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터 첼섬
주연 : 에이사 버터필드, 브릿 로버트슨, 게리 올드만, 칼라 구기노
개봉 : 2017년 3월 16일
관람 : 2017년 3월 18일
등급 : 12세 관람가
가끔은 뜻밖의 영화가 나를 즐겁게한다.
지난 주말, 제 기대작은 [미녀와 야수]와 [비정규직 특수요원]이었습니다. 이미 [미녀와 야수]는 일요일에 온가족이 함께 극장에서 보기로 결정했지만, 15세 관람가 등급인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혼자 보러가야할 처지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뒤늦게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의 개봉소식을 들은겁니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의 관람등급은 12세 관람가. 웅이와 함께 보기에 딱 알맞은 영화처럼 보였지만, 이미 일요일에 [미녀와 야수]를 보기로 한만큼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를 웅이와 함께 볼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였습니다. 구피는 제가 웅이와 너무 영화만본다고 잔소리를 해댔거든요.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토요일에 구피가 장모님과 봄 옷을 장만하기위한 쇼핑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피가 장모님과 쇼핑하는 사이, 저와 웅이는 근처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면 안되겠다고 슬그머니 물어봤는데, 왠일인지 구피가 선뜻 승낙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 쇼핑 덕분에 구피의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졌었던 듯. 역시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예정에도 없던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의 관람이 성사되었습니다. 사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는 북미에서 지난 2월 3일 개봉했지만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9위에 머무르는 등 흥행에 참패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을 크게 기대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휴고], [앤더스 게임],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남겼던 에이사 버터필드의 신작이고, 화성에서 태어난 소년과 지구 소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도 봄을 맞이하여 따뜻하고 달달한 영화를 찾던 제게 딱 알맞은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기대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화성 소년, 지구를 동경하며 성장하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는 화성이주 계획의 책임자인 나다니엘 셰퍼드(게리 올드만)의 감동적인 연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화성이주 계획을 위해 화성으로 떠나는 여섯명의 우주인들을 보여줍니다. 사라(자넷 몽고메리)를 중심으로한 여섯명의 우주인들은 수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미지의 행성 화성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화성으로 가던 중 사라의 임신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엄청난 비난을 의식한 셰퍼드는 사라의 임신사실을 일반인들에게 감춥니다. 그리고 사라는 아들을 낳고 사망합니다.
만약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임신을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는 뱃속의 태아에서부터 무중력에 노출된 아기의 골밀도와 심장인 지구의 중력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우주에서 사라의 뱃속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성장했고, 화성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된 소년 가드너(에이사 버터필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화성의 우주 기지 안에 갇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화성 이주 계획에 참여한 우주인들을 가족삼아서...
영화를 보기 전, 가드너의 출생의 비밀이 화성 이주를 위한 비인간적 실험에 의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는 그렇게 뻔한 음모 따위는 없습니다. 가드너가 태어난 것도, 그리고 가드너가 지구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가드너 입장에서는 결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가드너는 지구를 동경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화성 소년, 지구에 오다.
가드너는 화성의 우주 기지 안에서 16세가 됩니다. 16세가 되었다는 것은 가드너가 질풍노도의 시기, 즉 사춘기를 맞이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화성 기지안에서 자신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는 켄드라(칼라 구기노) 박사에게 반항을 하며 누구나 맞이하는 사춘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때 NASA에서는 가드너의 지구 송환을 결정합니다. 가드너가 그렇게 원했던 소원이 이루어졌지만, 셰퍼드는 가드너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영화에는 대부분의 영화에 등장하는 악역이 없습니다. 셰퍼드는 가드너의 안전을 위해 그를 화성에 가둬버리고, NASA는 언젠가 가드너의 존재가 드러날 경우 직면하게될 비난 여론이 두려워 가드너의 지구 송환을 결정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어른들의 결정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가드너는 그저 지구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울 따름입니다.
사춘기 소년 가드너가 지구에서 하고 싶은 것은 정확하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유일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를 찾는 것과, 화성에서 채팅을 통해 가까워진 지구 소녀 툴사(브릿 로버트슨)를 만나는 것. 가족과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가드너 입장에게는 가장 간절한 소원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가드너는 자신이 화성으로 되돌려 보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NASA에서 탈출을 감행합니다.
화성 소년, 사랑에 빠지다.
어쩌면 가드너와 툴사가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로 비슷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혼자 외톨이가 되어 화성 기지에 갇힌 가드너. 그에겐 켄드라와 화성의 우주인들이 가족 역할을 하지만, 그드너 입장에서는 그들은 진짜 가족이 아닌, 그저 가족인척하는 존재들일 뿐입니다. 툴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고아인 그녀는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해 가족인척 하는 어른들 틈에서 하루하루를 버틸 뿐입니다. 가드너와 툴사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른들에게 모든 결정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어른들을 향한 반항을 시작합니다. 가드너를 도와 그의 아빠를 찾는 여정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툴사. 두 사람은 둘만의 여행을 하며 사랑에 빠집니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의 중반은 이렇게 하이틴 로맨스물로 진행됩니다. 그러면서 가드너와 툴사의 뒤를 쫓는 셰퍼드와 캔드라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긴장감은 셰퍼드와 켄드라가 가드너와 툴사를 위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구의 중력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드너의 심장이 점점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가드너와 툴사의 순백의 사랑 만큼이나 영화는 아름답습니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를 연출한 피터 첼섬 감독은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담은 [세렌디피티]와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나는 런던의 정신과 의사의 여정을 담은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연출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에는 [세렌디피티]의 사랑과 [꾸뻬씨의 행복여행]의 로드 무비가 적절하게 혼합해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게 따스함을 안겨줬습니다.
지구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중력이 약한 화성에 태어난 까닭에 지구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가드너는 '내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지구가 날 받아주지 않아.'라며 외칩니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가드너에겐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가드너는 지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묻습니다. 셰퍼드는 비라고 대답합니다. 가드너의 출생을 비밀로 했던 셰퍼드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했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줄 수 있는 비를 지구에서 가자 좋아한다고 대답한 것은 그의 죄책감에 대한 표현입니다.
여러 위탁가정을 거쳤지만 진정한 가족을 만나지 못했던 툴사는 가드너의 질문에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드너라고 대답해줍니다. 그러한 그녀의 대답은 그녀가 가드너를 만나기 위해 우주인이 되기로 결심한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구에서 무엇이 가장 좋나요? 만약 가드너가 내게 그러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영화,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나를 흥분시키는 프로야구, 따스한 햇살, 그리고 달콤한 낮잠... 영화를 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구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도 많더군요.
가드너는 과다행복증에 걸렸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채 16년을 살아야했으며, 지구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고, 막상 지구에 왔지만 지구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상황과 마주친 가드너. 하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는 이렇게 과다행복증에 걸린 가드너처럼, 영화를 본 제게도 지구에서 산다는 것의 행복을 깨닫게해준 영화입니다.
과다행복증에 걸린 화성 소년을 통해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새삼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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