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류승완
주연 :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이경영
개봉 : 2017년 7월 26일
관람 : 2017년 7월 29일
등급 : 15세 관람가
무엇이 이 영화를 논란에 빠뜨렸나?
2017년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인 썸머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한 언론사에서 썸머시즌 한국영화 판세를 2강1중2약으로 예상했습니다. 2강은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1중은 [브이아이피], 2약은 [청년경찰]과 [장산범]입니다. 물론 예상은 예상일 뿐입니다. 2강인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가 예상 외로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고, 2약인 [청년경찰]과 [장산범]이 입소문을 타고 대박 흥행을 기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한 와중에 1강 중 한편인 [군함도]가 지난 주에 개봉했습니다.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군함도]는 2천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하며 개봉 첫날 역대 오프닝 최고 신기록(97만)을 수립했고, 개봉 5일째 4백만을 관객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는 역대 최고 흥행작인 [명량]의 기록과 같은 속도라고합니다. 하지만 [군함도]의 놀라운 흥행 뒤에는 논란도 함께 뒤따랐습니다. 해마다 썸머시즌이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독과점 논란에서 [군함도] 또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고, 일부 보수단체는 [군함도]의 장면이 지난 겨울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집회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을 벌임과 동시에 포털 사이트의 평점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고합니다.
솔직히 저 또한 [군함도]의 독과점 논란은 아쉽습니다. 일주일에 적으면 한편, 많으면 세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한편의 영화가 대부분의 스크린을 독점하는 상황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엄밀하게 따진다는 이는 [군함도] 때문이 아닙니다. 해매다 극장가 성수기만 되면 되풀이되는 문제이고, 돈벌기에 급급한 대형 배급사와 대형 멀티플렉스가 극장가를 장악한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욕을 하려면 [군함도]가 아닌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와 [군함도]에게 대부분의 스크린을 밀어주고 있는 CGV, 메가박스, 롯데 시네마에게 해야하는 문제입니다.
[군함도]가 촛불집회를 연상시킨다고? (이후 영화의 주요 내용이 언급됩니다.)
지난 토요일, 웅이와 함께 [군함도]를 보러 갔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조용히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토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조조 시간대로 [군함도]를 보러 갔지만 극장안은 이미 만원사례였습니다. 맨 앞좌석까지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더군요. [군함도]의 배급사와 대형 멀티플렉스가 왜 독과점 논란 속에서도 2천개가 넘는 스크린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자본주의적 논점에서 이해가 되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군함도]의 논란 중에서 스크린 독과점이 아닌 일부 보수 단체가 주장한 [군함도]가 촛불 집회를 연상시킨다는 주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과연 1945년을 배경으로한 [군함도]와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가 어떤 상관이 있는지...
영화의 후반까지는 [군함도]와 촛불집회의 상관성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며 드디어 문제의 장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 주요인사인 윤학철(이경영)을 구하기 위해 '군함도'에 잠입한 광복군 소속 OSS요원 박무영(송중기)은 윤학철이 '군함도'의 소장 다이스케(김인우)와 짜고 조선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빼돌리며, 거짓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야마다(김중희)는 윤학철의 협력아래 조선인 노동자들을 탄광에 몰아넣고 한꺼번에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을 눈치챈 무영은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윤학철의 만행을 고발합니다.
문제의 장면에서 촛불을 든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무영은 김학철의 진짜 모습을 공개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윤학철의 본 모습에 분개를 하고 결국 무영을 리더로 '군함도'에서 탈출을 시도합니다. 아마도 일부 보수단체는 촛불을 든 조선인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촛불집회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조선인 노동자들을 속이고, 가짜 리더 역할을 한 윤학철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속인 박근혜 전대통령을 발견했을지도... 하지만 저는 진정으로 그 장면이 속이 후련했습니다.
'군함도'의 인간군상들
[군함도]는 일제의 만행을 그린 전형적인 영화입니다. 일제의 만행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은 무조건적인 선, 혹은 피해자여야 하고, 일본인은 무조건적인 악, 혹은 가해자여야합니다. 그리고 관객의 감정이입을 위해서 일본인 캐릭터는 철저하게 생략해야하는 반면, 조선인 캐릭터는 세심하게 완성시켜야만합니다. 하지만 [군함도]는 조금 다른 시작점을 보입니다. 물론 영화 초반부터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이강옥(황정민)과 그의 하나뿐인 딸 소희(김수안)의 캐릭터를 세심하게 잡아내지만, 이는 강옥과 소희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을 위한 전개가 아닌, 조선인이 어떻게 속아서 '군함도'에 강제 징집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이 영화에는 네명의 조선인 주인공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강옥과 소희 부녀이고, 두번째는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목 최칠성(소지섭)이고, 세번째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겨우 빠져 나왔지만 또다시 '군함도'로 끌려온 오말년(이정현)이며, 마지막은 광복군 소속 OSS요원 박무영입니다. 그런데 강옥 부녀를 제외하고는 칠성, 말년, 무영의 캐릭터는 거의 생략해버립니다. 칠성이 종로에서 조선인을 괴롭히는 일본 주먹에 맞서 싸우다가 '군함도'로 끌려 왔다거나, 말년이 일본군 위안부 시설에서 생사를 걸고 도망치는 장면, 무영의 가족이 일본군에게 죽음을 당해 광복군에 합류하게 된 사정 등과 같은 각 캐릭터의 사정을 짧게라도 보여줬다면 그들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은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이 손쉬운 방법을 포기합니다.
그 대신 류승완 감독은 오로지 '군함도' 내의 인간군상들을 보여주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강옥과 소희는 살기 위해 비굴하게 일본인 앞에서 연주를 하고 춤을 추며, 칠성은 조선인 오야봉이 되겠다며 여전히 주먹 자랑중이고, 말년은 무기력하게 일본인들에게 짓밟히고, 무영은 자신의 임무 외엔 다른 조선인들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마치 내가 '군함도' 안에 있는 듯...
[군함도]가 진정으로 국뽕영화가 되려면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인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과거에서부터 세심하게 완성시켰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그들의 과거를 포기하고, 그 대신 '군함도'에서의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통해 그들의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오직 자신과 딸만 생각했던 강옥은 어느사이 조선인의 리더가 되어 있었고, 칠성은 조선인의 탈출을 돕기 위해 후방 지원에 나섭니다. 일본인보다 동족인 조선인이 더하다며 조선인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 말년은 칠성과의 진한 사랑에 빠지고, 오직 임무 성공만을 생각했던 무영은 '군함도'내 모든 조선인을 탈출시키겠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지옥에서 함께 생과 사를 넘나들던 그들의 동료애입니다. 처음에 그들은 자기 자신밖에 모릅니다. '군함도'라는 지옥에서 살아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챙기기에도 버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깨닫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들의 과거 따위는 필요없습니다. '군함도'에서 보낸 지옥과도 같은 현실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류승완 감독은 그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은 듯이 보입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군함도]는 국뽕 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언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류승완 감독의 선언에 공감합니다. 류승완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군함도'의 지옥으로 안내하고, 당시 '군함도'에 강제징집된 조선인들의 삶을 간접체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의 탈출을 통해 '군함도'에서 희생된 조선인 영혼을 위로합니다. 영화에서나마 조선인 희생자들을 고향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그렇기에 [군함도]는 진정 국뽕영화가 아닌,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이었습니다.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올 여름의 2강은 앞서 언급했던대로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두 영화 모두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습니다. [군함도]는 1945년 일제의 만행을,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썸머시즌 영화라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가 대세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더운 날씨 때문에 너무 심각한 영화보다는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가벼운 영화를 관객들이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저 또한 그 이유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일부 보수단체가 [군함도]를 보이콧한 촛불집회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6.25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수 많은 암흑과도 같은 터널을 지나 지금의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사태를 겪으며 우리 국민이 조금 더 깨어 있어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에 박근혜 정권을 비호하는 일부 보수단체가 거부감을 드러낸 것 역시 깨어 있는 국민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웅이와 함께 [군함도]를 봤고, 웅이와 함께 [택시운전사]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웅이에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해줄 것입니다. 웅이의 세대에는 그런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말입니다. 분명 [군함도]는 논란이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은 우리나라의 극장가의 생태를 바꿔서라도 시정해나가야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더 많은 분들이 [군함도]를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70여년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겪었을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일본은 '군함도'를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켰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일본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왜곡하고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의 상징성만 부각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왜곡하려해도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군함도'에는 수 많은 조선인들의 희생이 잠들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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