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완정
주연 : 장만옥, 오군매, 양자경, 조문선
[가을날의 동화]로 유명한 여류 감독 장완정이 [송가황조]를 만들기위해 5년이나 투자한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중국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송씨 가문의 세자매 애령(양자경), 경령(장만옥), 미령(오군매)의 이야기는 실화이면서도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잘 연출만 한다면 스펙타클하면서 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대작 역사극이 될테니 말이다. 솔직히 장완정 감독은 그런대로 잘 해냈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한 영상과 홍콩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큰 스케일로 일단 관객을 사로 잡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장완정 감독이 객관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 세자매의 이야기는 3개의 나라로 분할된 (지금은 홍콩 반환으로 2개의 나라로 분할되었지만...) 중국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副)를 사랑한 첫째 애령은 중국 최고의 재력가와 결혼하여 중국의 경제권을 장악한다. 그녀는 3중국중 홍콩을 비유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 후반 애령은 중국을 뒤로하고 홍콩으로 떠난다.
이상을 사랑했던 둘째 경령은 중국 최초의 총통 손문(조문선)과 결혼한다. 아버지의 혁명 동료이며 신중국을 창조하기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던 손문과 아버지의 반대에도 결혼하여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이상을 실현하기위해 일생을 바쳤던 그녀는 설명이 필요없이 중국을 비유한 캐릭터이다.
권력을 사랑했던 셋째 미령은 군사 통치가인 장개석과 결혼하여 권력을 잡는다. 그러나 공산당을 무차별 살육하는 장개석과 경령의 불화로 미령과 경령의 사이는 나빠진다. 결국 장개석은 공산당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피신한다. 바로 미령은 대만을 비유한 캐릭터이다.
같은 민족이면서 사상의 차이로 갈라져야 했던 3중국 이야기. 이것이 [송가황조]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철저하게 객관성을 유지했어야 했다. 특히 경령과 미령의 불화는 곧 중국 본토와 대만의 이야기이기에 더욱더 객관성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장완정 감독은 97년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객관성을 잃고 영화의 초점을 경령에게 맡기어 버렸다. 캐스팅을 살펴 보더라도 그렇다. 애령역의 양자경은 액션 히어로이지 드라마 특히 역사 드라마에 어울릴만한 배우가 아니다. 결국 양자경은 별 무리없이 연기를 해냈지만 애령이라는 캐릭터를 별 특징없는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미령역의 오군매는 [마지막 황제], [조이럭 클럽]에 출연했지만 관객에게 낯설은 배우이며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에비해 경령역의 장만옥은 홍콩 최고의 여배우이다. [아비정전], [첨밀밀]등 드라마성이 강한 영화에 주로 출연했으며 47회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대될 정도로 세계적인 배우이기도 하다. 결국 자연스럽게 관객의 촛점은 장만옥에게 옮겨질테고 실제로 세자매중 가장 두드러진 캐릭터는 경령이다.
영화는 손문과 장개석을 그리는데 있어서도 경령을 부각시킨다. 손문은 중국을 정말로 사랑했던 이상가로 장개석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동족을 무차별 살육하는 잔인한 군인으로 그리고 있다. 결국 손문은 죽어서 신격화되고 경령은 남편의 이상을 위해 장개석과 맞서 나간다.
물론 이 영화는 실화이다. 그렇기때문에 캐릭터의 이미지는 어느정도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감독의 역량에 따라 역사속 인물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비열한 권력가가 되기도 하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해본다면 장완정 감독은 좀더 신중해야 했다. 결국 이 영화는 중국 근대사를 이끌어나간 세자매의 이야기라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중국을 사랑한 지혜로운 여자 송경령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1997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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