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권칠인
주연 : 이민정, 이정진, 이광수, 김정태
개봉 : 2012년 1월 5일
관람 : 2012년 1월 5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2년도 힘껏 달려보자.
드디어 2012년 첫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북릿에 올릴 기획 기사를 위해서 저녁마다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기에 2012년이 시작되었는데도 무려 4일간이나 영화를 보지 못했던 저는 2012년 첫 한국영화 개봉작인 [원더풀 라디오]로 영화관람의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원래는 2012년의 첫 영화라는 상징성 때문에 구피와 꼭 함께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하필 그날따라 구피의 컨디션이 난조를 보이는 바람에 아쉽지만 구피와의 첫 영화관람은 이번 주말로 미뤄뒀습니다.(주말에 구피와 [다크아워]를 보기로 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2012년 쭈니의 영화 이야기의 첫 페이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봅니다. ^^
2012년의 첫 영화로 제게 선택된 영광(?)의 영화는 바로 [원더풀 라디오]입니다. 이 영화는 2012년에 개봉하는 첫 한국영화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국영화들은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의 광풍을 피하고,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편애하는 유이한 시기인(설날, 추석) 설날 연휴에 맞춰 1월 19일에 일제히 개봉하는데 반에 [원더풀 라디오]는 용감하게도 1월 5일 개봉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죠.
[원더풀 라디오]의 그러한 자신감은 일단 이민정이라는 배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출연작이라고는 [펜트하우스 코끼리], [시라노 : 연애조작단]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인 이민정. 하지만 TV 드라마인 [마이더스]를 통해 이미 대세 여배우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원더풀 라디오]는 이민정이 첫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그러한 이 영화가 이민정에게 얼마나 많이 기대고 있는지는 영화의 포스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티저 포스터에는 이민정과 이정진이 함께 나와 있지만 정식 포스터에는 이정진은 뒷켠으로 밀려나고 이민정만이 단독으로 찍혀 있습니다.)
영화의 홍보도 철저하게 이민정에게 맞춰져 있는데 예능 프로에서 이민정 띄우기는 기본이고, 퇴출 위기에 몰린 버럭 DJ라는 이민정이 맡은 신진아 캐릭터를 통해 그녀의 연기 변신을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영화는 이민정에 의한, 이민정을 위한, 이민정의 영화입니다. 이민정과 함께 주연을 맡은 이정진에게는 억울한 일이겠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민정은 그러한 영화의 기대에 맞게 500만을 넘어 600만 관객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는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의 대항마로서 [원더풀 라디오]의 재미를 확실히 책임지고 있을까요?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합니다.
이민정은 원더풀
일단 [원더풀 라디오]의 재미와는 별도로 이민정의 매력은 충분히 발산된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과거 '퍼플'이라는 3인조 걸그룹이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룹을 해체하고 이제는 한 물간 라디오 DJ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신진아.
라디오 프로에 출연한 신인 걸그룹 '핑크돌스'가 '퍼플'을 모른다고 하자 복수심이 가득 담긴 진행을 하기도 하고, '비처럼 음악처럼'이 김광석의 노래라고 소개하기도 하는 그녀. 솔직히 고백하자면 귀여웠습니다.
제가 이민정이라는 배우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출연한 영화에 비해 그녀의 인기가 너무 띄워져 있어서 살짝 반감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원더풀 라디오]를 보니 그녀의 인기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닌 것 같네요.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닌 배우임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신진아라는 캐릭터가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고([라디오 스타]의 최곤 + [최고의 사랑]의 구애정) 영화는 뒤로 갈 수록 힘이 쭈욱 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민정의 매력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그녀가 부른 노래는 정말 OST도 하나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원더풀 라디오'의 특집 공개 방송에서 그녀가 부른 '어게인'과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기도 한 '참 쓰다'라는 곡은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하더군요.
그렇다고 이민정이 깜짝 놀랄 노래 실력을 선보인 것은 아닙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가 '참 쓰다'라는 노래를 부를 때 저는 '참 쓰다'를 '찬스다'로 듣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전문 가수가 아닌 이민정에게 그런 정확한 가사 전달마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암튼 그녀의 노래 실력은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어게인'을 부를 때에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싶어졌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꽤 늦은 시간이라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그녀의 기타치는 모습, 그리고 '참 쓰다'를 끝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원더풀 라디오]가 흥행에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이 영화로 인하여 이민정은 영화배우로서도 확실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연이 라디오를 살린다.
물론 [원더풀 라디오]의 매력이 단순히 이민정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더풀 라디오]는 [라디오 스타]가 그러했듯이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서 영화의 재미에 삽입시기키도 합니다.
라디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 함은 방송국의 일방향 진행이 아닌 청취자의 의견과 사연에 의한 쌍방향 진행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 모든 식구가 모여 자던 단칸 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별이 빛나는 밤에', '가위 바위 보'와 같은 라디오 프로를 즐겨 들었던 이유는 DJ와 음악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연으로 소개되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청취자의 사연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꿈과 음악사이에'라는 김창완이 DJ를 맡았던 CBS 라디오 프로입니다. 골수암에 걸렸던 17세 소녀가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다'며 사연을 보냈고, 그 사연은 많은 청취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채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사연은 김창완에 의해 책으로, 그리고 강우석 감독에 의해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원더풀 라디오]는 영화의 초반에 그러한 청취자의 사연을 잘 이용합니다.
새로온 까칠 PD인 이재혁(이정진)에 맞서 신진아가 생각해낸 새로운 코너인 '그대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코너를 이용한 것인데, 군인이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거의 난동 수준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웃기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만 같아 거부감이 들었던 '그대에게 바치는 노래'는 두번째 사연에서부터 위력을 발휘합니다.
암으로 아내를 떠나 보낸 택시기사가 아내와 같은 암에 걸린 딸을 보며 하늘나라의 아내에게 '딸이 보고 싶겠지만 너에게 보낼 수 없어.'라며 하소연하던 사연.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새아빠를 거부했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 죽은 아빠에게 '허락해 준다면 이젠 그 아저씨를 아빠로 받아들이겠다.'며 울먹이는 한 여고생의 사연 등은 라디오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던 눈물 코드입니다.
영화를 보며 잘 울지 않는 저도 이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습니다. 만약 [원더풀 라디오]가 그러한 청취자의 애절한 사연들로 에피소드가 꾸며져 있다면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 콧물을 쏟아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더풀 라디오]는 '그대에게 바치는 노래'로 분위기가 띄우고 본격적으로 신진아와 이재혁의 이야기로 접어듭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발생됩니다.
사연이 끝나자 급격히 힘을 잃다.
지금까지 [원더풀 라디오]에서 재미있었던 점을 우선적으로 적어 놓았는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그런 재미있었던 점들은 영화 그 자체가 아닌, 이민정의 매력과 영화 음악, 그리고 감동스러운 청취자의 사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부분들도 영화의 한 일부이지만 [원더풀 라디오]가 진정으로 재미있는 영화가 되려면 그러한 부수적인 재미를 영화의 재미에 잘 융합을 시켜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처음 이재혁과 신진아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부터 재혁 캐릭터가 조금 이상하게 흘러나긴 했습니다. 까도남(까고 싶은 도시의 남자) 캐릭터를 위해서 재혁은 처음부터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의도적으로 진아와 대립각을 세웁니다. 그런 재혁의 이해못할 캐릭터 때문에 이정진은 이민정에 비해서 매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김정태가 연기한 연예매니지먼트사 대표인 인석도 이해가 안되긴 마찬가지인데,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진아를 음해하더군요.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고 싶은 인석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닌데 후반부가 되면 확실히 그 무리수 때문에 영화가 진부해져 버렸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011년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TV 드라마 [최고의 사랑]를 떠오르게 했던 '퍼플'의 감춰진 해체 비밀과 그로 인하여 후반부에 급화해를 하는 진아와 미라(서영)의 모습. 진아의 컴백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재혁의 희생 등등... [원더풀 라디오]는 수많은 매력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채 진부한 설정과 진부한 내용으로 영화를 급마무리해나갑니다.
[원더풀 라디오]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감동스러웠던 장면이 진아의 마지막 컴백 장면이 아닌 청취자의 사연을 담은 영화의 초반부라는 것은 이 영화의 진정한 문제점인 셈이죠. 신진아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이민정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 역시 [원더풀 라디오]가 매력적인 요소를 얼마나 잘 활용하지 못했는지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방송국을 무대로 하기에 자연스럽게 컬투, 이승환, 김태원, 김종국, 개리, 달샤벳, 정엽, 장항준 등이 우정 출연을 하기도 하고, 이민정의 매력이 마구 발산되었고, 영화의 OST는 최근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으며, 영화 초반의 청취자의 사연은 제 눈물을 쏙 빼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로는 재미있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 분명 권칠인 감독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잘 되새김질 해봐야할 문제입니다.
'참 쓰다'라는 곡을 이 글의 배경음악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민정... 그녀는 노래 실력과는 별도로 노래하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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