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 스코글랜드 감독의 [저격자]와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폰 부스]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번잡한 도시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저격자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도 그렇고, 전화만이 유일하게 주인공과 저격자의 언어소통의 도구로 사용된 것도 그렇습니다. 이 두영화의 각본가중 한명은 다른 사람의 각본을 훔쳤을 거라는 생각이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비슷한 이 두 영화는 극의 전개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베테랑 감독인 조엘 슈마허와 헐리우드의 유명한 극작가 래리 코언에 의해서 탄생된 [폰 부스]는 상당히 실험적인 영화였습니다. 공중 전화 박스라는 상당히 한정된 공간에서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진행시킨 [폰 부스]는 영화의 러닝타임과 영화속 사건의 실제 진행 시간이 정확히 일치하도록 전개하는등 지금까지 헐리우드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폰 부스]의 특징은 이 영화속 범인은 특별한 동기가 없다는 겁니다. 단지 스튜(콜린 파렐)은 재수없이 저격자(키퍼 서덜랜드)의 표적이 된것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스튜가 당하고 있는 이유없는 폭력이 자기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영화가 진행되는내내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 게임]에서처럼 말입니다.
그에반에 [저격자]는 [폰 부스]보다는 상당히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저격자]는 제한된 공간보다는 보다 폭넓은 복잡한 도시의 공간을 이용함으로써 영화의 규모를 키웁니다. 게다가 피해자인 리버티(린다 피오렌티노)와 저격자인 조(웨슬리 스나입스)의 관계를 보다 정치적으로 만듬으로써 스튜와 저격자의 이야기로 한정했던 [폰 부스]와는 달리 스토리 라인을 보다 복잡하게 꼬아놓습니다. 그리고 [폰 부스]와 [저격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저격자]의 조는 범행 동기가 확실하다는 겁니다. 아니 오히려 리버티에 대한 이야기보다 조의 안타까운 과거를 들쳐냄으로써 관객들에게 가해자인 조를 동정하게끔 만듭니다.
비슷한 스토리 라인에다가 비슷한 전개... 하지만 이 영화는 바로 범인의 동기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마지막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버립니다. [폰 부스]가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스튜에게 일어나는 일을 관객에게 감정이입시켰다면 [저격자]는 마치 [런 어웨이]가 그러했듯이 요즘 미국에서 문제가 되어 있는 총기 소지 문제를 영화속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킴으로써 영화적 재미를 이끌어 냅니다.
전 솔직히 내가 폭력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폰 부스]보다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저격자와 피해자의 심리 게임을 즐기는 것이 더 재미있었지만 이 영화를 같이 본 구피는 [폰 부스]가 휠씬 긴장감이 있고 재미있었다는 군요.
암튼 똑같은 소재로 이렇게 다른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같은 영화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서로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영화라는 것... 언제나 절 놀랍게 만드는 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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