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더 포스트] -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하기에...

쭈니-1 2018. 3. 8. 11:31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개봉 : 2018년 2월 28일

관람 : 2018년 3월 7일

등급 : 12세 관람가



웅이가 선택한 영화, 하지만 혼자 볼 수 밖에 없었던 영화


지난 3월 첫째주는 제게 당혹스러운 한 주였습니다. 워낙 보고 싶은 영화가 한꺼번에 많이 개봉해서 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 선택권을 웅이에게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3월 첫째주 개봉작 리스트를 주르륵 보여주며 이 영화 중에서 보고 싶은 영화 두 편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웅이가 고른 영화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더 포스트]였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선택입니다. 저희 가족은 이미 한달전부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개봉을 기다렸을 정도로 원작소설의 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포스트]는 의외였습니다. [궁합], [리틀 포레스트] 등 웅이가 좋아할만한 영화들도 있는데 아무리봐도 오락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더 포스트]를 선택하다니...

웅이가 [더 포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웅이는 어렸을 적부터 [E.T.], [후크], [그렘린], [빽 투 더 퓨쳐] 등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거나 제작한 영화들을 많이 봤거든요. 이제 웅이도 저만큼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팬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웅이와 [더 포스트]를 함께 보는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구피가 [더 포스트] 대신 [궁합]을 원했기도 했고, 토요일 저녁부터 갑자기 제 왼쪽 발등이 팅팅 붓기 시작하더니 [더 포스트]를 예매한 일요일엔 아예 걷지조차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더 포스트]는 다운로드 서비스가 오픈되면 봐야할 처지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월요일 저녁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하면서 [더 포스트]가 보고 싶다는 제 열망이 다시 살아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화요일에 병원에서 제 왼쪽 발이 더 이상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수요일에 혼자 [더 포스트]를 보고 왔습니다. 웅이와 함께 보려던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영화를 이렇게라도 보고나니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그나저나 3월 둘째주 개봉작도 만만치 않아서 이들 기대작을 모두 어떻게 봐야하는지 앞이 캄캄하네요.


언론의 자유를 수호했던 1971년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벤.

나도 그처럼 치열하게 영화보기의 자유를 부르짓고 싶다.

직딩이 감당하기엔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단 말이다.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조합이라니...


웅이는 [더 포스트]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 했지만, 저는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투톱 주연에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는 미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입니다. 특히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에 [더 포스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아카데미에서만 무려 21번째 노미네이트라는 대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메릴 스트립의 이름이 보이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입니다. 그녀는 1980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1983년 [소피의 선택]과 2012년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메릴 스트립 만큼이나 톰 행크스의 연기력도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사실 그의 연기 인생은 [스플래쉬], [총각파티], [빅], [터너와 후치], [볼케이노] 등과 같은 가벼운 오락 영화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필라델피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변신을 시도했고, 놀랍게도 1995년에도 [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년 연속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웁니다. 현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2회 수상한 배우는 톰 행크스를 비롯하여 말론 브란도,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만, 숀 펜 등 모두 아홉명인데 그 중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유일한 3회 수상자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스이스 [팬텀 스레드]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만큼 톰 행크스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기록을 깰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한 영화에서 불꽃튀기는 연기 대결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그들이 품어내는 강항 카리스마가 영화를 보는 내게 전달되어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고,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증가시키니까요. 그렇기에 제게 있어서 [더 포스트]는 극장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영화입니다. [더 포스트]가 아니라면 언제 또다시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투톱 주연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의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그렇기에 현재 최고의 미국 배우인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 투톱 주연은

내게 결코 뿌리칠 수 없는 강한 유혹과도 같았다. 



1971년 워싱턴 포스트에서 벌어진 일


[더 포스트]는 1966년 베트남전이 한참 벌어지는 와중에 미 국방부 소속 댄 엘스버그(매튜 리즈)가 직접 베트남전을 참관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귀국 비행기에서 로버트 맥나라라(브루스 그린우드) 국방장관에서 베트남전의 비관적인 실상을 보고하지만, 정작 로버트 맥나마라는 귀국 후 미국이 베트남전을 이기고 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합니다. 결국 죄책감을 느낀 댄 엘스버그는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의사결정 기록인 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몰래 빼돌립니다.

1971년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최초의 여성 발행인이라는 세간의 못미더운 시선을 느끼면서도 워싱턴 포스트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식 공개라는 힘든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워싱턴 포스트의 경쟁 언론사인 뉴욕 타임즈에서 댄 엘스버그가 빼돌린 펜타곤 페이퍼를 특종 보도한 것입니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이 비밀이 알려지자 미국은 발칵 뒤집힙니다. 거리엔 반전 운동의 물결이 시작되었고, 닉슨 정부는 펜타곤 페이퍼 보도가 미국의 이익에 해가 된다며 관련보도를 금지시키는 법적 조치를 내립니다.

뉴욕 타임즈가 정부의 압박으로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주춤하게 되자 워싱턴 포스트도 기회를 얻습니다. 벤 백디키언(밥 오덴커크)이 댄 엘스버그와 접촉하여 4천장에 달하는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한 것입니다. 이제 당장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특종 기사를 내야한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의 주장과 주식 공개를 앞두고 정부와 각을 세웠다가는 워싱턴 포스트가 문을 닫아야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이사진의 반대 의견 속에서 캐서린 그레이엄은 선택을 해야만합니다.


주식 공개를 통해 할아버지로 부터 물려 받은 가족회사인 워싱턴 포스트를 지키려는 캐서린

하지만 그녀는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벤의 주장에 갈등하게 된다.

과연 워싱턴 포스트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언론의 자유라는 신념을 지킬 것인가? 



잃을 것이 많기에 그녀는 용감했다.


사실 처음에 저는 [더 포스트]를 보면서 메릴 스트립보다는 톰 행크스의 연기가 더 눈에 띄었습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캐서린 그레이엄은 주식공개를 통해 투자를 받으려 노심초사하는 전형적인 여성 사업가의 모습 뿐이었지만, 톰 행크스가 연기한 벤 브래들리는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캐서린 그레이엄이 정적인 캐릭터라면 벤 브래들리는 동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적인 캐릭터보다 동적인 캐릭터가 더 눈에 띄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90회 아카데미에서는 메릴 스트립을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 시켰지만, 톰 행크스는 노미네이트조자 되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초반까지만해도 저는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후반으로 흐르며 왜 벤 브래들리보다 캐서린 그레이엄이 더 주목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캐서린 그레이엄이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허용한 후 벤 브래들리의 아내인 토니 브래들리(사라 폴슨)는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잃을 것이 별로 없잖아요. 워싱턴 포스트가 문을 닫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되니까요. 하지만 캐서린은 너무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를라요.' 그렇습니다. 겉보기에 벤 브래들리가 훨씬 용감하고 열정적이지만, 사실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은 벤 브래들리가 아닌 캐서린 그레이엄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법원이 뉴욕 타임즈에게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보도를 금지시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역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며 캐서린 그레이엄은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행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로 인하여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게 된다면 주식공개도 물거품이 되고, 할아버지때부터 운영한 가족회사 워싱턴 포스트는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벤 브래들리에게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승인하는 캐서린 그레이엄의 눈빛은 아주 작게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왜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최고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승인하는 캐서린 그레이엄

그의 당찬 표정 뒤에 희미하게 흔들리는 눈빛은 

그녀가 최고의 연기자임을 다시한번 깨닫게한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더 포스트]는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의 연기 외에도 많은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이 영화의 외침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새겨들어야할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초반 닉슨은 자신의 막내딸 결혼식 취재에 대해서 워싱턴 포스트에 다른 기자를 보낼 것을 요청합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멕 그린필드(캐리 쿤) 기자가 백악관 만찬에 난입한 경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이 문제에 대해서 벤 브래들리에게 "그깟 대통령 결혼식 취재인데 다른 사람을 보내면 되지 않냐?'며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하지만 벤 브래들리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한 백악관의 사소한 요구 조차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범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힘을 견재할 기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국회이고, 그것이 국민이며, 그것이 언론입니다. 하지만 국회는 정부의 편들기에 급급하고, 언론이 입을 닫아버리면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의 실상을 감추고 미국의 젊은이들을 남의 나라 전쟁 속에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힘을 견재할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댄 엘스버그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10%는 베트남을 위해서이고, 20%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이며, 70%는 미국이 전쟁에서 질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단지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 미국의 젊은이들을 승산이 없는 남의 나라 전쟁에서 희생당하는 것이라며 벤 백디키언에게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부탁합니다.

닉슨이 펜타곤 페이퍼 보도가 미국의 이익에 해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주장하던 루이 14세와 뭐가 다르냐는 항변과 미국 대법원이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판결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서 굳게 입을 닫았던 우리나라 언론에 대한 채찍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 대한 백악관 출입 금지를 선포하던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됨을 암시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누구처럼 말입니다. 1971년 워싱턴 포스트의 용기있는 결정이 미국의 언론 자유를 수호했다면 2016년 JTBC의 국정농단 보도가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를 지켜낸 것은 아닐까요?


가끔 정부는 국익을 위해서라며 언론과 국민의 입과 귀를 막아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국익은 자신의 정권, 권력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은 그러한 것들 파헤쳐 국민에게 알려줘야한다.

그것이 언론이 역할이며, 사명이라고 [더 포스트]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