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사라진 밤] - 절박함은 보이지 않고 껄렁거림만 남았다.

쭈니-1 2018. 3. 9. 15:13



감독 : 이창희

주연 : 김상경, 김강우, 김희애, 한지안

개봉 : 2018년 3월 7일

관람 : 2018년 3월 8일

등급 : 15세 관람가



★ 이 글은 [더 바디]와 [사라진 밤]의 스포 덩어리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더 바디]는 어떻게 리메이크되었을까?


이번주 개봉작 중에서 기대작인 [툼레이더], [플로리다 프로젝트]보다 [사라진 밤]을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라진 밤] 역시 기대작이 되기에 충분한 영화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고, 주연을 맡은 김상경, 김강우, 김희애 조합도 꽤 믿음직해보입니다. 게다가 2014년에 개봉한 스페인 스릴러 [더 바디]의 리메이크 영화라는 것도 [사라진 밤]의 기대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저는 [더 바디]를 꽤 재미있게 봤거든요. 특히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밤]의 시사회 당시 김상경이 연기한 형사 우중식이 코믹했다는 평을 들은 이후, [사라진 밤]에 대한 제 기대감은 불안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바디]에 의한다면 우중식은 절대 코믹해선 안될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더 바디]는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집착하는 미모의 재력가 아내, 마이카(벨렌 루에다)를 살해한 알렉스(휴고 실바)와 담당 형사인 하이메(호세 코로나도)의 대결을 담은 영화입니다. 마이카의 시체가 사라지고, 그녀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하나 둘씩 발견되자 알렉스는 자신의 연인인 카를라(오라 가리도)가 위험에 처했다고 직감합니다. 하지만 하이메는 알렉스가 마이카의 시체를 숨겼다고 확신하며 그를 잡아둡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이메의 캐릭터 성격입니다. 그는 10년전 사고로 아내를 잃었으며 아직도 죽은 아내를 그리워합니다. 그렇기에 하이메는 아내의 죽음에도 담담한 표정를 짓는 알렉스에게 반감을 가지고 그를 의심합니다.

그런데 [사라진 밤]에서는 하이메의 역할을 하는 김상경이 코믹하다고하니 제가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캐릭터의 성격이 이렇게 180도로 달라졌다는 것은 [사라진 밤]이 비록 [더 바디]를 리메이크했지만 전혀 다른 영화일 것이라는 반증입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밤]은 [더 바디]와 다른 반전을 관객에게 제시할까요? 그랬다가 반전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실망스럽다면 제 분노가 극에 치달을텐데... 영화를 보기도 전에 휘몰아친 불안감에 의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저는 일단 [사라진 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우중식은 왜 코믹해져야만 했을까?

처음엔 그 부분이 불안요소였지만,

일단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다음부터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형 형사물의 폐해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라진 밤]은 [더 바디]를 굉장히 충실하게 리메이크했습니다. 반전도 [더 바디]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세세한 설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 뿐, 대체적으로 [더 바디]와 비슷합니다. [사라진 밤]이 [더 바디]에서 바뀐 부분은 하이메는 아내가 뺑소니 사고로 죽은 것과는 달리 중식은 약혼녀 지영(경수진)이 죽었으며, 박진한(김강우)과 윤설희(김희애)가 지영의 시체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유기했다는 설정이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혜진(한지안)은 지영의 동생으로 설정됩니다. [더 바디]에서 카를라는 하이메의 딸로, 죽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알렉스에게 접근합니다. 그런데 [사라진 밤]의 제작사는 국내 관객의 정서상 아무리 복수를 위해서라도 어머니를 죽은 범인과 딸이 동침한다는 설정이 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설정의 변경 덕분에 하이메에 비해 중식의 나이가 젊어졌고, 김상경이 캐스팅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뭐 다 좋습니다. 굳이 원작을 있는 그대로 판박이처럼 따라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분명 국내 정서에 맞게 설정을 변경하는 것도 리메이크 영화의 덕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변경된 중식의 캐릭터 성격은 여전히 설명이 안됩니다. 막상 [사라진 밤]을 보니 중식의 캐릭터가 우려했던것 만큼 코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바디]에 비해 엄청나게 가벼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식의 캐릭터가 가벼워진 이유는 한국형 형사물의 전형적인 설정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영화에서의 형사는 다혈질에 조금 똘끼가 있는 성격으로 그려지기 시작했고, 김상경 역시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그와 비슷한 형사를 연기했었습니다. 게다가 중식의 동료 형사들은 아예 이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로 만들겠다는 듯 대놓고 웃기려합니다. 그로 인하여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였던 [더 바디]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사라진 밤]에서는 스릴러와 코미디를 오가는 난데없는 강약조절만이 돋보였습니다.


우리나라 형사물의 형사들은 왜 모두 약간의 똘끼와 코믹함을 갖추고 있야만 할까?

[더 바디]에서 우울하면서도 날카롭던 하이메가 그리워졌다.



스릴과 코믹의 강약조절


분명 [더 바디]를 재미있게 본 제 입장에서 분위기가 가벼워진 [사라진 밤]은 아쉬웠습니다. 스릴러 영화는 긴박한 분위기가 영화의 재미를 좌우한다고 믿기에, 알렉스와 하이메의 팽팽한 대결, 그리고 시시각각 카를라에게 다가오는 마이카의 위협이 [더 바디]를 인상깊은 스릴러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밤]은 다릅니다. 설희가 살아있다고 믿는 진한의 히스테리가 분위기를 잡아 놓으면, 껄렁대는 중식과 코믹한 분위기의 동료 형사들이 분위기를 풀어놓는 식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그렇기에 [사라진 밤]은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릴러 영화가 되었습니다.

사실 [더 바디]는 국내 흥행에서 완벽하게 실패한 영화입니다. 2014년 5월 22일에 개봉해서 누적관객 6만6천여명을 모으는데 그쳤으니까요. 물론 스페인 스릴러 영화라는 낯설음이 [더 바디]의 국내 흥행 실패의 한 요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긴박하게만 끌고가는 영화의 스토리 전개도 영화 흥행 실패에 한 몫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은 코미디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편이고, 모든 장르에서 약간의 코미디가 가미되어야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이지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 바디]는 그러한 부분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사라진 밤]은 그러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바꾸었는지도 모릅니다. 한국형 형사물에서 껄렁하고 똘끼있는 형사가 주를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관객들이 그러한 형사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반증일 것이고, 중식과 동료 형사들 덕분에 영화의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으며, 관객이 긴장감을 잠시라도 풀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주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라진 밤]은 [더 바디]를 우리나라 관객의 성향과 정서에 맞게 정당히 변형을 가한 영리한 리메이크 영화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희가 살아있을 것이라 믿는 진한의 히스테리가 긴장감을 끌어올리면

중식과 동료 형사들이 어김없이 긴장감을 풀어놓는다.

이렇게 [사라진 밤]은 [더 바디]를 국내 관객의 성향에 맞게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중식이 좀 더 심각해졌어야 하는 이유


일부 관객은 [더 바디]와 비교해서 너무 가벼워진 [사라진 밤]의 분위기를 아쉬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관객은 [더 바디]의 무겁기만한 분위기에서 탈피해서 강약조절을 할 줄아는 [사라진 밤]의 분위기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전자에 해당됩니다. 물론 저 역시도 [사라진 밤]의 강약조절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중식의 캐릭터만큼은 좀 더 심각하게 그려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제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가벼워진 중식의 캐릭터에 아쉬움을 느낀 것은 영화의 마지막 반전, 중식의 껄렁한 표정에서 느끼는 어색함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중식의 캐릭터를 정리해보면... 그는 10년전 약혼녀 지영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이 분명한데 시체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는 실의에 빠집니다. 중식의 동료 형사들이 예전에 중식은 레전드였는데 요즘은 왜 그러냐고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10년전 지영의 실종 사건 이후 중식의 성격이 바뀌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지영의 실종에 조금씩 무감각해질때쯤 중식은 혜진을 만나고, 혜진을 통해 지영의 뺑소니 차량이 진한의 차량임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잡을 수 없어서 수사를 진행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뿐인 가족인 언니를 잃은 혜진이 진한에게 접근하며 직접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문제는 중식이 혜진의 계획을 단순히 모르는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점입니다. 중식은 설희의 시체를 빼돌려 숨겼고, 국과수 시체보관실에서 진한을 잡아두며 계속해서 그를 압박합니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범죄입니다. 그렇게 중식이 자신의 형사 인생을 걸면서까지 범죄를 저질렀다면 지영의 시체를 찾고 싶다는, 그리고 복수를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중식은 그러한 간절함을 보이지 않고 껄렁거리기만 할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지영의 시체를 찾은 후 진한에게 모든 진실을 말할때조차 중식의 껄렁함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한 중식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기에 저는 최소한 중식 만이라도 조금은 진지하게 그렸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입니다.


진한을 바라보는 중식의 표정에 장난끼가 섞여서는 안된다.

그는 자신의 형사 인생을 걸고 큰 모험을 할 정도로 절박하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중식의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인비저블 게스트]는 또 어떻게 리메이크될까?


[더 바디]의 오리올 파올로 감독은 스릴러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스페인 감독이입니다. 그의 영화 중에서는 2017년 9월 21일에 국내 개봉한 [인비저블 게스트]도 리메이크가 결정되었다고합니다. [인비저블 게스트]는 의문의 습격으로 연인을 잃고 용의자 누명까지 쓴 아드리안(마리오 카사스)이라는 남성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입니다. [인비저블 게스트] 역시 아드리안이 과거 은폐한 뺑소니 사고가 주요 단서가 되고, 마지막 반전은 [더 바디]만큼은 아니지만 꽤 기발한 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사라진 밤]의 개봉을 기다렸듯, [인비저블 게스트]의 국내 리메이크를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사라진 밤]을 보고나니 [인비저블 게스트]도 약간 걱정이 되긴 합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또 어떤 주요 캐릭터를 가볍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인비저블 게스트]는 [더 바디]만큼이나 웃음기가 전혀 없는 팽팽한 긴장감으로만 이루어진 영화이기에 그러한 제 걱정은 기우가 아닐 것입니다.

뭐 좋습니다.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영화에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옮긴다면 굳이 리메이크 영화가 필요가 없습니다. 어찌되었건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적당한 각색은 필요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영화의 분위기가 가벼워진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중해야할 캐릭터와 가벼워도 될 캐릭터는 정확하게 구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진중해야할 캐릭터가 가볍게 행동할 때 드러나는 어색함은 [사라진 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라진 밤]의 우중식이 조금만 더 복수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줬다면 좀 더 완벽한 리메이크가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리고 부디 [인비저블 게스트]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리 리메이크라 할지라도 아무거나 막 바꿔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발 지킬건 지키며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