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2년 영화이야기

[다크 아워] - 블록버스터이고 싶었던 저예산 SF 영화.

쭈니-1 2012. 1. 9. 11:02

 

 

감독 : 크리스 고락

주연 : 에밀 허쉬, 올리비아 썰비, 맥스 밍겔라, 레이첼 테일러

개봉 : 2012년 1월 5일

관람 : 2012년 1월 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블록버스터냐, 저예산 SF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1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의 어느날, 저는 무심코 [다크 아워]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생소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생소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라서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그날 예고편을 본 저는 거실에서 TV 삼매경에 빠져 있던 구피를 컴퓨터 앞에 앉혀 놓고 예고편을 재감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다크 아워]의 예고편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일단 무대가 러시아라는 것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국적인 러시아의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SF 액션이라니... 이미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이 크렘린궁을 폭발시키기도 했지만 예고편 속의 러시아 풍경은 여전히 신선함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전기 에너지를 형상화한 외계 생명체의 존재도 제 흥미를 이끌었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의 등장 이후 외계 생명체의 공포를 다룬 영화들은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에 초점을 맞췄었습니다. 그런데 [다크 아워]는 아예 보이지 않는 외계 생명체를 담아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공포감을 안겨줄 수 있음을 간파한 영리한 전략인 셈이죠.

인간을 한순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의 위력 역시 [다크 아워]의 예고편에서 매력적인 장면입니다. 뭘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이 순식간에 모든 생명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이라니... 오금이 저릴 정도였습니다.

 

이쯤되면 여름방학 시즌에나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할리우드의 SF 블록버스터를 2012년 새해 벽두부터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해 보였던 [다크 아워]의 예고편. 하지만 문제는 이게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2010년 11월에 개봉했던 [스카이 라인]을 기억하시나요? 생소한 감독과 생소한 배우들이 만들어낸 이 SF 영화는 거대한 외계 함선이 인간들을 마구 빨아 들이고, 거대한 괴물이 LA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예고편으로 SF 영화의 팬들에게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극장에서 확인한 것은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거대한 블록버스터 SF가 아닌 적은 제작비로 그럴 듯하게 꾸며낸 저예산 SF 영화였습니다.

이미 저는 [스카이 라인]에 의한 학습효과로 [다크 아워]의 제작비 규모부터 검색했고, 그 결과 [다크 아워]는 블록버스터 SF가 아닌 [스카이 라인]과 비슷한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된 저예산 SF 영화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 우린 [다크 아워]를 감상함에 있어서 기대감을 어느 정도 덜어내야 합니다. SF 영화를 보는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영상일테지만, 저예산 SF 영화는 한정된 예산으로 관객이 기대하는 만큼의 영상을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까요. 그렇게 블록버스터 SF 영화의 기대를 버린 당신이라면 이제 [다크 아워]의 세계로 들어올 준비가 된 셈입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닌 기발한 아이디어인지도 모른다.

 

[다크 아워]가 예고편과는 달리 블록버스터 SF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난 후에도 제가 여전히 [다크 아워]를 기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저예산 SF 영화로도 재미있는 SF가 만들어 질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영화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전설적인 저예산 SF 영화 [터미네이터]입니다. 사실 [터미네이터]는 B급 SF 영화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SF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미래에서 온 킬러 로봇이 미래의 인간 지도자를 낳을 여성을 암살하려 한다는 아주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그 이후 많은 B급 SF 영화들이 [터미네이터]의 설정을 따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터미네이터]는 1편의 성공으로 2편은 블록버스터 SF 영화로 만들어질 수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디스트릭스 9]도 기발한 저예산 SF 영화의 대열에 합류한 바 있습니다. 지구로 불시착한 외계 생명체가 '디스트릭스 9'이라는 구역에 갇혀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SF에서 중요한 것이 규모가 아닌 기발한 아이디어임을 다시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다크 아워]가 과연 저예산 SF 영화이면서 예고편으로 관객을 낚시했던 [스카이 라인]과 같은 영화일 것이냐? 아니면 저예산 SF 영화이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 살려낸 [디스트릭스 9]과 같은 영화일 것이냐?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크 아워]는 제 2의 [디스트릭스 9]보다는 제 2의 [스카이 라인]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재미 문제는 떠나서 기발한 아이디어의 문제인데, [다크 아워]는 러시아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기 에너지 비슷한 모양새를 가진 외계 생명체가 공격을 한다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고는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명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느꼈듯이 영화의 배경인 러시아는 신선했고, 보이지 않는 외계 생명체의 위협은 위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크 아워]는 바로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했습니다. 엄청난 규모로 물량 공세를 할 것이 아니라면 블록버스터 SF 영화에서는 해내지 못한 그 어떤 기발한 설정을 내놓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크리스 고락 감독은 초반의 매력적인 설정들을 중반부터는 어정쩡한 스케일로 변환시키려 합니다. 저예산 영화이면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영화의 규모를 과시하려한 셈이죠. 그리고 그러한 그의 계획은 중반부 이후부터 반복되는 장면들의 지루함이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블록버스터이고 싶었던 저예산 SF 영화.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 남은 션(에밀 허쉬) 일행. 그들은 지하 창고에서 며칠을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러한 션 일행의 여정은 사실 외계 생명체한테 쫓기는, 그러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반복된 장면의 연속입니다. 초반에는 흥미롭게 영화를 바라보던 관객들이 서서히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죠.

크리스 고락 감독은 그러한 지루함을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 어정쩡한 스케일로 메꿉니다. 다리 한가운데를 부숴버린 배의 모습, 쇼핑몰 한가운데에 떨어진 비행기의 모습, 그리고 외계 생명체가 지구의 광물을 체취하기 위해서 건물들을 산산조각 내는 장면들, 영화의 후반에는 러시아의 강에 핵 잠수함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다크 아워]는 저예산 SF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스케일을 자랑하려 했던 것이죠.

하지만 크리스 고락 감독이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미 수억 달러가 들어간 거대한 블록버스터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눈 높이가 높아진 관객들에게 [다크 아워]의 스케일에 만족하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죠.

 

물론 인정합니다. 제작비 3천만 달러로 이 정도의 스케일을 완성한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제작비에 비례하여 영화의 스케일에 대한 만족도를 따로 책정하지 않습니다. 스케일을 영화적 재미로 내세운 SF 영화라면 제작비가 어떻던 비슷한 영화들끼리 묶어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것은 처음부터 [다크 아워]에겐 불리합 게임입니다. 15년전에 만들어진 [인디펜던스 데이]와 비교해서도 [다크 아워]의 스케일은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다크 아워]는 스케일만 내세웁니다. 차라리 그러한 열정을 기발한 스토리 라인에 쏟아 부었다면 저예산 SF 영화의 장점을 살릴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중반부 이후 [다크 아워]에서 가끔 등장하는 스케일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요? 미국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맹목적의 몇몇 젊은이들과 그들이 외계 생명체에게 쫓고 쫓기는 장면들의 반복입니다. 처음에는 미국 대사관으로, 그 다음에는 러시아의 핵잠수함으로, 그들은 열심히 뛰기만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몇몇 등장인물들이 희생을 당하며 영화의 극적 분위기를 띄우려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에 캐릭터가 구축되기도 전에 다짜고짜 외계 생명체의 침략이 시작되었으니 캐릭터가 제대로 구축되었을리 만무하고, 그렇게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캐릭터들 몇몇이 희생된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감정이 안타까움을 느끼며 션, 혹은 나탈리(올리비아 썰비)에게 감정이입을 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다크 아워]의 재미가 부실하게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저예산 SF 영화만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저는 [다크 아워]를 [스카이 라인]보다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스카이 라인] 역시 저예산 SF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안전한 집에서 벗어나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인공의 이해하기 힘든 모험담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스카이 라인]은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력을 과시합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그러한 마지막 장면들에 불만을 나타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인간의 뇌를 에너지로 삼는 외계의 기계. [스카이 라인]은 그러한 설정을 마지막에 역이용함으로서 영화 내내 부족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마지막에 가서야 과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스카이 라인]이 저예산 SF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결말입니다.

하지만 [다크 아워]는 그러지도 못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인간의 반격이 시작되었다.'라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인디펜던스 데이]가 그러했고, [우주 전쟁]이 그러했듯이, 무시무시한 외계 생명체를 등장시키고, 그러한 외계 생명체에 비해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무기력함을 실컷 보여준 후에 '그래도 우리 인간들은 이 어려움을 해쳐 나갈 것이다'식의 희망 섞인 해피엔딩로 마무리를 한 것이죠. 그러한 마무리는 이미 돈이 많이 들어간, 그래서 대다수의 관객이 원하는 희망을 보여줘야 하는 블록버스터 SF 영화에서 실컷 봤던 결말입니다.   

 

[다크 아워]는 결국 저예산 SF 영화의 장점을 무엇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한 영화입니다. 분명 3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완성해낸 이 영화의 스케일은 만족할만한 수준이지만 그러한 스케일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마치 자신이 블록버스터 SF인줄 착각을 하는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션은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점점 영웅 캐릭터가 되어 가고, 션과 나탈리의 로맨스는 노골적이며,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손발이 오그라들기까지 합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희망으로 끝을 내는 것마저 블록버스터 SF를 닮아 있습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제작비를 더 들여서 입이 쩍 벌어질 스케일로 영화를 완성하던가,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전의 SF 영화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던가, [다크 아워]는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다크 아워]에서 블록버스터가 되고 싶었던 저예산 SF 영화의 어정쩡한 영화적 재미만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최소한 [스카이 라인] 정도의 재미는 기대했는데, 제게 [다크 아워]는 제 2의 [스카이 라인]이 되기에도 부족했던 그런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저예산 영화가 블록버스터가 되기를 꿈꾸었을 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다크 아워]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