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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스펙은 안녕하신가요? [내 스펙은 절찬리 상영중]을 본 후...

쭈니-1 2013. 10. 24. 10:25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스펙'이라는 단어를 찾으면 이렇게 나옵니다. 

[명사]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

언제부터였을까요? 직장을 구하는 취업생에게 '스펙'이 절대적인 평가의 잣대가 된 것은...

 

저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외아들이었고,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빨리 직장에 다녀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은행, 증권회사 등에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저는 소위 말하는 '스펙' 관리를 해야했습니다. 주산, 부기 2급 자격증은 기본적으로 따야 했고, 학교 성적 역시 상위 20%는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학교에서 은행, 증권회사에 취업 추천을 해줬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스펙' 관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증권회사에 면접만 보면 불합격의 쓴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제 삐쩍 마른 체격 때문이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개근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관은 저를 보면 '그렇게 비실비실해서 회사에 다닐 수나 있겠어요?'라며 고개를 흔들기 일쑤였습니다. (그 당시 제 몸무게는 50kg 내외였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단 몇 분동안 고작 내 외모, 체격만 보고 나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그들이 너무나도 야속했습니다. 그 이후, 마른 제 체형이 컴플렉스가 되었고, 살을 찌우기 위해 일부러 잠자기 전에 라면, 치킨 등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저는 한 중소기업의 관리팀장입니다. 고등학교 당시에는 삐쩍 마른 체형 때문에 번번히 취업에 실패했고, 대학을 나온 다음에는 IMF라는 괴물을 만나 2년 동안 백수 생활을 한 끝에 지금의 회사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부하 직원을 뽑기 위해 가끔 면접관이 되곤합니다.

막상 직접 면접을 통해 사람을 뽑는 입장이 되고보니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 몇 분동안 그 사람이 회사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일을 열심히 할 사람인지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저도 모르게 그들의 학교 성적표, 자격증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그 사람의 능력, 성실함을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스펙'을 보는 면접관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내 스펙은 절찬리 상영중]이라는 5분짜리 단편 영화를 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기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또 유능했던 한 아이가 성장을 해서 이제 취업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지만 '스펙'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취업에는 실패합니다. 

하지만 '스펙' 때문에 그를 외면했던 면접관이 그가 만들어낸 창조적인 기기들을 본 후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주인공은 토익 만점자라는 좋은 '스펙'을 가진 이에게 면접에서는 밀렸지만, 정작 회사에서는 토익 만점자보다 좋은 능력을 발휘합니다. '스펙 쌓기'에 매달리는 요즘의 청춘들에게 '스펙'이 전부가 아님을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인 셈이죠.

저는 [내 스펙은 절찬리 상영중]을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조연에 불과한 면접관의 시점으로 봤습니다. 만약 내가 면접관이라면 토익 만점이라는 좋은 '스펙'을 가진 면접생과 형편없는 '스펙'을 가진 주인공 중에서 누굴 선택했을까요? 단 몇 분만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하는 면접관의 입장에서는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지고 있는 '스펙'이 좋은 면접생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내 스펙은 절찬리 상영중]을 보고나니 그런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20년전 제 체형만 보고 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면접관을 원망했던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데... 지금의 저는 20년전 제가 원망했던 면접관처럼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죠.

사실 취업 지망생의 능력, 그 사람의 열정을 알려면 그깟 '스펙'이 아닌, 취업 지망생과의 진솔된 대화가 중요합니다. 어쩌면 저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면접이라는 것이 진솔된 대화를 하기엔 너무 딱딱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수 많은 취업 지망생들을 면접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귀찮은 마음에 초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내 스펙은 절찬리 상영중]을 보며 그런 제 자신을 많이 반성했습니다.

 

 

[내 스펙은 절찬리 상영중]은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등과 같은 스펙을 쌓기 위해 지쳐있는 청년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와 청년영화감독이 뜻을 모아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영화를 제작을 총괄한 지언태 감독은 "스펙으로 고생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이 영상이 응원가처럼 느껴졌으면 한다."면서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을 좀 더 믿기를, 그리고 진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내 스펙은 절찬리 상영중]을 진정으로 봐야할 사람들은 저와 같은 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아닐까요? 젊은 그들을 '스펙'의 늪에 빠뜨린 것은 우리 기성 세대이니까요.   

[내 스펙은 절찬히 상영중] 제작에 참여한 '잽필름(jab film)'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03학번 동기들이 모여 창업한 영화 및 영상 제작팀으로 독립영화 및  캠페인 영상 제작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기업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그들의 활동을 눈여겨 봐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잽필름'의 젊은 감독들이 맹활약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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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