔 강수연이 맡아 시소 게임을 벌이는 이 영화는 강수연이 레나 올린보다는 좀 인간적인 '팜므파탈'이라는 것 이외에 별 차이점을 찾아내지 못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재미있고 짜임새가 탄탄하다. 어차피 에로틱 스릴러란 장르가 헐리우드가 발전시킨 장르라면 그것을 표절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적 에로틱 스릴러 장르의 완성에는 실망이지만 조금더 기다려 보기로 하자.
P.S. 최민수와 강수연의 극중 정사씬중 카메라맨 아저씨의 실수로 강수연의 가슴에 붙여진 파스가 화면에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월드 스타라고는 하지만 보여줄것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1998년 1월 12일
*** 2006년 오늘의 이야기 ***
P.S.가 웃기네요.
보여줄건 보여주자는 이 주장은 아마도 한창 혈기왕성했던 그 시절의 귀여운 투정이 아닐런지...
제가 영화노트를 좋아하는 까닭은 몇년전의 나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또 한가지 까맣게 잊고있었던 영화들을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도 영화노트의 매력입니다.
[블랙잭]은 제 기억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가 이 글을 쓰기위해 다시 제 기억의 수면위로 떠올라왔네요.
아마 10년전 그때 한국적 에로틱 스릴러를 기다리다 결국 포기해버리며 [블랙잭] 역시 기억속에서 잊혀진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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