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해피 데스데이] - 너무나도 완벽했던 결말 뒤에 드러난 진짜 반전의 쾌감

쭈니-1 2017. 11. 18. 17:27

 

 

감독 : 크리스토퍼 랜던

주연 : 제시카 로테, 이스라엘 브로우사드

개봉 : 2017년 11월 8일

관람 : 2017년 11월 15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도 한때는 할리우드 슬래셔무비를 좋아했었다.

 

지금은 공포영화 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겁쟁이이지만, 한때 저는 슬래셔 무비를 꼬박꼬박 챙겨보던 영화팬이기도 했습니다. 슬래셔(slasher) 무비는 난도질(slash)과 피가 튄다(splatter)의 합성어로 이름 그대로 피가 난무하는 난도질 공포영화입니다. 슬래셔 무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살인마는 얼굴을 가리고 있으며, 피해자는 대부분 젊은 청춘들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할로윈],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들 1세대 슬래셔 무비보다는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로 대변되는 2세대 슬래셔 무비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재미있다고 소문난 공포영화들의 개봉소식을 들으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절대 혼자 보지는 못합니다. 구피와 웅이가 함께 봐준다면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공포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저만큼이나 구피와 웅이도 공포영화를 싫어하기에 공포영화보기는 매번 희망사항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 제가 올해 혼자 본 공포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겟 아웃]입니다. 북미 개봉 당시부터 신선한 공포영화라는 소문이 자자했고, 국내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흥행성공까지 이뤄낸 영화인만큼 제가 아무리 겁이 많아도 [겟 아웃]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겟 아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밖에 없는 공포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해피 데스데이]입니다. 사실 저는 [해피 데스데이]의 북미 개봉당시부터 주목했습니다. 한때 제가 좋아했던 슬래셔 무비이고, 생일날 반복된 죽음이라는 선물을 받은 여대생의 이야기라는 소재로 신선해보였습니다. 게다가 [해피 데스데이]는 [겟 아웃]과 마찬가지로 스타급 배우 한명없이 국내 관객들의 지지를 받으며 좋은 흥행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해피 데스데이]는 제가 다시한번 용기를 낼 충분한 이유가 있는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가면 쓴 살인마와 섹시한 여대생의 대결, 그리고 범인찾기.

그래, 이것이야말로 슬래셔 무비의 재미이다.

 

 

생일날 반복되는 죽음을 선물받다.

 

[해피 데스데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생일날 반복되는 죽음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받은 여대생 트리(제시카 로테)의 기구한 사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날 만취가 되어 어리벙벙한 카터(이스라엘 브로우사드)의 기숙사에서 깨어난 트리. 그날은 트리의 생일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생일이 같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트리에게 자신의 생일은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우울한 날일 뿐입니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던 그날 밤 트리는 가면을 쓴 살인마에게 살해당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눈을 떠보니 또다시 생일날 아침인 것입니다.

트리는 처음에 조금 이상한 꿈을 꿨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꿈 속의 하루가 고스란히 반복되자 슬슬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해된 장소를 피했지만, 뜻하지 않은 다른 장소에서 가면을 쓴 살인마가 나오고 결국 트리는 또 살해됩니다. 그리고 눈을 뜨니 또다시 생일날 아침입니다. 혼란에 빠진 트리는 카터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카터는 몇번이나 죽어도 다시 죽기 전으로 되살아날 수 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해서 살인마를 찾아 제거하면 생일날 다음날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충고합니다. 카터의 충고가 일리있다고 생각한 트리. 하지만 문제는 그녀에게 앙심을 품은 살인마 용의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당할때마다 그녀의 몸은 점차 쇠약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일단 [해피 데스데이]는 슬래셔 무비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가면을 쓴 살인마가 나오고, 피해자는 젊은 여대생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슬래셔 무비라고 하기엔 잔인함의 수위가 꽤 낮습니다. 일단 대체적으로 살인마는 섬뜩한 가면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해피 데스데이]의 살인마는 귀여운 베이비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피튀기는 난도질은 없고, 죽음을 피하려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트리의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져있습니다. 영화의 티저 포스터에서 '이것은 공포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던 광고 카피가 마음에 와닿았을 정도입니다.

 

범인을 찾아 죽음을 면하면 다음날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충고하는 카터.

그래, 슬래셔 무비의 최고 재미는 추리하는 즐거움이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추리하는 즐거움이다. (이후 스포가 있습니다.)

 

만약 공포영화의 팬이라면 [해피 데스데이]를 보며 "이렇게 안 무서운 공포영화는 처음이야."라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처럼 공포영화를 못보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반가울 것입니다. 분명 저 역시 [스크림]과 비슷한 분위기의 슬래셔 무비를 기대하면서 영화를 봤지만 [해피 데스데이]는 슬래셔 무비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정도로 잔인함의 수위가 아주 착(?)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슬래셔 무비를 좋아했던 이유는 추리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4편의 시리즈가 제작된 [스크림]의 경우는 매번 의외의 범인으로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해피 데스데이]는 [스크림]을 연상시킬만큼 추리하는 즐거움이 극대화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죽음을 선물받은 트리에게 범인을 찾으라는 카터의 충고는 매우 적절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합니다. 다행히도 트리에겐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결국 트리는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의 명단을 적고 그들을 하나씩 추적합니다. 이 부분에서 [해피 데스데이]는 꽤 영리한 전략을 세웁니다. 캠퍼스 내에서 자기 잘난 맛에 살며 온갖 재수없는 짓을 도맡아 했던 트리에겐 그녀를 죽이고 싶어하는 용의자가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채인 남학생부터, 같은 기숙사 여학생들, 그리고 불륜 관계에 있는 교수에서부터 교수의 부인까지... 급기야는 트리에게 바람맞은 트리의 아버지까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크리스토퍼 랜던 감독은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수 많은 캐릭터들을 잠깐잠깐 등장시켜 범인을 추리하겠다고 나선 저와 같은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솔직히 어렸을 적부터 추리소설을 즐겼고, 스릴러 영화의 범인 맞추기 성공률 80% 이상이라고 자부하는 저는 범인을 열심히 추리해냈지만, 영화의 첫번째 반전에 좌절해야만 했습니다. 트리의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며 지켜봤는데 갑자기 TV 뉴스화면에 아주 살짝 나왔던 탈옥한 연쇄살인마라니... 트리는 완벽한 하루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후 연쇄살인마와 맞서 싸우는 용감한 여전사가 됩니다.

 

살인마와의 숨바꼭질.

슬래셔 무비에서 절때 빼놓을 수 없는 스릴이다.

 

 

너무나도 완벽했던 결말 뒤에 드러난 진짜 반전의 쾌감

 

만약 영화가 이대로 끝이 났다면 [해피 데스데이]는 그냥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쯤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탈옥한 연쇄살인마가 범인임을 알아낸 트리는 룸메이트인 로리에게 사과하고, 재수없는 다니엘에게 한방 먹이고, 불륜관계엔 그레고리와의 관계를 정리했으며, 그동안 소원했던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화해합니다. 그리고 연쇄 살인마를 당당하게 없앤 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졌던 카터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합니다. 우와! 이보다 완벽한 결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영화는 끝나고 저는 극장 좌석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기만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연쇄 살인마를 죽였지만 트리는 또다시 생일날 아침을 맞이합니다. 

[해피 데스데이]가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제 끝났다며 마음을 놓은 이후 드러난 두번째 반전입니다. 솔직히 저는 두번째 반전 속의 범인을 처음부터 의심했습니다. 다시말해 첫번째 반전이 없이 두번째 반전이 곧바로 공개되었다면 조금은 시시한 반전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랜덤 감독은 탈옥한 연쇄 살인마라는 그럴듯한 첫번째 반전을 먼저 제시했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두번째 반전을 공개함으로써 방심한 제 뒷통수를 강하게 내리칩니다.

순간 저는 강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스크림]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범인 추리 실패에서 오는 쾌감입니다. 그리고 잠시 방심했던 내 자신에게 아쉬움도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난 그녀를 의심했었는데, 탈옥한 연쇄살인마라는 크리스토퍼 랜던 감독이 처놓은 함정에 걸려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다니... 영화가 끝난 후 저는 패배를 인정하며 영화에 대한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안에 범인있다!!!

 

 

몇번의 죽음을 경험한 후 그녀는 한단계 성숙했다.

 

[해피 데스데이]는 11월 15일 연차 휴가를 내고 본 마지막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집에 돌아와 천천히 영화를 곱씹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영화를 보는 동안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재미와 씁쓸함이 동시에 떠오르더군요. 일단 영화를 볼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재미는 트리의 성장담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이후 그녀는 전형적인 재수탱이 금발미녀의 삶을 삽니다. 예쁘고 섹시한 것만 믿고 친구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쾌락을 위해 해서는 안될 짓도 거리낌없이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죽음을 경험하며 자신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잘 못 살아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반복되는 죽음이라는 끔찍한 생일 선물은 트리에게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죽은 어머니의 특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요?

조금은 생소한 배우인 제시카 로테의 매력도 [해피 데스데이]에서 빛났습니다. 영화를 본 후 제시카 로테가 출연한 다른 영화들을 검색해봤는데 [라라랜드]에 조연을 출연한 것을 제외하고는 제가 본 영화가 단 한편도 없더군요. 그나마 [라라랜드]에서 그녀가 어떤 캐릭터로 출연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제시카 로테를 찾기 위해서라도 [라라랜드]를 다시한번 볼 계획입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씁쓸함도 있었습니다. [해피 데스데이]에는 대학내 동양인 학생에 대한 은근한 비하가 있습니다. 카터의 동양인 룸메이트는 트리 때문에 차에서 자야했지만 고맙다는 인사대신 핀잔만 들어야합니다. 트리가 여자 기숙사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동양인 여대생이 왕따인듯 혼자 음악을 듣다가 트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무시당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그녀는 음악을 듣다가 난간에서 떨어진 범인의 시체와 마주하게 되는 봉변을 당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동양인 학생 모두 어색하게 금발로 염색을 했다는 점입니다. (백인을 닮고 싶어하는 동양인?) 그러한 장면들이 의도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동양인 입장에서 씁쓸했던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물론 제가 조금 민감했던 것일지도...

 

반복되는 죽음이라는 끔찍한 선물은 반대로 생각하면

죽음 뒤에 나에게 다시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뜻한다.

트리가 최악의 생일 선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최악의 상황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