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생텀] - 3D의 생생함이 오히려 독이 되다.

쭈니-1 2011. 2. 11. 11:20

 

 

감독 : 알리스터 그리어슨

주연 : 라이스 웨이크필드, 리차드 록스버그, 이안 그루퍼드

개봉 : 2011년 2월 10일

관람 : 2011년 2월 10일

등급 : 15세 이상

 

 

제임스 카메론에 대한 믿음으로...

 

2009년 12월에 개봉한 [아바타]는 분명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SF영화를 봤었지만  [아바타]는 다른 SF영화와 달랐습니다.

우선 기술적으로 3D 영화라는 점입니다. 물론 [아바타] 이전에도 3D 영화는 간혹 나왔었고, 저 역시 [아바타]로 3D 영화를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바타]의 3D는 이전에 제가 경험한 3D 영화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이전엔 3D 안경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3D 영화에 대한 만족보다는 불만족이 더욱 심했었지만 [아바타]는 제가 3D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할만한 매혹적인 기술력으로 저를 판도라 행성이라는 신세계로 안내했습니다.

개봉 당시 말이 많았던 스토리 역시 저는 대만족이었는데, [늑대와 춤을]과 비슷한 스토리 전개를 갖고 있지만, 문명의 횡포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늑대와 춤을]과는 달리 [아바타]는 인간의 문명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들었고, 대항했습니다. 결국 제게 2009년 최고의 영화는 단연 [아바타]였습니다.

 

[터미네이터 1, 2], [에이리언 2], [트루 라이즈], [타이타닉]까지 그리 많은 영화를 감독하지는 않았지만 발표하는 영화마다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어비스]는 제외)제임스 카메론. [생텀]은 그러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입니다.

물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직접 연출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생텀]에서 제임스 카메론의 역할은 제작총지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텀]이 제게 이번 주 기대작 1위가 된 이유는 이 영화가 3D 영화라는 점 때문입니다.

[아바타]를 본 후 저는 수 많은 3D 영화를 봤습니다. 하지만 제 만족도를 채워준 3D 영화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불편한 3D 안경을 써야 하고 일반 영화보다 훨씬 비싼 관람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언제나 영화를 보고나서 '차라리 2D로 볼껄!'이라는 후회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3D 영화가 대세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돈에 눈이 먼 극장들은 값싼 2D보다 돈이 되는 3D 상영을 선호했고, 2D로 보고 싶어도 상영하는 극장이 없어서 못 보는 이상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3D  영화 열풍의 주범(?)인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했다는 [생텀]의 개봉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관람료가 아까웠던 3D 영화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아바타]가 아닌 영화에서도 제임스 카메론의 3D 매직이 유효한지 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오기가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3D의 장점은 생생한 현장감이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최고의 특수효과는 관객들에게 그것이 특수효과인지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꽤 오래 전에 읽은 인터뷰 기사라서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나지만 대충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주받은 기억력의 소유자인 제가 그 오래 전 인터뷰 기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기사 덕분에 특수효과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 영화에서 특수효과 바람이 불던 시절이었는데 아직 기술이 미비하여 특수효과라고 해도 상당히 투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특수효과 기술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우리 특수효과 썼습니다.'라고 대놓고 자랑하듯이 특수효과 장면을 과도하게 부각시켰던 것입니다. 고소영 주연의 [구미호]가 그랬고, 안성기와 신현준 주연의 [퇴마록]이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특수효과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것이 특수효과인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쥬라기 공원]의 경우 그 영화를 볼 당시만 해도 공룡이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실제 공룡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었습니다. 진정한 특수효과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죠.

 

[생텀]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이전에 뜬금없이 특수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3D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바타]를 제가 최고의 3D 영화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영화를 보며 제가 판도라 행성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며 나비족들과 함께 달렸고, 이크란을 타고 함께 날아 다녔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팀 버튼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3D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제가 실망한 이유도 역시 같습니다. 3D 효과가 없는 장면과 3D 효과가 나타나는 장면이 간극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러한 간극은 [아바타]와는 달리 제가 이상한 나라에 서 있다는 현장감을 전혀 느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생텀]은 과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영화다웠습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3D 효과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동굴과 물 속에서 영화의 캐릭터들과 함께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답답함과 공포는 영화를 보는 저를 서서히 조여 오더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구피가 '나, 폐쇄 공포증이 있나봐!'라며 괴로움을 호소했을 정도로 [생텀]의 현장감은 정말 생생했습니다.

 

 

하지만 생생함이 발목을 잡다.

 

일단 인정은 해야 겠습니다. 3D 기술만큼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3D 기술이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재미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바타]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은 짜릿함과 아름다움을 안겨줬습니다. 며칠 전에 이제 갓 9살이 된 웅이와 지난 크리스마스 때 구입한 [아바타] DVD를 감상했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는 웅이가 1시간 40분 동안(CD 1만 봤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고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며 영화를 감상하더군요. [아바타]의 3D 효과의 대단함은 그러한 현장감을 영화적 재미로 연결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생텀]은 아닙니다. [아바타]처럼 [생텀]도 생생한 현장감을 갖추고 있지만 그러한 현장감은 영화를 보는 제 목을 조여오는 고통이었습니다. 동굴 밖 출구를 필사적으로 찾는 영화 속의 캐릭터들처럼 저 역시 영화를 보며 빨리 그들이 저 답답한 동굴 속을 벗어나 확 트인 바깥 세상으로 탈출하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3D로 재현된 생생한 현장에 머물러 있고 싶다는 생각보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생텀]이 3D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려 했다면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좀 더 포커스를 맞췄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남태평양의 깊고 거대한 해저동굴 '에사 알라'라는 좋은 소재도 갖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화 초반에 드러낸 '에사 알라'의 위용은 대단했는데, 마치 지구 한가운데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만 같은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빨리 탐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 잡혔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작비 때문인지(이 영화의 제작비는 비교적 저예산인 3천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초반 잠시 위용을 떨치던 '에사 알라'는 중반부터 자취를 감춥니다. 이후부터 [생텀]은 좁은 동굴 속에 갇힌 사람들의 두려움을 표현하기만 합니다.

세트 촬영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 영화의 동굴씬은 '에사 알라'의 거대한 위용과 비교해서 초라함 그 자체였고, 영화도 거대한 동굴의 신비로움보다는 재난 영화에 초점을 맞추며 3D의 생생함을 장점으로 부각시키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단순무식한 캐릭터... 하지만 스토리 라인은 그런대로 만족

 

아무래도 [생텀]을 감상하는 제 초점이 3D에 중점을 두다보니 제 영화 이야기도 3D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네요. 이번엔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으로 이야기를 바꿔 보겠습니다.

일단 캐릭터 자체는 상당한 단순합니다. 세계 최고의 동굴 탐험가인 프랭크(리차드 룩스버그)와 프랭크의 강압적인 태도에 늘 불만을 품고 있는 아들 조쉬(라이스 웨이크필드)의 갈등이 이 영화의 중심입니다.

프랭크와 조쉬를 제외하고는 다른 캐릭터들은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칼(이안 그루퍼드)의 경우는 프랭크와 조쉬의 화해를 위해 너무 무리한 설정으로 캐릭터를 망가뜨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 만큼 프랭크와 조쉬는 이 영화에서 절대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알리스터 그리어슨 감독은 캐릭터 설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도대체 이들이 왜 갈등을 겪고 있는지는 캐릭터들의 대화만으로 유추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가야 하는 갈등으로는 부족해 보였고, 이들의 화해 역시 너무 뜬금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생텀]은 그것을 제외하고는 재난 영화로는 무난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굴에 갇혀 버린 이들의 공포와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활약 등 기본적인 재난 영화가 갖추어야 할 사항들을 [생텀]은 갖춘 셈입니다.

캐릭터가 단순하여 스토리 자체가 허술해 보이는 단점이 있지만 영화를 보며 전체적인 스토리 구조는 무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두 불구하고 역시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재난 영화를 보기 위해서 제가 투자한 영화 관람료가 너무 비싸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다시 3D 이야기로 [생텀]의 영화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네요. 제가 만약 8천원이라는 일반적인 관람료로 영화를 관람했다면 '재난 영화로는 무난하게 재미있는 영화이다.'라는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1만3천원의 관람료를 지불했고, 일반 관람료보다 무려 5천원이나 많은 돈을 투자한 이유는 일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3D의 쾌감을 느끼기 위한 댓가였습니다. 

하지만 3D 효과는 쾌감보다는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 영화는 최소한 제게만큼은 실패작인 셈입니다. 3D 영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지만 그로 인하여 영화에 대한 제 만족도는 점점 감소하고 있네요. 참 슬픈 현실입니다.

 

 

난 좁은 동굴에 갇히거나, 깊은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생생함은 내게 답답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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