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철수
주연 : 황신혜, 방은진
1995년 우리는 한편의 충격적인 한국영화를 만났었다. 그것이 바로 [301. 302]였다. 80년대까지만해도 여성적인 멜로 영화 감독이었던 박철수 감독의 과감한 변신작이었으며, 예쁘기만 했던 여배우 황신혜가 처음으로 연기력으로 승부했던 영화이며, 방은진이라는 이상야릇한 여배우를 처음 발견하게된 영화이기도 하다. 그후로 2년, 이 세명이 다시 만났다. 이번엔 [산부인과]에서...
음식과 섹스에 대한 컬트 영화 [301. 302], 죽음에 대한 보고서 [학생부군신위]에 이어 이제 박철수 감독은 생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미묘한 장소 [산부인과]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 가장 획기적이고 이상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에 그가 추구한 영화 스타일은 가십시네마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각각의 에피소드만으로 영화를 구성하는 놀라운 실험 정신을 보인 것이다.
[산부인과]는 말그대로 산부인과 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이다. 우리 남성들이 아는 산부인과 병원은 순수하게 아기를 낳는 곳. 조금 깊숙히 들어가면 아기를 죽일 수도 있는 곳이다. 이렇듯 삶과 죽음이 미묘하게 맞닿아 있는 곳이 산부인과 병원이다.
그러나 박철수 감독은 좀더 깊숙히 파고들어간다. '처녀막 재생 수술'이나 '이쁜이 수술', '여자 포경 수술'등 남성들에게 낯설은 수술에 대한 에피소드와 마스터베이션을 위해 골프공을 넣었다가 꺼내지못해 병원을 찾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그뿐아니다. 박철수 감독은 출생 장면과 중절 수술 장면을 거르지않고 그대로 화면속에 보여주어 그야말로 충격을 자아내게 했다.
박철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존재의 소중함을 강조했고 실제로 관객들은 신성하게만 여겨지던 산부인과 병원에서의 조금은 과장되었지만 결국 허구가 아닌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통해 박철수 감독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가장 드라마틱한 공간이면서도 지금까지 그 누구도 영화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산부인과 병원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스토리를 없애고 에피소드만으로 영화를 구성하는 실험정신 그리고 실제 분만 장면을 그대로 찍어낸 용기등 공허한 코미디 영화가 판치는 한국 영화의 현실속에서 충격적이고 참신한 영화였다.
그러나 약간의 어색함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특히 특정한 스토리없이 에피소드를 따라 영화를 감상하려니 약간의 지루함과 과장된 에피소드속에 느껴지는 유치함을 버릴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시작에 대해 느끼는 어색함이리라. 천편일률적인 공허한 코미디에서 잠시 벗어난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봐두어야할 이유가 있다.
1997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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