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홍창표
주연 : 이승기, 심은경, 김상경, 연우진, 조복래
개봉 : 2018년 2월 28일
관람 : 2018년 3월 3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승기에 대한 구피의 사랑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원래 3월 첫째주 개봉작 중에서 제 기대작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더 포스트]였습니다. [리틀 포레스트]와 [궁합]도 보고 싶었지만, 일단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더 포스트]를 먼저 본 후 시간이 허락한다면 [리틀 포레스트]와 [궁합]을 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한 제 계획은 착실하게 이행되고 있었습니다. 삼일절 휴일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봤고, 일요일엔 [더 포스트] 예매를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보기로한 삼일절 아침부터 이상조짐이 생겨났습니다. 구피가 삼일절에 일본영화를 보는 것은 조금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영화를 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주말에 보고 [리틀 포레스트]를 보자고 제안했지만, 구피는 마땅찮은 표정으로 "그냥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보자."라며 얼버무리더군요. 삼일절의 작은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저희 가족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다빈치 얼라이브 : 천재의 공간>을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다빈치 얼라이브 : 천재의 공간>을 오전에 보고나면 오후에 시간이 남기에 저는 구피에게 [더 포스트]를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더 포스트]가 보기 싫다더군요. 구피는 애초에 [궁합]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삼일절날 일본영화 운운하며 딴지를 걸었던 이유도 [궁합]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희 가족은 <다빈치 얼라이브 : 천재의 공감>을 관람한 후 구피가 원하는대로 [궁합]을 보러 갔습니다.
사실 토요일에 [궁합]을 보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일요일에 기대작인 [더 포스트]를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토요일 저녁부터 제 왼쪽 발등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밤새 통증 때문에 잠을 설쳤고, 일요일엔 걷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더 포스트] 예매를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그러게 토요일에 [더 포스트]를 보러 갔다면 돌발 상황 속에서도 두 편의 기대작을 모두 볼 수 있었을텐데... 이승기에 대한 구피의 무한 애정이 이렇게 [더 포스트] 관람을 막아버렸네요.
우리 가족은 토요일 낮에 영화 [궁합]을 보고, 주말 밤에 tvN 드라마 <화유기>를 보고,
일요일 저녁에는 SBS 예능 <집사부일체>를 봤다.
주말 내내 이승기만 봤는데, 구피는 웅이가 이승기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솔직히 양심상 그건 아니라고 구피에게 간절히 읍소했다.
개봉이 2년이나 미뤄진 이유는 분명 있는 법이다.
만약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더 포스트]를 봤다면, 저는 남는 시간에 [리틀 포레스트]와 [궁합] 중에서 단연 [리틀 포레스트]를 먼저 선택했을 것입니다. 제가 [궁합]을 3월 첫째주 개봉작 중에서 우선순위 4위로 미룬 것은 이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궁합]은 이승기가 군 입대전 촬영이 끝난 영화입니다. 그런데 정작 개봉은 이승기가 군 제대 후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영화의 개봉이 2년이나 미뤄진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의 만듦새가 허술하여 배급사에서 눈치를 보며 개봉을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궁합]의 만듦새에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게다가 [궁합]의 홍창표 감독의 이력도 제 의심에 부채질했습니다. [궁합]은 홍창표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그 이전에 홍창표 감독은 [조선미녀삼총사]의 조감독이었습니다. 2014년 1월에 개봉한 [조선미녀삼총사]는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 미녀 삼총사로 이루어진 현상금 사냥꾼의 활약을 담은 액션 코미디 영화입니다. 하지원, 강예원, 가인이라는 꽤 흥미로운 캐스팅이 돋보이는 영화였지만 영화의 만듦새가 워낙 허술하여 개봉 당시 혹평과 흥행 실패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조선미녀삼총사]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한 사극이고, [궁합]도 마찬가지이기에 저는 [궁합]에 [조선미녀삼총사]의 그림자를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가 우려했던 것만큼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개봉일이 2년이나 미뤄지며 영화의 만듦새가 다듬어졌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였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설 연휴에 본 사극영화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와 비교한다면 저는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보다 [궁합]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정사와 야사의 경계를 마구 휘저으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펼쳐 냈지만, [궁합]은 최소한 그 경계만큼은 착실하게 지켜나가며 이야기를 완성했기 떄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구피가 열렬히 사랑하는 이승기에 대한 질투를 잠시 접어둔 [궁합]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궁합]은 분명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사극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조선미녀삼총사]처럼 망작 사극영화도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가 적당히 섞여 있고,
여기에 '궁합'이라는 소재가 흥미를 자극하는, 충분히 즐길만한 오락영화이다.
[궁합]은 어떻게 정사와 야사의 구분을 지켜냈을까?
앞서 [흥부 : 글로 세상을 바꾼 자]와의 비교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궁합]은 정사와 야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켜나간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정사와 야사의 경계란 무엇일까요? 2012년 개봉한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 15대왕 광해군의 이야기로 꾸며진 영화입니다. 물론 정사의 기록 그 어디에도 광해군(이병헌)을 대신해 광해군과 닮은 저잣거리 만담꾼 하선(이병헌)이 광해군의 자리에 앉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 8년 2월 28일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라"라는 어명과 역사속에 사라진 광해군의 15일간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서 하선이라는 인물을 창조해냈습니다. 이렇게 광해군의 정사를 거슬리지 않으며 하선이라는 야사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궁합]은 어떠한가요? [궁합]은 영조 2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 실록에 의하면 영조 29년에는 가뭄이 극심하여 임금이 친히 기우제를 몇번이나 지내고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시키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궁합]은 영조(김상경)가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안오자 가뭄해소를 위해 송화옹주(심은경)의 부마 간택을 시행한다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송화옹주의 기록이 실록 그 어디에도 없다는 점입니다. 송화옹주는 비록 후궁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왕족이므로 정사에 기록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궁합]은 어떻게 풀어나갈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궁합]은 제게 첫번째 합격점을 받아냅니다. 자신의 남편감을 직접 봐야한다는 생각에 궁을 몰래 나간 송화옹주는 여러 소동을 일으키고, 결국 조선 최고의 역술가 서도윤(이승기)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옹주의 신분으로 외간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니 조선시대 법도로 따진다면 경을 칠 일입니다. 하지만 영조는 송화옹주를 어여삐 여겨 그녀의 출궁을 허락하고 송화옹주에 대한 기록을 실록에서 모두 지우라고 명령합니다. 이로써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사랑은 정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야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사이어야 마땅할 송화옹주가 자유로워지면서
[궁합]은 조선시대 로맨틱 코미디라는 공식을 착실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궁합]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러브스토리
[궁합]은 [관상]을 잇는 두번째 역학 영화입니다. 하지만 [관상]과 [궁합]은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180도로 다릅니다. [관상]은 조카인 단종의 자리를 노리는 수양대군(이정재)의 야망을 그림으로써 묵직한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반면 [궁합]은 남녀간의 사랑을 가볍게 그리는데 몰두합니다. 영화는 가뭄 해소를 위해 송화옹주의 부마 간택을 실시하는 영조의 명으로 시작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사랑에 모든 것을 내다바칩니다.
첫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첫 만남부터가 그러합니다. 서도윤이 부마 후보자인 윤시경(연우진)인줄 착각하고 골탕먹일 생각으로 기습 뽀뽀를 해버리는 송화옹주. 솔직히 전 이 장면을 차라리 뺐으면 좋았을뻔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런 식의 만남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유교적 법도가 확실한 조선의 궁에서 옹주가 외간 남자에게 기습 뽀뽀를 감행하는 장면은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고해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리수가 [궁합]이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궁합]은 비록 사극 영화이지만, 사극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장치들을 섭렵합니다.
송화옹주가 부마 후보자들을 눈으로 확인하겠다며 궁을 몰래 빠져 나간 후 서도윤과의 연이은 인연이 그러합니다. 송화옹주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서도윤은 그녀와 부마 후보자인 조유상(김도엽)과의 만남을 돕게되고, 이후에도 송화옹주는 부마 후보자인 강휘(강민혁), 남치호(최우식) 등을 차례로 염탐하는데 그럴때마다 서도윤과 마주치며 티격태격하고, 로맨틱 코미디가 거의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들의 티격태격은 사랑으로 변해갑니다. 결국 '궁합'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는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사랑을 위한 들러리로 전락하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그러한 것들을 세세하게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임을 알기에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주게 됩니다.
학의 탈을 쓰고 부마 후보자의 사주단지를 훔치는 송화옹주
그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가 '궁합'이라는 소재를 가볍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묵직했던 [관상]과는 달리 [궁합]은 이렇게 가벼움으로 승부를 건다.
[궁합]의 가장 취약한 부분
[궁합]은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장치들을 두루 섭렵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코믹 조연과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당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궁합]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나오고 맙니다. 우선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코믹 조연은 이개시(조복래)의 경우부터 보죠. 영화 초반 사기꾼으로 서도윤에게 체포된 이후 서도윤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그의 곁을 알짱거리는 이개시는 전형적인 코믹 조연입니다. 하지만 [궁합]은 이개시의 역할을 코믹 조연으로만 활용하지 않고, 영화의 후반엔 영빈(박선영)과 윤시경의 음모를 밝혀내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는 주요 인물로 내세웁니다. [궁합]에서 차지하는 이개시의 가벼운 비중을 감안한다면 그의 비중을 갑자기 확 끌어올리는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부분입니다.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당에는 영빈과 윤시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빈은 허약한 세자를 위해 송화옹주의 불행을 바랍니다. 윤시경은 영빈의 명을 받고 송화옹주의 부마에 간택되어 부와 명예를 얻으려합니다. 이 두 사람은 서도윤이 혼자 상대하기엔 너무 벅찬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서도윤은 윤시경과 송화옹주의 결혼식날 갑자기 궁에 박차고 들어와 윤시경의 음모를 밝힙니다.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고해도 마지막 갈등 해소를 너무 단순하게 처리한 감이 있습니다.
[궁합]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사랑을 잘 구축했지만, 그들의 사랑을 가로 막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선 서툴렀다는 점입니다. 다시말해 [궁합]의 최대 장점인 가벼운 분위기가 영화의 후반에 가서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초중반의 가벼움과 후반의 묵직함을 조율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는데, [궁합]엔 그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저희 가족은 [궁합]을 제법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여전히 이승기는 잘 생겼고, 여전히 심은경은 귀엽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인공이 매력적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요?
만약 사극영화의 묵직함을 기대하고 [궁합]을 본다면 실망할 것이고,
조선시대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기대감으로 [궁합]을 본다면 만족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궁합'이란 결혼후 노력하지 않으면 불행할 것이며,
아무리 나쁜 '궁합'이라도 서로서로 배려하여 노력한다면 행복할지니,
영화 [궁합]의 재미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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