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강우석
주연 : 정재영, 유선, 강신일, 조진웅, 장기범
개봉 : 2011년 1월 20일
관람 : 2011년 2월 7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출범하였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스티커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새로 나온 스티커를 구경하다가 프로야구팀의 마스코트 스티커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프로야구팀 마스코트 스티커가 그다지 예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로보트 만화영화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주로 동물들로 이루어진 프로야구팀 마스코트는 시시해 보였거든요.
하지만 프로야구가 개막한다고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시절이었기에 저는 기념으로 프로야구팀 마스코트 스티커를 딱 하나만 구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MBC 청룡, 삼미 슈퍼스타즈, 롯데 자이언츠, 이렇게 6개 구단 스티커 중 제가 선택한 것은 OB 베어스의 스티커였습니다. 곰이 배트를 들고 있는 그림이 귀엽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제 30년 베어스 사랑의 시작인 셈입니다.
저는 참 컴플렉스가 많은 사람입니다. 영어 알레르기가 있고, 수학은 초등학교 이후 포기했고, 몇 번이고 갔던 길도 헤매는 심각한 길치이며, 어렸을 때 물에 빠져 허우적댔던 기억 때문에 아직도 물을 무서워합니다. 게다가 저는 몸치이기까지해서 운동이라고는 할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제가 야구는 좋아합니다. 남자들이라면 거의 좋아한다는 축구도 싫고, 농구는 더더욱 싫어하는 제가 정말 유일하게 좋아하는 스포츠가 야구인 셈입니다.
제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1982년 우연히 구입한 OB 베어스 스티커 때문입니다. OB 베어스는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삼성 라이온즈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제가 구입한 스티커의 팀이 우승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는 자연스럽게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중엔 불사조 박철순 투수의 불굴의 의지에 감동해 지금까지 베어스의 활약에 웃고 우는 열혈 팬이 되어 버렸습니다.
[글로브]는 야구 영화이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딱 두개만 고르라면 전 영화와 야구를 고를 것입니다.(물론 여기에서 좋아하는 것이란 가족, 친구를 뺀 것입니다.) 그렇기에 야구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당연히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영화에서 제 기억 속의 야구 영화는 [공포의 외인 구단], [슈퍼스타 감사용] 정도 뿐입니다. 미국에서는 [내츄럴], [꿈의 구장], [루키], [메이저리그], [베이브], [더 팬] 등 여러 장르의 영화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겐 매우 아쉬운 일이죠.
그렇기에 [글로브]는 제겐 기대해도 좋을 만한 영화였습니다. 야구를 소재로한 영화이며, 제가 영화광으로 입문하며 처음으로 좋아했던 강우석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로브]는 제게 참 인연이 없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상영 시간대가 저와 맞지 않았고, 결국 개봉 3주가 지나고, 퇴근 후 웅이에게 가는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겨우 볼 수가 있었습니다.
[글로브]는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전국대회 1승을 위해 오늘도 소리없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그들. 강우석 감독은 스포츠와 장애를 극복한 이들을 결합하여 최적의 감동 요소를 찾은 셈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최다연승, 최다탈삼진, 3연속 MVP를 차지했던 한국 프로야구 간판스타 김상남(정재영). 하지만 이젠 먹튀가 되어 음주폭행 파문이나 일으키는 문제아로 전락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숙하는 의미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임시 코치직을 맡습니다. 당연히 김상남은 이런 상황이 못마땅하죠. 하지만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순수한 열정을 본 그는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당시의 열정을 기억해 내고 진심으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와 함께 전국 대회 1승을 위해 피땀흘리는 훈련을 합니다.
내용은 참 간단하죠? 맞습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진행될지, 감동 코드는 무엇일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뻔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일으키며 장기흥행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뻔한 설정이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뻔한 스토리를 넘어서는 야구의 감동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글로브]는 참 뻔한 스토리, 뻔한 감동 코드를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김상남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이 영화가 어떠한 장면으로 관객의 감동을 자아낼지 눈에 뻔히 보이는데 제 눈시울은 어느새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은 스포츠 영화의 힘입니다. 사람들은 극적인 승부를 기록한 스포츠 경기를 두고 각본없는 감동의 드라마라는 소리를 합니다. [글로브]는 바로 그러한 각본없는 감동의 드라마를 잘 이용한 것입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전국대회 첫 출전팀인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와 전통의 강호 군산상고 야구팀의 경기 장면은 바로 그러한 각본없는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투수라고는 차명재(장기범) 밖에 없는 충주성심학교 야구부가 군산상고를 맞이하여 연장 12회 혈전을 펼치는 장면을 보며 이 모든 것이 각본에 의한 영화 속의 경기임을 잘 알면서도 마치 현장에서 야구를 보는 듯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낀 것입니다. 각본에 의한 영화 속의 경기가 각본 없는 감동의 드라마로 탈바꿈한 경우인데 그 현장감이 워낙 생생해서 마지막 순간엔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흔히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 야구에서 투수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좋은 투수만으로는 비길 수는 있어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야구라는 경기는 타자들이 점수를 내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지만 그라운드의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몫을 해내며 단결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중학교 시절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후천적인 병으로 인해 청각장애를 앓게 된 차명재가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에서 그러한 것을 깨닫는 과정은 30년동안 야구를 사랑해 오던 제겐 꽤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진정 깨달은 것은 김상남이었을 것입니다. 야구를 좋아했던 학창시절의 초심을 잃고 사고만 치던 그가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으로 초심을 되찾는 과정은 어찌보면 너무 뻔한 설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 중 초심을 잃고 아까운 재능을 낭비하는 선수들을 많이 봐온 저로써는 이 영화를 그들이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네요.(특히 롯데의 정수근 선수... 그가 베어스에서 뛰었던 시절부터 참 좋아했던 선수였는데...)
동정이야 말로 가장 큰 적이다.
그 외에도 [글로브]는 2시간 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라디오 스타]를 연상하게 하는 김상남의 매니저 정철수(조진웅)의 눈물겨운 희생과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재미를 차용한 김상남과 나주원(유선)의 티격태격 사랑 이야기.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장애인에 대한 이 영화의 시선입니다.
저도 한때 장애인과 함께 회사 생활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혼자였고, 남들 역시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버스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고, 우린 버스에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그가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남들과 다르게 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딱히 차별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더 배려해야한다.'라는 태도를 그를 대했고, 그는 그러한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는 단지 자신도 남들과 똑같이 대해주기를 원했었습니다.
[글로브]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주성심학교의 교감(강신일)과 나주원은 아이들을 특별하게 대합니다. 훈련을 할 때도 질책보다는 칭찬을 하고,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니만큼 어려운 훈련을 자제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태도는 아이들의 야구 실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김상남은 처음부터 아이들을 일반 야구부원들과 똑같이 대합니다. 질책도 하고, 호된 훈련도 병행합니다. 나주원은 그런 김상남에게 항의를 하지만 김상남은 아이들에게 대한 자신의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와 군산상고의 연습 경기에서 군산상고 선수들은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충주성심학교 야구단에게 일부러 열심히 경기에 임하지 않습니다. 그런 군산상고 아이들에게 김상남은 외칩니다. 너희들의 그런 동정심이야말로 저 아이들의 가장 큰 적이라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사실 장애인을 일반인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생겨납니다. 우리가 그들을 일반인들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글로브]는 스포츠 영화가 가지고 있는 다이나믹한 재미와 더불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시선을 함께 갖춘 영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좋습니다. 영화에 담겨진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목인 GLOVE에서 G를 빼면 LOVE가 됩니다. ^^)
스포츠의 진정한 감동은 차별이 없다는 점이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팀이라고 해서 점수를 얻고 시작하지는 않다.
그렇게 모두가 평등한 스포츠의 감동을 [글로브]는 고스란히 물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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