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더빙 : 더글라스 부스, 시얼샤 로넌, 제롬 플린
개봉 : 2017년 11월 9일
관람 : 2017년 11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가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게된 이유
지난 11월 12일 일요일, 여수에서 갈치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저는 [러빙 빈센트]의 영화상영 시간표를 열심히 검색했습니다. 시간대만 잘 맞으면 웅이와 함께 [러빙 빈센트]를 보러 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저녁식사를 한 후 다음날 아침까지 깊고 깊은 잠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 무박2일 갈치낚시의 피로감을 몸이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연차휴가를 내서 무려 세편의 영화를 혼자서 몰아 봤습니다. 하지만 그날에도 [러빙 빈센트]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영화는 몰라도 [러빙 빈센트]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웅이와 함께 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적부터 웅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흐의 그림 중에서 '별이 빛나는 밤'과 '자화상'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하는 웅이를 보면 참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구피는 국내에 고흐전이 하면 어린 웅이의 손을 잡고 꼭 보러 갔었습니다. 솔직히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저는 고흐의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고흐전에서 고흐의 고난했던 삶을 읽고 그의 자화상을 보니 나도 모르게 짠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가 그린 그림들이 달라보였습니다.
제가 [러빙 빈센트]를 꼭 웅이와 봐야 했던 이유도 웅이가 저보다 고흐를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개봉한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은 웅이가 너무 어려서 함께 볼 수 없었지만 [러빙 빈센트]만큼은 꼭 웅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재고조사를 일찍 끝내고 가장 먼저 [러빙 빈센트]의 영화상영 시간표를 검색했고, 일요일 아침 온 가족이 함께 [러빙 빈센트]를 보기 위해 늦잠도 포기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웅이가 가장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은 '별이 빛나는 밤'이다.
몇 년 전 '별이 빛나는 밤'의 1000피스 직소퍼즐을 구매했지만
아직까지 테두리만 겨우 맞췄고, 지금은 포기상태이다.
고흐는 어떻게 죽었는가?
[러빙 빈센트]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 후 1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빈센트와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우체부 조셉 롤랭은 빈센트가 죽기 전 동생 테오에게 남긴 편지를 전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입니다. 그는 아들 아르망(더글라스 부스)에게 부탁하지만, 아르망은 자살한 괴짜 화가의 편지가 왜 그리 중요한지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선 아르망. 그는 테오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미술 재료상인 탕기를 찾아가지만 그는 편지의 수신인인 테오가 빈센트가 자살한지 6개월만에 죽었음을 알려줍니다. 테오의 미망인에게 편지를 전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아르망은 그녀의 주소를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빈센트의 주치의 폴 가셰(제롬 플린)을 찾아 빈센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오베르로 향합니다.
영화는 아르망이 빈센트의 죽음의 비밀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실제 빈센트의 죽음에는 많은 의혹이 있습니다. 그는 1890년 7월 27일 근처 들판을 서성이다가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쏘았고, 이틀 후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총에 맞은 상태에서 숙소까지 걸어온 빈센트는 경찰에게 자신이 스스로 총을 쐈다고 증언했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고합니다. 하지만 마제리 박사는 의문을 제시합니다. 대부분의 권총 자살자들은 머리에 총을 쏩니다. 불편한 자세로 가슴에 총을 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건 당시 지녔던 빈센트의 그림 도구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동네의 불량한 청년 르네가 고흐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사실까지 밝혀집니다.(실제 르네는 자신이 철없는 청년 시절 빈센트를 괴롭혔음을 실토했다고합니다.)
그러한 의문은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에서도 나옵니다. 팜 반 호브 감독은 아예 빈센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동네 불량한 청년들이 장난삼아 쏜 총에 맞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르망은 빈센트가 묶었던 여관의 딸 아들린과 의사 가셰, 그리고 가셰의 딸 마르그리트(시얼샤 로넌)의 증언을 통해 나름대로 빈센트의 죽음의 진실을 추적해냅니다.
빈센트 반 고흐를 향한 아버지의 존경심 때문에
아르망 롤랭은 난데없이 진실을 쫓는 탐정이 되어야한다.
스릴러 영화로도 꽤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일단 [러빙 빈센트]는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107명의 아티스트들이 무려 10년동안 62,450점의 유화 프레임으로 영화를 완성했다는 예술적 완성도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이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러빙 빈센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빈센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쫓는 스릴러의 형식입니다. 저는 [러빙 빈센트]가 결국은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영화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빈센트의 그림을 상속받은 테오의 아들 빌렘의 시선으로 영화를 진행시킨 [반 고흐 : 위대한 유산]도 결국은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고리타분한 전기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오히려 흥미진진한 스릴러 영화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자살한 미치광이 화가 빈센트에 별 관심이 없던 아르망은 빈센트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빈센트의 주변인물들을 만나며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아르망을 사로 잡은 의문은 영화를 보는 제게도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그 결과 처음엔 빈센트를 괴롭혔던 불량 청년 르네가 유력한 용의자가 됩니다.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에서는 바로 이 시점에서 멈춥니다. 그러나 [러빙 빈센트]는 멈추지 않습니다.
빈센트를 싫어하는 가셰의 가정부 루이스 슈발리에도 의심스럽고,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마르그리트도 석연치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의심이 빈센트의 재능을 시기했고, 빈센트가 죽기 전 심하게 다툼까지 벌인 가셰에게 몰립니다. 물론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딱 부러지게 결론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쫓는 아르망을 통해서 [러빙 빈센트]는 스릴러 영화로써의 뛰어난 완성도를 선보입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의사가 된 가셰
그는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그림을 끊임없이 그려내는 고흐의 천재성을 부러워했고, 그를 끊임없이 모방했다.
실제 가셰가 자신이 소유한 고흐의 그림을 박물관에 기증했을 때
전문가들은 고흐의 그림과 가셰의 그림을 구별하기 위해 애먹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예술적 성취
앞서 언급했듯이 [러빙 빈센트]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는 수작업으로 완성된 영화의 예술적 성취입니다. [러빙 빈센트]는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요즘 애니메이션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를 이용한 3D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전적인 셀 애니메이션도 아닙니다. 도로타 코비엘라와 휴 웰치맨 감독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전무후무한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제작기간이 10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한 컷을 완성하기 위해 몇 점의 유화가 필요했을지...
물론 세계 최초로 시도된 유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장면 연결이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은 초당 30프레임(그 이상도 있다고 합니다.)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초당 30프레임이라면 1시간 30분으로 따진다면 162,000프레임의 그림이 들어갑니다. 더 많은 프레임의 그림이 들어가면 갈수록 애니메이션 속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워집니다. 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약 62,450점의 유화 프레임으로 1시간 35분의 러닝터임을 완성했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과 비교해서 절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치입니다. 아무래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우리에겐 [러빙 빈센트]의 움직임이 딱딱 끊기고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부드러운 색감의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거친 색감의 유화는 새롭기는 하지만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구피는 처음엔 신기해하며 [러빙 빈센트]를 보다가 나중엔 눈이 아프고 어지러워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야 했고, 그것이 잠으로 이어졌다고합니다. 물론 영화를 보며 코골고 자다가 들킨 구피의 궁색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움은 익숙하지 않는 관객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저는 새로움에 도전한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감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
분명 놀라울 정도로 새로웠지만
약간의 어색함과 불편함 또한 감출 수는 없었다.
꼭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분명 [러빙 빈센트]를 보며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예술적 성취에 저는 깜짝 놀랄 수 박에 없었습니다.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은 2014년에 국내에 개봉했던 [플라잉 머신]를 통해 쇼팽의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조화를 보여 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조화에 이어 [러빙 빈센트]를 통해 미술과 애니메이션의 조화에 도전한 것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그런 의미에서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의 열정은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러빙 빈센트]가 꼭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듭니다. 만약 이 영화가 배우를 기용한 단순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제작 기간과 제작비는 훨씬 단축 되었을 것이며,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불편함을 느낀 관객에게도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러한 의문은 [러빙 빈센트]가 처음이 아닙니다. 2011년 개봉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을 봤을 때도 저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도 안재훈, 한혜진 감독이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위해 10만장의 작화와 제작기간만 무려 11년이 소요되었다고합니다. 만약 [소중한 날의 꿈]이 실사 영화로 제작되었다면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영화는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상업적 효율의 문제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한 스릴러적 접근법이라는 상업영화적 틀로 생각한다면 굳이 제작비와 제작기간이 많이 소요되는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예술적 성취가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감독에겐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안재훈, 한혜진 감독이 [소중한 날의 꿈]을 연출함에 있어서 상업적 효율보다는 우리나라 셀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예술적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듯이 말입니다. [소중한 날의 꿈]을 볼 땐 몰랐는데, [러빙 빈센트]를 보니 상업적 효율보다 가끔은 예술적 성취가 더 중요할 수 있음을 느끼게됩니다.
나는 평범한 관객이기에 당연히 예술영화보다는 상업영화가 더 좋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상업적 효율을 강조한 영화보다
이렇게 예술적 성취를 드러낸 영화가 더 좋다.
미술에 대해서 문외한이면서도 고흐의 그림을 보며 짠한 감정을 느꼈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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