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7년 영화노트

데블스 에드버킷(The Devil's Advocate) ★★★★

쭈니-1 2009. 12. 9. 14:15

 

 



감독 : 테일러 핵포드
주연 : 키아누 리브스, 알 파치노, 샤를리즈 테른

제자를 성희롱한 혐의로 한 남자 교사가 기소된다. 누구나 피의자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는 패색이 짙은 재판. 그러나 새파랗게 젊은 신출내기 변호사 케빈 로막스(키아누 리브스)가 모든 상황을 뒤집고 재판을 승리로 이끈다.
[데블스 에드버킷]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말로 직역한다면 '악마의 변호사'쯤 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보더라도 이 영화의 내용이 대강 짐작된다.
오프닝씬에서 케빈은 자기 의뢰인의 유죄를 알면서도 특유의 재치로 피해자를 몰아붙여 승리로 이끈다. 그 결과 '64회 연속 승소'라는 대기록을 세우지만 그에 따른 죄책감은 어떠할까? 그러나 이 영화에선 케빈의 죄책감따위는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승리에 대한 환호와 뉴욕 진출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기다릴 뿐이다.
케빈이 뉴욕에 진출하며 영화는 톰 크루즈 주연의 [야망의 함정] 분위기로 치닫는다. 최고급 아파트와 엄청난 수입 그러나 그 뒤에 숨어있는 음모들. 케빈이 스카웃된 '존 밀튼 투자회사'는 단순한 법률 회사가 아닌 엄청난 범죄 집단이었던 것이다. 케빈은 존 밀튼(알 파치노)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점차 음모에 빠져들고 케빈의 아름다운 아내인 매리앤(샤를리즈 테른)은 점차 파멸의 길에 접어든다.
영화의 중반까지의 줄거리는 마치 [야망의 함정]과 비슷하지만 [데블스 에드버킷]의 분위기는 좀 더 강렬하게 관객을 휘어잡는다. 특히 알 파치노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이와 대비되는 샤를리즈 테른의 순수한 연기는 관객을 사로잡는다. 결국 매리앤이 정신병원에서 자살하고 케빈은 존 밀튼이 자신의 생부임을 알았을때 영화의 분위기는 극에 치닫는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서며 영화는 갈길을 잃고 만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데블스 에드버킷]이 단순히 한 젊은 변호사의 타락이라는 평범한 주제에서 머물길 거부했다. 그는 이 영화가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 내부의 악마성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주제에 접근하길 원했다. 그래서 존 밀튼은 진짜 악마가 되어 케빈에게 이 세상의 지배를 권유한다. 영화내내 펼쳐졌던 강렬한 편집과 분위기는 아예 후분부에는 악마주의적 영상으로 편입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영화의 분위기를 망치고 말았다.
존 밀튼이 실제 악마라는 설정 자체가 현실성을 잃은 우스운 해프닝이다. 특히 알 파치노가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선 관객 대부분이 어리둥절해진다. 결국 케빈의 자살로 막을 내리는 후반부는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악영향만 끼쳤다. 게다가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마지막 반전을 위해 이 모든 것이 케빈의 생각이며 환상일 뿐이라고 말하고 영화를 다시 오프닝씬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케빈은 자신의 의뢰인의 변호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지킨다.
전반과 후반의 흥미진진하며 강렬한 영화의 분위기와 후반부의 어리둥절한 악마주의적 분위기는 라스트의 썰렁한 결말과 잘 부합되지 않은채 표류한다. 결국 이 영화는 영화 각각의 부분이 따로 노는 듯한 착각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차라리 테일러 핵포드 감독이 욕심을 버리고 이 영화를 전반과 중반의 분위기로만 이끌어갔더라도 훨씬 인상적인 작품이 될 뻔했다.

1997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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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제가 샤를리즈 테른을 좋아하게된 계기를 마련해준 영화였더랬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명연기와는 별도로 영화의 후반부가 너무 생뚱맞아 상당히 당혹스러웠던 영화였습니다.
극장에서 봤는데 알 파치노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극장 여기저기에서 어리둥절한 웃음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나네요.
 200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