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잡담

쭈니의 첫번째 단편소설... 간병인

쭈니-1 2018. 7. 18. 16:41

제목 : 간병인



발병 60일째



나는 아프다. 나는 하루 종일 누워서만 지낸다. 나는 혼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필요하다. 나는 그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도 그는 나를 찾았다. 언제나처럼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어린 아기를 다루듯이.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성인이지만 그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눈에는 어린 아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슬프다. 당당히 일어서서 그와 함께 산책을 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들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해준다.
“괜찮아. 이제 곧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조금만 더 참으면 돼.”
그는 항상 이런 식이다. 모두가 나를 더 이상 희망 없는 눈으로 쳐다보지만, 그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결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결코 그와 함께 산책을 하고,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들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에게 이러한 내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슬픈 표정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해. 내일 또 올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의사를 향해 다가간다. 간절한 표정으로 의사에게 나를 부탁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발병 83일째


이제 나의 하루는 그를 기다리는 것으로 가득 채워졌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에게 주사를 놔주지만 나는 그것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 주사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이 주사를 맞으면 예전처럼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 믿고 있다. 나는 그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다.
오늘 그는 어제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나를 찾아왔다. 그의 눈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미안해. 내가 늦었지?”
나는 그에게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아픈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만 새어나올 뿐이다. 도대체 나는 왜 간단한 한마디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아픈 것일까? 도대체 나는 왜 나를 위해 저렇게 애쓰는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는 오늘도 어제처럼 내 머리를 어린 아기 다루듯이 쓰다듬었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그 순간 내 속의 고통이 사라진다. 마치 푹신한 솜 이불에 누운 것처럼 포근해진다. 그의 손길을 더 느끼고 싶다.



발병 97일째


오늘은 그가 아침 일찍부터 나에게 왔다. 어쩌면 어제 한 시간 가량 늦게 온 것이 미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늦게 와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원망스럽다. 그는 나를 이렇게 정성껏 간병을 해주는데, 나는 그에게 한마디 말조차 할 수 없다니...
그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오늘은 아픔마저 까맣게 잊을 수 있다. 아!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내 작은 행복을 위해 그를 이렇게 속박하다니...
“이게 마지막 방법이야. 나는 믿어. 이 방법이 너의 병을 없애줄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말한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슬퍼보인다.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는 밝은 표정이었는데... 그도 이제 더 이상 내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제 아픈 나를 간병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눈물이 난다. 한마디 말도 못하는 주제에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내 머리는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심장은 쓰라리게 아프다. 어쩌지. 이 눈물을 그가 본다면 마음 아파 할 텐데... 그에게 내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 그가 보기 전에 눈물을 닦아내고 싶은데, 그럴 수조차 없다. 눈물은 이렇게 잘도 나오면서, 왜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 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원망스럽다.



발병 98일째


그가 화났다. 언제나 자상한 미소를 짓던 그가 오늘은 의사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그는 저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상했고, 그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내가... 이 못난 내가 착한 그를 변하게 한 것이다. 무엇이 그를 화나게 했을까? 아마도 나 때문일 것이다. 화내지 말라고, 나는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내 안에서 맴돌다 사라질 뿐이다.
그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말하고 싶다. 차라리 내게 화를 내라고... 당신을 변하게 한 나를 원망하라고...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밝게 웃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달라고...
하지만 그는 내게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미안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내가 아픈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닌데... 내게 미안해할 필요 없는데... 오히려 미안한 것은 나인데...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는데... 미안해...”
그가 운다.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던 그가 눈물을 쏟아낸다. 내 머리를 쓰다듬은 그의 손길이 가느다랗게 떨린다.
“괜찮아요. 이제 그만 나를 놔주세요.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줬던 그 모든 것들이 있기에 나는 행복했어요. 이제 당신도 나를 잊고 당신의 행복을 찾으세요.”
나는 있는 힘을 내 쏟아내 그에게 말하려 했다. 제발... 제발... 이 말을 그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발... 제발... 그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나 때문에 그가 아파하지 않도록 이 말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할 수 없다. 나는 아프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를 위한 마지막 한마디조차...



발병 99일째


그가 병실 밖에 서있다.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둡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이 감긴다. 하지만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더 간절히 조금이라도 더 그를 보고 싶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는 내 마지막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긴 시간동안 내 곁을 지켜주던 그가, 아픈 나를 간병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던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말 그를 보내줘야 한다. 그도 언제까지 내 간병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다. 잘된 일이다.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이제는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그의 얼굴이, 그의 미소가, 그의 손길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비록 눈을 뜰 수 없지만, 비록 그가 내 곁에 없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이것으로 된 거다. 나는 행복하다.
“미안해요, 당신. 당신의 희망을 지켜내지 못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말들이 그의 얼굴과, 그의 미소와, 그의 손길 사이에서 떠돈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모든 것이 지워진다. 내가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말들이, 그의 손길이, 그의 미소가, 그의 얼굴이,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남은 것은 까만 어둠뿐이다. 이게 죽음이라는 것일까? 뭐 상관없다. 내 인생은 그로 인하여 행복했기 때문에...



실험 100일째


실험체 H가 죽었다. 이번 실험만큼은 성공할 줄 알았는데... 하긴 암을 정복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H는 다른 실험체와는 달리 오래 살아남았다. 다른 실험체는 암세포를 주사하고 50일을 버티지 못했는데, H는 무려 99일을 버텨냈다. 그렇기에 이번 실험만큼은 정말 성공할 줄 알았다. 매일 H를 관찰하며 희망을 품었건만...
밖은 여전히 시끄럽다. 오늘도 동물보호 단체인가 하는 곳이 동물 실험에 반대한다며 피켓을 들고 서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인간을 위한 일인데, 그들은 그깟 개 몇 마리의 희생에 돌을 던진다. 암을 정복할 수만 있다면 그들도 내 실험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더 지체할 수가 없다. 곧바로 실험체 I를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그제, 실험체 H에게 안락사 주사를 주저했던 인턴을 이번 실험에서 배제시켜야겠다. 실험을 하는데 있어서 실험체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 끝 -



지난 화요일, 오후에 소방안전관리자 교육이 예정되어 있어서 츨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계획은 늦잠을 자는 것이었는데, 습관 때문에 아침 8시에 번쩍 눈이 떠지더라는... 결국 저는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멍하니 봤습니다.

그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본 영화 중에서 [마이펫의 이중생활]이라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있었습니다. 귀엽고, 예쁘고, 착한 전형적인 어린이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런데 주인과 가족처럼 지내는 애완 동물들을 보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험에 동원된 동물들도 혹시 연구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소방안전관리자 교육을 받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며 제 생각은 점점 구체화되었습니다. 혹시 실험에 동원된 동물이 연구원을 사랑한다면... 그러면서 '간병인'의 줄거리가 술술 떠올랐습니다.

그날 밤, 집에서 구피한테 '간병인'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구피는 흥미로워하며 글로 한번 써보라고 하네요. 그래서 다음날 회사에서 점심 시간에 짬을 내서 30분간 제 머릿속의 '간병인'을 글로 썼습니다. 물론 제 글은 단편소설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주저리 주저리 떠든 잡담이라고 생각하시는것이 좋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