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안규
주연 : 김혜수, 이선균, 의희준, 최무성, 김민석
개봉 : 2017년 11월 9일
관람 : 2017년 11월 1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나는 카리스마있는 여자가 좋더라.
지난 수요일 연차 휴가를 내고 영화보기 계획을 세우는 동안 제게 기준점이 된 영화는 [미옥]입니다. 일단 [미옥]의 상영시간을 중심에 세워두고, 그 앞뒤로 시간대가 맞는 영화들을 골랐습니다. [미옥]은 11월 둘째주 개봉작 중에서 제 기대작 1순위였지만 개봉 첫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는 5위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객들은 [미옥]의 만듦새에 아쉬움을 드러낸 상황이라 반등의 여지가 전혀 안보입니다. 다시말해 [미옥]은 일찌감치 흥행실패작 판정을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옥]에 대한 기대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가득 채운 김혜수의 카리스마와 영화 예고편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김혜수의 액션. [미옥]에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속 여성 캐릭터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액션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악당의 인질로 붙잡혀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길 기다렸었습니다. 저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왜 여자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민폐 캐릭터일 수 밖에 없는지 아쉬웠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강한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들이 대세입니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여자 주인공의 액션을 소재로한 할리우드 영화는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 [콜로설], [에이리언 : 커버넌트], [원더우먼], [아토믹 블론드]가 있고,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는 [악녀], [옥자]가 있으며, [박열]의 후미코(최희서)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저는 김혜수와 김고은의 상반된 카리스마가 돋보였던 [차이나타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혜수의 카리스마는 정말 후덜덜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미 흥행 실패작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옥]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없었던 것도 [차이나타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얀 백발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슬픈 눈으로 총을 겨누는 [미옥]의 포스터 속 현정(김혜수)의 모습에 저는 이미 빨려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김혜수의 카리스마는 대체불가이다.
결코 섞일 수 없는 재철그룹의 1인자 김회장과 행동대장 상훈
[미옥]은 한때 범죄 조직이었지만 지금은 재계 유력기업으로 성장한 재철그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재철그룹의 1인자인 김회장(최무성)은 유력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여 몸집을 키워나갑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범죄조직으로써의 재철그룹이 아닌, 합법적 기업으로써 재철그룹을 키워내는 것입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큰 돈이 되는 마약, 총기류 등을 취급하지 않고, 경쟁 범죄조직이 서울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경찰에 협조하기까지합니다.
하지만 재철그룹을 빠른 시간내에 합법적인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범죄가 필연적으로 뒤따라야합니다. 은밀한 곳에서 불법적인 범죄로 재철그룹의 합법화를 돕는 임무는 조직의 3인자이자 행동대장인 임상훈(이선균)의 몫입니다. 그는 유력 기업의 오너가 헐값에 자신의 지분을 재철그룹에 팔수 밖에 없도록 온갖 협박을 자행합니다. 만약 협박이 통하지 않으면 죽여서 맹견의 먹이로 줌으로써 완전 범죄를 실행해 옮깁니다. 비록 상훈은 김회장의 밑에서 일하지만 김회장과 상훈의 관계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상훈은 왜 김회장이 큰 돈이 되는 마약 취급을 마다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훈 입장에서는 조직폭력배이면서 고상한척하는 김회장이 역겹기도합니다. 사정은 김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은 상훈의 범죄가 필요하지만 언젠가 재철그룹의 합법화가 완성되면 상훈은 재철그룹의 장애물이 될 것이 뻔합니다.
김회장과 상훈은 결코 섞일 수가 없는 물과 기름같은 존재입니다. 재철그룹에 대한 그들의 지향점은 명백히 다릅니다. 그렇기에 김회장은 재철그룹의 합법화를 위해 언젠가는 상훈을 제거해야하고, 재철그룹을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았던 상훈은 살기 위해서 김회장을 없애 재철그룹을 장악해야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물과 기름같은 김회장과 상훈의 사이에는 재철그룹의 2인자 현정이 있고, 그녀가 있기에 김회장과 상훈의 대립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재철그룹의 중심에는 현정이 있다.
그녀는 조직의 불법적인 범죄와 합법화의 사이에서 완벽하게 조율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상훈
그렇다면 현정의 그 무엇이 김회장과 상훈의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했던 것일까요? 솔직히 [미옥]의 현정은 [차이나타운]의 엄마(김혜수)와 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정은 때론 언니 같고, 때론 엄마 같은 부드러움으로 조직원들을 감쌉니다. 마약 취급 문제로 김회장에게 폭행을 당한 상훈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현정의 모습은 그녀의 부드러움을 대변합니다. 결국 상훈은 그러한 현정의 부드러움에 매료됩니다. 영화에선 별 설명이 없지만 상훈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고아, 혹은 결손 가정 출신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따뜻한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했고,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현정에게서 엄마의 따뜻함을 느낀 것입니다.
결국 현정을 향한 상훈의 사랑은 정신적 미숙아의 형태로 진행됩니다.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처럼 상훈은 현정에게 사랑받기 위해 죽기 살기로 몸을 내던져 싸웠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겠다고 울고 보채는 아이처럼 상훈은 현정을 사랑을 가로채는 김회장을 용서하지 못하고 폭주해버립니다. 상훈은 현정의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훈이 아무리 노력한다고해도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상훈을 절망에 빠뜨립니다.
결국 상훈은 김회장과 현정을 배신합니다. 상훈의 배신은 살기 위해서도, 재철그룹을 차지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로지 현정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결코 현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훈의 사랑은 [미옥]의 가장 극적인 부분이기도 하지만 상훈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겐 영화의 가장 허술한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상훈의 사랑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런 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삶과 사랑의 방식은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
꿈, 나한테 너 말고 무슨 꿈이 필요해?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었던 김회장
현정을 향한 상훈의 사랑이 정신적 미숙아의 형태로 표현되었다면 현정을 향한 김회장의 사랑은 상훈과 정반대입니다. 김회장은 이미 수년전 라이벌 조직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잃은 경험이 있기에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압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존재가 되려 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것을 지켜줘야한다는 것을 그는 한번의 뼈저린 실패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김회장이 재철그룹의 합법화에 집착하는 것은 아들 주환(김민석)을 위한 것입니다. 범죄조직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상 이권다툼에 의한 상대 조직의 칼부림은 일상적인 위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그로인하여 모든 것을 잃었던 김회장은 재철그룹의 합법화를 통해 주환에게 만큼은 그런 위험한 일상을 물러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김회장의 뜻은 아닙니다. 재철그룹의 합법화를 주도한 것은 현정입니다. 현정은 주환의 숨겨진 엄마입니다. 주환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주환의 엄마임을 숨길 정도로 현정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은 주환입니다. 그리고 김회장은 현정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환을 지켜줌으로써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완성해나갑니다.
상훈의 사랑이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주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현정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주환이 있기에, 현정의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상훈의 꿈은 이뤄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김회장은 상훈에게 충고합니다. 현정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현정의 소중한 존재가 되려하지 말고 그녀의 소중한 존재를 지켜주라고. 하지만 상훈은 마지막 순간까지 현정의 소중한 존재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고, 강제로라도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됩니다.
그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소중한 사람이 되려하지 말고
그녀의 소중한 사람을 지켜줘.
김회장과 상훈의 균열을 이용하는 최검사
재철그룹의 합법화 작업이 착착 진행되는 가운데 재철그룹의 비리를 캐기 시작한 최대식(이희준) 검사가 최대 걸림돌로 지적됩니다. 현정은 대식을 옭아매기 위해 덫을 놓고, 대식은 현정의 덫에 걸리고맙니다. 하지만 대식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재철그룹이 자신의 약점을 움켜쥐고 있는 이상 언제든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알기에 어떻게든 재철그룹을 무너뜨려 위기에서 벗어나려합니다. 그는 현정을 향한 상훈의 사랑을 이용해서 김회장과 상훈의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식의 계획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대식이 한가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현정을 향한 상훈의 사랑은 그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미옥]은 김회장, 임상훈, 최대식과 같은 남자 캐릭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실제 나현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주환이 대식과 상훈의 인질로 붙잡힌 이후입니다. 그렇기에 현정은 굉장히 수동적인 캐릭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결국 현정이고, 나머지 남성 캐릭터들은 현정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캐릭터일 뿐입니다. 현정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영화의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김회장, 상훈, 대식, 주환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도록 이끄는 주된 원인이 됩니다.
분명 [미옥]은 조금은 낡은 감성의 느와르입니다. 영화의 모든 전개가 현정을 향한 상훈과 김회장의 사랑 때문에 비롯되고, 현정 또한 모성애로 똘똘 뭉쳐진 캐릭터이다보니 조금은 구태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미옥]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현정의 강함 때문입니다. 그녀는 대놓고 카리스마를 마구 뿌려대지는 않지만, 드러나지 않는 카리스마로 영화 전체를 아우릅니다.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내 삶을 지탱해주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미옥]에게 있어서 현정의 존재는 절대적이며, 모든 것이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카리스마가 아닐까요?
어느 여류 영화평론가는[미옥]에 대해서
'여성중심의 느와르라고?'라며 의문을 제시했다.
분명 영화는 남성중심의 캐릭터로 진행된다.
하지만 나는 결코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현정 중심의 거대한 비극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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