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덩케르크] -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이다.

쭈니-1 2017. 7. 25. 16:45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 핀 화이트헤드, 마크 라이런스, 톰 하디, 케네스 브래너, 킬리언 머피

개봉 : 2017년 7월 20일

관람 : 2017년 7월 22일

등급 : 12세 관람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그린 전쟁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제 블로그에서 여러차례 밝혔지만 저는 전쟁영화를 싫어합니다. 대부분의 전쟁영화가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악한 편의 군인에 대한 대량살상으로 선한 편의 영웅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쟁에서 선과 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하고 있는 전쟁영화라면 당연히 연합군이 선이고, 독일군이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성립됩니다. 하지만 진짜 악은 독일군이 아닌 히틀러를 비롯하여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찌 지도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책상에 앉아 지휘만할 뿐입니다. 실제 연합군에 맞서 싸우며 악이라는 오명과 함께 죽어간 것은 아무 것도 모르고 전쟁에 참가한 독일의 젊은 청년들 뿐입니다. 어찌 그들의 죽음을 악이라며 환호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기에 저는 전쟁이라는 것이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하는 잔인한 생존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 선 그들에겐 선과 악을 판가름할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저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적군을 죽여야한다는 간절함만 남아 있는 것이죠. 다행히 저는 이렇게 잔인한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 전쟁을 간접체험을 하는 것조차 괴로웠고, 단순한 이분법으로 선과 악을 갈리 놓고 적군을 죽이는 것에 환호하는 대부분의 전쟁영화가 역겨웠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영화라니... 이건 제 영화적 취향을 벗어나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저를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영화라면 다른 전쟁영화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요즘 젊은 세대들이 전쟁을 컴퓨터 게임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풍조 속에서 웅이에게 전쟁의 잔인함을 가르쳐주는 것도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웅이의 여름방학 첫 영화로 [덩케르크]를 선택했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

 

[덩케르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 있었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1940년 5월, 독일군은 프랑스-벨기에 국경지대의 프랑스 방어선을 돌파하고 그대로 영국 해협을 향해 서쪽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합군은 둘로 갈라졌는데, 영국군은 퇴로를 차단 당한 채, 해안에 고립되고 맙니다. 영국군 사령관이었던 육군 원수 고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사명은 병사들을 구출하는 것이라고 결론내린 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해안으로부터 철수 계획을 세웁니다.
고트는 남쪽 측면의 칼레와 불로뉴를 희생하여 독일군 탱크들이 해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시킨 뒤 경계선을 설정했고, 계속해서 옥죄어오는 이 경계선 뒤로 영국 해군은 프랑스군과 함께 '덩케르크' 항구와 인근 해안으로부터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 공군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철수하는 군대나 이들을 나르는 선박은 거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지만,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계속된 철수 작전은 성공리에 33만 8,000명의 병사를 영국으로 철수시켰고, 그중에는 12만 명의 프랑스 병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더욱 위대했던 이유는 일반인들의 요트와 어선들까지 나서서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섰기 때문입니다. 무려 850척의 어선을 포함한 선박들이 비무장 상태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동원되었고, 그 덕분에 최소의 희생으로 연합군은 영국 본토로 철수하여 후일을 기약하였고, 이는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는 교두보가 됩니다. [덩케르크]는 이렇게 '덩케르크' 해안에서의 급박했던 철수 작전을 세심하게 표현해냅니다.

 

 

 

대규모 전투씬은 없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담은 [덩케르크]는 확실히 기대했던대로 다른 전쟁영화와는 달랐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전쟁영화에서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전투씬이 없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폐허가된 마을에서 낙오된채 배회하던 영국군 몇명이 독일군의 공격에 도망가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전투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덩케르크]의 전투씬은 대부분 그러합니다. 독일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영국군은 보이지 않는 적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배급사는 '[덩케르크]는 전쟁영화가 아니다.'라는 당찬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배급사의 선언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덩케르크]에는 살기 위해 적군을 죽여야 하는 잔인한 전투 따위는 없습니다. 단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젊은 병사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토미(핀 화이트헤드)입니다.

토미는 영화 오프닝에서 독일군의 총격에 겨우 도망친 낙오된 영국군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덩케르크' 해변에 도착하지만 이곳 상황도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언제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밀고 들어올지 모를 상황이고, 만약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밀고 들어온다면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은 몰살될 것이 분명했습니다.(히틀러가 왜 갑자기 독일 기갑부대의 전진 중지를 명령했는지는 오늘날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최대한 빨리 '덩케르크' 해변에서 벗어나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미는 온갖 잔꾀를 짜냅니다. 해안가에 방치된 부상당한 병사의 들것을 들고 의무병 행세를 하기도 하고, 잔교 밑에 숨어 탈출선에 몰래 올라타기도 하고, 해안가에 버려진 선박 안에 숨어 밀물이 되어 배가 뜨기만을 기다리기도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대규모 전투씬은 없지만 영웅은 있다.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수만명을 죽이면 전쟁영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쟁의 본질이고,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수만명의 적군을 죽이는 전쟁 영웅을 화려하게 조명하기도합니다. 이러한 전쟁영웅의 등장은 제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런데 [덩케르크]에도 전쟁영웅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덩케르크]의 전쟁영웅은 다른 전쟁영화와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그들은 수만명의 적군을 죽였기 때문에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십명의 아군을 살렸기 때문에 영웅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요트를 끌고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뛰어든 도슨(마크 라이런스)입니다. 그의 큰 아들은 연합군에 참가했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도슨은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연합군의 젊은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요트를 끌고 나갑니다. '덩케르크'에 도착하기 전에 구출된 병사(킬리언 머피)는 '덩케르크'에 가면 죽게 될것이라며 배를 돌리라고 절규하지만 도슨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이 죽음을 향한 길이라도 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도슨과도 같은 수백명의 일반인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슨이 바다에서의 영웅이라면 하늘에서는 독일군 전투기를 막아야만하는 연합군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톰 하디)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연료가 없습니다. 다시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독일군 전투기를 뒤로 하고 부대로 복귀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연합군을 구출하기 위해 나선 선박들은 무방비 상태로 독일군 전투기에 노출됩니다. 그렇기에 파리어는 연료가 떨어져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 독일군 전투기와 맞서 싸웁니다.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이다.

 

물론 전쟁영화의 전형적인 영웅도 있습니다. 연합군의 볼튼(케네스 브래너) 사령관은 철수 작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영국으로의 철수가 아닌 '덩케르크'에 남아 프랑스군과 함께 결사 항쟁을 선택합니다. 그가 실존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순간에도 끝까지 카리스마를 잃지 않고 멋진 군인의 표상을 보여줍니다.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성공하여 영국에 도착한 토미를 비롯한 병사들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그들은 독일군에 패했고, 그들의 패배에 사람들은 비난하고 돌을 던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따뜻하게 영국으로 도망친 패잔병들을 반깁니다. 그들은 비록 전투에서 독일군에 패하고 영국으로 도망쳤지만,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살아남은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이고, '덩케르크'의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 돌아온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덩케르크]는 별다른 정보없이 영화를 본다면 굉장히 당혹스러운 영화입니다. 특별한 줄거리도 없고,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도 딱히 없습니다. 그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긴박한 순간을 하늘과 바다, 그리고 해변을 무대로 담고 있을 뿐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실망했다는 분들은 아마도 기존의 전쟁영화는 확연하게 다른 [덩케르크]의 전개가 낯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적군을 죽이고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승리가 아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 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임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수 많은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영화는 기대했던대로 달랐습니다.

 

 이 세상에서 전쟁은 진정으로 사라져야 한다.

전쟁을 일으킨 자는 안전한 벙커 속에 숨에 지시를 내리고,

무고한 젊은이만이 영문도 모르는채 총을 들고 목숨을 걸어야만하는

전쟁은 진정으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