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잡담

반라 훈계 교사를 통해 본 내 기억 속의 선생님.

쭈니-1 2011. 7. 8. 14:35

오늘 아침...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습니다.

울산의 초등학교 6학년 여교사가 아이들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팬티만 남긴채 입던 옷을 모두 벗인채 '정직해야 한다'라고 학생들에게 훈계를 했다고 하네요.  

아직 울산 교육청의 진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반의 아이들은 평생 이 선생님의 돌발 행동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 역시 좀처럼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오늘은 제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선생님들을 회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초등학교 5학년, 처음으로 반 임원이 된 나!!!

 

사실 초등학교 시절 저는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튀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는 아이였죠.

그래서인지 저는 학창 시절 동안 미화부장(대부분 여학생이 맡는데, 저희 반만 유독 제가 맡았던)만 몇번 했을 뿐, 특별히 반 임원에 선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에서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연이 참 어처구니없었습니다.

5학년이 되던 날,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사실 넌 다른 반에 배정되었는데, 내가 특별히 널 우리 반으로 데려왔단다."

한마디로 스카웃... 그런데 왜?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께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 한숨을 푹 쉬시며 "양복 한벌 또 해드려야 겠구나."하시는 겁니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합니다.

저와는 달리 공부도 잘하고 활발했던 저희 누나.

부모님께서는 당시 양복점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누나의 담인 선생님께 양복 한 벌을 맞춰 드렸었나봅니다.

당시엔 맞춤 양복이 유행이었던 시절이었고, 저희 아버지의 맞춤 양복은 동네에서 꽤 알아주었습니다. (사실 시골 동네라서 양복점이 그리 많지 않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 맞춤 양복을 얻은 선생님은 누나에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저를 자신의 반으로 데려오신 겁니다.

물론 맞춤 양복을 한 벌 더 받는 것이 목적이었죠.

선생님의 예상대로 부모님은 맞춤 양복을 선물해 주셨고, 저는 몇 주후 반 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원래는 반 아이들이 추천을 하고, 동의를 얻어야만 후보자로 등록되지만, 전 담임 선생님이 추천으로 후보자 등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이런 식으로 임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저는 스스로 제 자격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시 반 임원이 되려면 성적표에 수, 우, 미, 양, 가 중에서 미 이하가 있으면 안되었지만 저는 체육이 양이었습니다.(그때나 지금이나 운동은 죽도록 못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한과목은 괜찮다며 스스로 규칙도 바꿔 주셨고, 그렇게 저는 어거지로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선생님은 반 임원들을 나머지 공부 시키셨고, 나머지 공부에서 배운 문제들은 고스란히 시험 문제로 나와서 저는 처음으로 반 석차가 5등 이상으로 뛰어 올랐습니다.(물론 제 위는 모두 반 임원들)

처음으로 반 임원도 되어 보고, 성적도 뛰어 올랐지만 저는 저를 보며 미소짓던 선생님의 그 음흉한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2. 중학교 3학년,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셨던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

시골에서 학교를 보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오니 제 성적은 그야말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저는 반 등수는 중간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국어 교사였는데 국어 교과서를 읽는 딱딱한 수업대신, 시에 대한 수업에선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셨고, 소설에 대한 수업에선 아이들에게 소설을 쓰게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역시 그 분 덕분이고,

지금까지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며 기쁨을 누리는 것 역시 그 분 덕분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진정으로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발생합니다.

중학교 3학년이면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모두들 당연하게도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하던 시기죠.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공업계 고등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훨씬 좋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물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봤자 대학갈 가능성이 없던 성적이 하위권이었던 아이들을 위한 조언이었지만 저는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현혹되어 집에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외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저희 누나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했을 정도로 부모님께서 제게 걸었던 기대는 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찍 취업을 해서 돈을 벌겠다고 선언했고, 눈물을 흘리며 반대하는 부모님과 누나를 뿌리치고 결국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결과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취업을 했지만 저는 회사에서의 대우가 고졸과 대졸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현실의 쓰디씀을 경험하고 뒤늦게 공부해서 전문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 선생님을 안만났다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을 것이며 제 인생은 어떻게든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제 직업도 지금처럼 회계 담당자가 되어 있지는 않았겠죠.

그 분으로 인하여 내 인생이 좋게 바뀌었는지, 나쁘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해서 지금보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엇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3. 고등학교 2학년... 그 선생님의 슬픈 눈빛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저는 그곳에서도 역시 튀지않게 적당히 성적은 중간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얻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수업 시간에 수업은 듣지 않고 몰래 소설만 썼기 때문에 반에서도 괴짜로 통했습니다.

그러던중 저는 제 인생의 최고 괴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어디에서 버려진 자전거를 주어와서 고쳐서 "이제부터 이 자전거는 우리 반 자전거다."라고 선언하시건 그 분은 (교내에서 자전거를 타면 위험하다는 교감 선생님의 지적으로 며칠 만에 그 자전가는 창고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끔 엉뚱한 행동으로 다른 선생님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터졌습니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돌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밤이고, 낮이고 철저하게 감시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괴짜 담임 선생님께서는 조용한 밤에 아이들 방에 들어와서는 모두 모이게 하고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주시는 겁니다.

이런데 와서 이렇게 몰래 술도 마셔야 추억이라며...

다른 선생님들이 아이들 단속을 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그 순간, 담임 선생님은 오히려 조용히 잠든 아이들에게 소주를 선물해 주신 겁니다.

결국 술에 취한 몇몇 아이들 때문에 이 사실은 발각이 되었고, 수련회가 끝나고 나서 저희 반의 담임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소문으로는 그 선생님이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저는 학교에서 우연히 그 선생님과 마주쳤습니다.

괴짜이시긴 하셨지만 언제나 열정이 넘치셨던 분인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걷고 계시더군요.

그러다가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인사를 하는 제게 그 선생님은 하염없이 슬픈 눈빛을 보여 주셨습니다.

교내에서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해 주시고, 선생님 몰래 소주를 마시는 것도 추억이라며 소주잔을 내미시던 그 분, 저는 그날 이후로 그 선생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각각 한 분씩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계시네요. 

이제는 추억 속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그 분들...

과연 반라 훈계 선생님도 반 아이들에게 추억의 일부분이 될까요? 아니면 정신적 충격의 원흉이 될까요?

솔직히 아직 저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