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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 뤽 베송 감독의 일생일대 프로젝트치고는 약간 아쉽다.

쭈니-1 2017. 9. 5. 14:06

 

 

감독 : 뤽 베송

주연 : 데인 드한, 카라 델레바인, 리한나, 클라이브 오웬

개봉 : 2017년 8월 30일

관람 : 2017년 9월 3일

등급 : 12세 관람가

 

 

어쩌면 당분간 웅이와의 행복한 극장 데이트가 중단될지도 모른다.

 

지난 9월 2일 웅이와 주꾸미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새벽 5시에 충남 태안군에 있는 영목항에 도착, 6시부터 주꾸미 낚시를 시작해서 오후 3시에 끝나는 꽤 고된 일정이었습니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집에 도착하니 밤 8시. 하지만 고된만큼 웅이와의 추억이 또 나 만들어졌습니다. 웅이는 자신이 힘들게 잡은 주꾸미를 구피가 맛나게 먹는 것을 보고는 "힘들었지만 보람이 느껴진다."며 미소를 짓더군요. 그리고는 너무 힘들어서 주꾸미 낚시를 매번 쫓아가진 못하고 1년에 한번 정도는 저와 함께 주꾸미 낚시를 하겠다는 선언했답니다.

주꾸미 샤브샤브로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인 9월 3일에 구피, 웅이와 함께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 역시 너무 힘들어서 9월 3일 만큼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푹 쉬고 싶었지만, 뤽 베송 감독의 SF 영화만큼은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극장가에선 웅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라서 웅이와의 행복한 극장 데이트는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끝으로 당분간 중단될 듯합니다. 그렇기에 제겐 더욱더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의 관람이 기대되었습니다.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보기 위해 집 근처 멀티플렉스로 향하는 길. 저는 구피와 웅이에게 이 영화는 [제5원소]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일 것이라 설명해줬습니다. 1997년에 국내에 개봉한 [제5원소]는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였던 브루스 윌리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우리에겐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여전사로 익숙한 밀라 요보비치가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음하게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가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제5원소]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일 것이라 단정지은 이유는 두 영화의 감독이 뤽 베송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세계관에서부터 [제5원소]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는 우주 정거장에서 각각 다른 나라의 우주인들의 조우를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인간들끼리의 우주 정거장에서의 조우는 시간이 흘러 인간과 외계인의 조우로 이어지고, 다양한 외계인의 조우는 우주 정거장 알파의 거대화를 불러옵니다. 결국 너무 거대해진 알파가 지구에 영향을 끼치자 인간은 알파를 지구의 대기권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럼으로써 알파는 수천종의 외계종족이 평화롭게 사는 '천 개 행성의 도시'로 불리워지며 자립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제가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에서 [제5원소]의 향기를 느낀 것은 인간과 외계인이 한데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기본 설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에서 [제5원소]의 향기를 느낀 것이 아닌, [제5원소]가 애초에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의 원작인 그래픽 노블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이더군요.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영향을 받은 SF영화는 [제5원소]외에도 [스타워즈] 시리즈와 [스타트렉] 시리즈, 그리고 [아바타] 등 SF영화에 한 획을 그은 영화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제5원소]와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의 유사점은 세계관 뿐만이 아닙니다. 발레리안(데인 드한)과 로렐린(카라 델레바인)의 첫 등장 장면인 해변가 장면에서 로렐린의 수영복 차림은 마치 [제5원소]에서 리루(밀라 요보비치)가 입고 나온 그 유명한 붕대 패션을 연상시켰고, 전쟁과 복수 대신 평화와 용서를 선택하는 뮐 행성 진주족의 마지막 선택은 [제5원소]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아티스트 버블(리한나)의 공연은 [제5원소]의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디바송 <광란의 아리아> 장면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이쯤되면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본 후 오랜만에 [제5원소]를 다시한번 보며 두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 될 듯합니다.

 

 

 

뤽 베송 감독 일생일대의 프로젝트가 아쉬운 이유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 중에서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의 흥행 실패로 제작사 유로파코프의 CEO가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순수제작비 1억7천7백만 달러라는 거액이 투입된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는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1억7천2백만 달러 흥행에 그쳤고, 중국,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처참한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고합니다. 현재까지 북미 흥행성적은 고작 3천9백만 달러.

뤽 베송 감독이 40년을 기다린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로 알려진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는 그렇다면 왜 관객의 외면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어쩌면 그에 대한 해답은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본 후 극장 밖을 나서던 구피의 한마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피는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에 대해서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이 짜집기된 SF영화라는 혹평을 했습니다. 영화 속의 다양한 외계 종족들도 [스타워즈] 등 기존의 SF영화에서 본 외계 종족을 연상하게 했고, 영화의 기본적인 내용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구피의 그러한 혹평에 저는 반론을 제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설명했듯이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가 [스타워즈] 등 기존의 SF영화를 따라한 것이 아닌, 기존의 SF영화가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의 원작인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니 엄밀하게 따진다면 <발레리안과 로렐린>을 원작으로한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가 원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나라 관객 입장에서는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너무 낯설고 [스타워즈], [아바타]는 너무 익숙한 걸요. 뤽 베송 감독이 40년을 기다리지 않고 좀 더 일찍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만들었다면 다른 SF영화를 짜집기했다는 오명은 덜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데인 드한과 카라 델레바인의 이미지 변신

 

개인적으로 저는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가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외계 종족의 개성강하고 다양한 캐릭터들도 좋았고, 조금은 전형적이긴 하지만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캐릭터 매력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영화는 데인 드한과 카라 델레바인의 이미지 변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데인 드한의 경우는 [크로니클]에서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된 이후 점점 빌런으로 변해가는 앤드류로 눈도장을 찍은 이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메인 빌런 해리 오스본으로 세계적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이미지는 어딘지 모르게 음침했는데,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에서는 능력있고, 잘생긴 전형적인 바람둥이 에이전트 발레리안을 연기함으로써 음침한 이미지를 한층 밝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카라 델레바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인챈트리스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 역시 데인 드한과 마찬가지로 음침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에서 바람둥이 발레리안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어떨땐 섹시하게, 어떨땐 걸크러쉬 매력을 발산하며 영화의 재미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뤽 베송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대한 거의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를 봤던 저는 영화 중반에 클라이브 오웬이 알파의 사령관 아륀 필릿으로 등장할때 반가웠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에단 호크와 리한나의 출연도 좋았습니다. 특히 리한나의 공연은 웅이와 함께 봤기에 수위가 아슬아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겨웠습니다. 영상미도 화려했고, 내용도 가볍게 즐기는데 안성맞춤이라 인생 SF까지는 아니더라도 2시간 17분이라는 제법 긴 러닝타임을 즐기는데 있어서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왜 제목에 발레리안만 있고, 로렐린은 없는 것일까?

 

물론 뤽 베송 감독의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생각한다면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저는 로렐린의 역할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원작 그래픽 노블의 제목은 <발레리안과 로렐린>입니다. 다시말해 알파의 에이전트인 발레리안과 로렐린이 공동 주인공인 셈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발레리안과 로렐린>이 영화화되면서 로렐린은 제목에서 빠지고 발레리안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아와 더불어 로렐린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본드걸로 전락합니다.

영화 초반 발레리안은 전형적인 바람둥이입니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와 모두 동료 이상의 관계를 맺었고, 이번엔 로렐린에게 작업을 겁니다. 하지만 로렐린은 발레리안의 이전 파트너와는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발레리안의 작업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발레리안에 대한 호감을 드러냅니다. 발레리안의 다른 파트너처럼 되긴 싫어도 발레리안이 자신에게 좀 더 진지하게 대해준다면 그를 거부하지 않을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문제는 발레리안이 로렐린에게 청혼을 하는 등 나름 진지하게 대하려 노력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러한 발레리안의 청혼마저도 장난처럼 느껴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는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로렐린은 다른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악당(?)에게 잡혀가고, 발레리안은 목숨을 걸고 로렐린을 구해줍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해결한 후에는 역시 찐한 키스로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관계는 제목에서 로렐린이 빠지고 발레리안만 남은 것처럼, 발레리안이 '주'(主)가 되고, 로렐린이 '보'(補)가 됩니다. 뤽 베송 감독이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관계에 대해서 영화 초반에 조금 더 설명을 하고, 두 캐릭터에게 동등한 활약상을 안겨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링타임용 SF영화로 즐기는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무난함이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의 가장 큰 아쉬움일지도... 어찌되었건 이 영화는 뤽 베송 감독의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이니까요.

 

 SF영화는 무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1967년 처음 발간된 프랑스 그래픽 노블 <발레리안과 로렐린>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의 상상력은 조금 올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