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중앙일보의 김혜미 기자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김혜미 기자는 제가 쓴 [티끌모아 로맨스]의 영화 이야기를 읽고, 리뷰 앞부분의 IMF 세대의 당시 취업난에 대한 부분이 공감된다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 1997년. IMF 15주년 특집 기사라는 소개와 함께 외환위기를 겪은 각 세대를 인터뷰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중 외환위기 당시 대학 졸업반이었던, 이른바 IMF 세대를 대표해서 중앙일보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IMF 세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인터뷰, 그것도 유명 일간지에 제 사진과 실명이 실리는 인터뷰를 했다가 제가 예상하지 못한 파장이 일어날까봐 덜컥 겁도 났습니다.
실제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말리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너의 의도와는 다르게 신문이 기획한 의도에 따라 기사가 나갈텐데 그런 인터뷰를 뭐하러 하냐?'라는 충고는 저를 고민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블로그가 만들어준 또 하나의 추억이라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제가 언제 신문사와 인터뷰를 해보겠습니까? ^^
김혜미 기자를 사로 잡은 [티끌모아 로맨스]의 영화 이야기는 바로 아래 클릭 ↓
11월 13일 퇴근 후 집 앞에서 김혜미 기자를 만났습니다.
꽤 추운 날씨였지만 저희 집 앞에서 30분 가량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아파트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사진부터 시작해서, 제가 걸어오는 앞모습, 뒷모습 등 수십, 아니 수백장의 사진을 찍더군요.
동네 사람들은 '뭐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지나가며 저를 힐끔 쳐다봤습니다.
이거 굉장히 쑥쓰러웠지만 신문에 나갈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창피함과 추위를 꾹 참고 촬영에 임했습니다.
사진 촬영이 끝난 이후 집 근처 순대국집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제가 살아온 이야기, 지금 현재의 나의 모습 등.
거의 1시간 가량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 생애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인터뷰가 끝이 났습니다.
11월 21일 드디어 제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어제 김혜미 기자의 전화를 받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앞 슈퍼마켓에서 중앙일보를 샀습니다.
회사에 출근 후 신문을 펼치니 2면과 3면에 제 사진과 제 이야기가 실렸더군요.
물론 그 옆에는 삼포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제 인터뷰 기사를 읽은 첫 느낌?
흠... 뭐랄까... 저는 인터뷰 내내 '외환위기로 시작은 불행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희망이 보인다'며 주로 희망을 이야기했는데, 인터뷰 기사에는 제가 이야기한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더군요.
게다가 마지막 부분에 "혹독한 취업난과 만혼 풍조가 이 세대부터 시작돼 피해의식이 클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말이 덧붙여져 있어서 당황했습니다.
전... 피해의식 별로 없는데... 오히려 너무 낙천적이라 문제인데... ^^
아무래도 외환위기 이후 서민들의 아픔을 다룬 기사이다보니 제가 이야기한 희망적인 부분보다는 제가 걸어온 불행했던 길들을 부각시킨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쉽지만 큰 불만은 없습니다.
김혜미 기자의 승낙을 얻어 아래 중앙일보 기사를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사진이 참... 제 실물은 훨씬 더 나은데... (퍽~ *.-)
15년간 7번 이직 … 상투 때 대출 받아 집 샀지만
39세 김동준씨 IMF세대 아픔
김동준(39)씨는 대학을 나온 뒤 15년 동안 직장을 7번 옮겼다. 전문대 졸업을 앞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졌다. 1년 전만 해도 채용 공고문으로 빽빽했던 학과 게시판은 몇 달째 휑했다. 졸업 전까지 한번도 면접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간 건 2000년. 2년 동안 공공근로와 임시영업직을 전전한 뒤다.
철새 같은 인생은 계속됐다. 1년 반 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며 퇴사했다. 소프트웨어 벤처업체, 전자부품 제조업체를 거쳐 채권추심업체까지 흘러 들어갔다.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넘쳐나던 2004년이었다. “매일같이 사정 좀 봐달라며 우는 손님들을 상대하자니 괴로웠어요 ” 해외 문구용품을 수입하는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게 5년 전. 그는 “이렇게 정착하기까지 너무 멀리 돌았다”며 “이게 다 외환위기 때문에 첫출발이 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세대’(1977~69년생)로 불리는 이들은 스스로를 ‘운 없는 세대’로 부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디려 할 때 위기가 터졌다. 2000년까지 이어진 위기 때문에 상당수는 첫출발이 꼬였다. 이후에도 카드대란(2003년)과 글로벌 경제위기(2008년)를 연달아 겪으며 이직을 거듭했다.
IMF세대의 고용률이 유독 다른 세대에 비해 낮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세정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30대 후반 세대는 전후 세대에 비해 줄곧 낮은 고용률을 보였다”며 “중요한 시기마다 위기를 맞아 좋은 일자리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정승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전문연구원도 “자신의 능력·적성 등과 맞지 않는 일자리로 첫 단추를 끼운 데다 사회초년생 시절 적절한 교육의 기회도 잃은 세대”라고 분석했다.
집값 폭등락도 이들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겨우 사회에 자리를 잡고 가족을 꾸린 2000년대 중반에 이들은 집값 폭등을 겪어야 했다. 대부분 집을 마련하지 못했고 일부는 무리한 대출을 끼고 ‘상투’에 집을 샀다. 김씨 역시 2006년 8000만원의 빚을 지고 79㎡(약 24평형)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는 “지금까지 매달 30만원씩 꼬박꼬박 이자를 내왔는데, 집값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조영태(인구학연구실) 교수는 “이 세대는 한번도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아 보지 못한 세대”라며 “혹독한 취업난과 만혼 풍조가 이 세대부터 시작돼 피해의식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원문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579/9944579.html?ctg=1100&cloc=joongang|home|newsli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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