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택시운전사] - 그날의 광주에서 그들은 진실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가?

쭈니-1 2017. 8. 14. 15:53

 

 

감독 : 장훈

주연 :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최귀화

개봉 : 2017년 8월 2일

관람 : 2017년 8월 12일

등급 : 15세 관람가

 

 

창피하지만, 이 역시도 우리나라의 역사인 것을...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된 8월 들어서 저와 저희 가족의 영화 보기는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8월 첫번째 주말에 일본 홋카이도로 저희 가족의 첫 해외 여행을 다녀온 탓에 시간도 없었고,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여독을 푸느라 영화보다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쉬는 것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휴가 기간동안 저와 저희 가족이 본 영화라고는 봉준호 감독의 걸작 [괴물] 다시보기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8월을 보낼 수는 없죠. 그래서 8월 두번째 주말에 드디어 웅이와의 극장 데이트에 나섰습니다. 저와 웅이의 8월 첫 극장 영화로 선택된 작품은 [택시운전사]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선택일 것입니다. 개봉 2주차만에 800만 관객에 육박하는 흥행성적을 올린 [택시운전사]를 보지 않고 여름을 보낸다는 것은 제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7월의 마지막 주말에 [군함도]를 봤으니 올여름 [군함도]와 함께 빅2를 형성할 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택시운전사]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웃음과 감동으로 포장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저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를 비교해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웅이에게 불과 30여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역사를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권력에 미친 독재자가 우리나라를 장악하면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깨닫게 함으로써, 웅이가 살아가고 만들어갈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구피는 "너무 슬프고 아플 것 같아서 싫어."라며 [택시운전사] 보기를 거부했지만, 토요일 아침 저와 웅이는 [택시운전사]를 보며 그날의 참사에 대해 참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택시운전사]의 가장 큰 의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1980년 5월 광주를 소재로한 영화들

 

한때는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처음으로 영화화된 것은 1996년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서부터였습니다. [꽃잎]은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충격으로 제정신을 잃은 소녀(이정현)와 공사장 인부 장(문성근), 그리고 소녀를 찾아 떠도는 소녀 오빠의 친구들(추상미, 설경구, 박철민, 나창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꽃잎]이 이렇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영화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 노태우라는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김영삼 문민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소녀를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첫 상업영화는 [꽃잎]이후 11년만에 만들어진 2007년 [화려한 휴가]입니다.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1980년 5월 고아주를 배경으로 택시운전사인 민우(김상경)와 동생 진우(이준지)를 통해 평범한 광주 시민이 어떻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휘말리고 희생되었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광주시청에서 벌어진 시민군과 진압군의 전투는 당시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10여년이 흘러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것입니다. [꽃잎]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묘사했고, [화려한 휴가]는 광주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 어쩌다가 진압군의 무시무시한 총칼에 희생되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줬다면, [택시운전사]는 그 중간의 위치에선 영화입니다. [화려한 휴가]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꽃잎]처럼 간접적이지도 않습니다. [택시운전사]는 외부인이라 할 수 있는 서울의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의 눈으로 1980년 5월의 광주를 바라봅니다. 

 

 

 

내부인의 시선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

 

만섭은 그야말로 우리시대의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젊은 시절 중동에 파견되어 돈을 벌어 귀국했지만 아내의 병원비로 거의 대부분의 돈을 잃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고물차가 된 택시와 딸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은 한심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중동에서 무더위를 참고 일했던 그에겐 대한민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었고, 그런 줄도 모르고 데모만 하는 대학생들은 그저 고생 따위는 모르는 철부지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비단 만섭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저희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은 뉴스에서 데모하는 대학생들만 나오면 공부하라고 대학에 보냈더니 데모만 한다며 못마땅해했었습니다. 저 역시도 고등학교 시절, 버스를 타고 서울역을 지나다가 데모대와 마주했고, 진압대가 쏜 최루탄 가스 때문에 혼쭐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이 모든 것이 쓸데없이 데모하는 형, 누나 때문이라며 저희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처럼 투덜거렸었습니다.

그랬던 만섭이 거금 십만원을 벌기 위해 독일인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에 가면서 실상을 두 눈으로 보게됩니다. 군에 의해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차단된 광주. 언론은 통제되고, 외부와의 통신마저 끊긴 상황에서 군은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외부 사람들은 군이 장악한 언론의 정보만 믿고 불순세력이 광주를 장악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만섭 또한 서울에 있었다면 그들처럼 생각했겠죠. 하지만 만섭은 광주에서 이 모든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렇게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입니다.

 

 

 

만섭의 변화

 

[택시운전사]는 만섭의 변화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변화를 대변합니다. 처음에 만섭은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이해하려들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것은 먹고 살기 힘들어 진실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80년대 우리 소시민들의 모습입니다. 그랬던 그가 광주에서 진실과 마주합니다. 처음에 그는 택시비 십만원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십만원이면 밀린 월세를 다 갚을 수 있으니까요. 진실보다 돈. 어쩌면 그것은 돈이 궁한 소시민에겐 당연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그랬던 그가 점점 처참한 광주의 실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더이상 돈이 아닌 가족이 됩니다. 만약 자신이 광주에서 뭔일을 당하면 혼자 남게 될 딸을 걱정되었고, 결국 그는 피터를 혼자 남겨두고 광주를 빠져나옵니다. 처음에 돈에만 관심을 두는 만섭을 비난하던 피터와 광주 사람들은 딸을 위해 광주를 빠져나가려는 만섭에겐 탓을 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줍니다. 광주를 어렵사리 빠져나온 만섭. 하지만 그는 그대로 딸이 기다리는 서울로 향하지 못합니다. 광주 밖의 사람들은 여전히 불순세력이 광주를 점령했다는 TV 뉴스와 신문기사를 믿고 있었고, 피터의 기사가 전세계에 송출되지 않으면 영원히 진실을 감춰질 것이라는 사실을 만섭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진실에 눈을 뜨고, 진실을 위해 싸우는 투사가됩니다. 진압군을 향해 총을 들고 칼을 드는 것만이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피터는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기자로써 진실을 위한 취재를 했고, 만섭은 목숨을 걸고 택시운전사로써 피터를 김포공항에 데려갑니다. 진실에 눈을 뜨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 그렇게 만섭은 점차 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화려한 휴가]처럼 치열하지는 않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치열하게 담아낸 영화는 아닙니다. [화려한 휴가]처럼 전쟁영화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시민군과 진압군의 전투씬도 없었고, 악역으로 기대를 모았던 사복경찰(최귀화)의 만행도 생각보다 악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송강호 툭유의 소시민적 코믹연기는 어느사이 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고, 진실을 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광주 지역신문의 기자인 최기자(박혁권)의 무기력함은 진실에 대한 간절함이 가슴시리게 느껴졌습니다.

단지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생이 되었지만,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채 군인의 손에 죽어가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모르는채 할 수 없었던 청년 구재식(류준열)의 싸늘한 주검, 목숨을 걸고 부상당한 시민들을 병원으로 나르던 황태술(유해진)을 비롯한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숭고한 희생.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담았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외부인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믿기지 않는 군의 만행을 가슴 깊이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웅이는 "실제는 영화보다 훨씬 참혹했대요."라고 말을 합니다. 다행입니다. 제 세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웅이 세대에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배우나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진실을 믿지 않는 일부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저는 웅이에게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을 처참하게 살해한 주범이 아직도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으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음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웅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군요. 웅이 세대의 깊은 한숨이 모여 다시는 그날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권력에 눈이 먼 미치광이가 일으킨 그날의 참혹한 현장.

부디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는 그런 미치광이가 권력을 잡는 일이

두번 다시는 일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