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그레이트 월] - 만리장성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보다 대규모 전투씬으로 승부하다.

쭈니-1 2017. 2. 21. 12:50

 

 

감독 : 장예모

주연 : 맷 데이먼, 페드로 파스칼, 윌렘 대포, 경첨, 유덕화

개봉 : 2017년 2월 15일

관람 : 2017년 2월 1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만리장성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력

 

기원전 220년 진시황은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통합된 방어 산성을 쌓기로 합니다. 그는 이전 시대에 구축된 몇몇 성벽을 연결시켜 재건시켰고 그것이 바로 만리장성입니다. 만리장성의 축조는 그 후 명나라 시대까지 계속되었는데, 무려 약 1,700년의 세월동안 건축된 셈입니다. 이렇게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할 수 있는 만리장성의 연장 길이는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km에 이른다고합니다.

유럽인들은 만리장성을 '중국의 성벽(Wall of China)' 혹은 '대성벽(Great Wall)'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주말 웅이와 함께 본 [그레이트 월]은 제목 그대로 만리장성을 무대로한 영화로 유럽의 용병 윌리엄(맷 데이먼)과 페로(페드로 파스칼)가 만리장성에서 겪게 되는 정체불명의 존재와의 기이한 전투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윌리엄과 페로는 소문처럼 떠도는 최강의 무기인 검은 가루(화약)를 찾기 위해 동방으로 탐험에 나섰는데, 그러한 와중에 만리장성에서 타오티에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생사를 건 전투를 벌이는 중국의 군대와 마주치게된 것입니다.   

제가 [그레이트 월]을 웅이와 함께 볼 영화로 점찍은 이유는 만리장성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력 때문입니다. 북방 민족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어마어마한 길이의 성벽을 세웠다는 만리장성에 대한 현실적 의의보다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세웠다는 상상이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타오티에...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실 저는 [그레이트 월]의 예고편에서 아주 살짝 등장한 인류를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용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설속의 동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용이야말로 중국인들이 만리장성을 세우며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려 했던 존재로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레이트 월]에서의 정체불명의 존재는 용이 아닌 타오티에라는 괴물입니다.

영화에서 타오티에는 우주에서 온 존재로 그려집니다. 어느날 운석이 지구에 떨어졌고, 그날 이후로 60년에 한번, 8일 동안 어마어마한 수의 타오티에가 인류를 공격한다는 설정입니다. 영화 속의 타오티에는 마치 개미나 벌처럼 여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모든 타오티에들은 여왕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타오티에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여왕을 죽여야 하는데, 강철보다 두꺼운 방어 피부를 가진 호위 타오티에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타오티에를 우리나라 말로 발음하면 도철(饕餮)이라고 부릅니다. 도철은 중국 신화 중에서 사흉()이라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네 마리의 괴물 중 하나입니다. 외모는 인간의 머리에 뿔이 있으며, 양의 몸에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고 호랑이처럼 송곳니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신화속 도철은 운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중국 서남쪽 황야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알려졌습니다. 엄청난 식욕으로 무엇든지 먹어치우면서 자기는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빼앗고, 강한 자에게는 굽신거리며 약한 자를 괴롭히는 성격이며, 고대의 제왕인 진운씨의 자손으로 영웅 순에 의해 서쪽으로 추방되었다고 전해진다고 하네요.

 

 

 

살기위해, 돈을 위해 싸우는 것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

 

[그레이트 월]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이 영화가 동서양의 만남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 자체가 미국과 중국의 합작이고, 중국의 대표적인 감독 장예모와 미국배우 맷 데이먼, 페드로 파스칼, 윌렘 대포 그리고 중국배우인 경첨과 유덕화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영화의 내용도 마찬가지인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검은 가루, 즉 화약을 찾기 위해 중국에 도착한 서양 용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의 만남을 소재로한 영화는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하여 충돌하는 설정이 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레이트 월]도 마찬가지입니다. 윌리엄은 어린시절부터 용병으로 키워진 전사입니다. 그는 살기 위해, 그리고 돈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웁니다. 그와는 달리 린 메이(경첨) 사령관은 윌리엄과 마찬가지로 어린시절부터 전사로 키워졌지만 그녀의 목적은 오로지 인류의 재앙과도 같은 타오티에를 막기위해서일 뿐입니다.

이러한 윌리엄과 린 메이의 차이는 동서양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양이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동양은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윌리엄은 남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린 메이는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서양이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의 정신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린 메이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결국 윌리엄과 동료의식을 갖게 됩니다. 

 

 

 

대규모 전투씬은 이 영화의 최고 볼거리

 

[그레이트 월]의 순수 제작비는 무려 1억5천만 달러라고합니다. 여름시장을 겨냥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천문학적 제작비를 들여 완성한 영화입니다. 그만큼 [그레이트 월]은 굉장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그 중 특수효과팀에 의해 12세기 당시 건축 방식을 따라 돌과 벽돌을 쌓고 그 틈에 흙을 채우는 방식으로 실제 성벽을 건축한 만리장성의 위용은 최고의 볼거리입니다. 게다가 만리장성을 지키는 중국 병사들의 호화로운 갑옷은 영화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하지만 가장 압권인 것은 타오티에가 만리장성을 습격하는 장면입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엄청난 수의 오크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영화를 보는 제게 오싹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외모는 영화 역사상 가장 끔찍한 외모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창조된 '에이리언'을 연상시키면서 [반지의 제왕]의 오크 부대, [월드워 Z]의 좀비떼와 같은 수적 우세로 공격을 감행하니 영화를 보는 내내 아찔하더군요.

게다가 '타오티에'는 지능도 높습니다. 만리장성을 공격해서 인간의 시선을 딴 곳으로 집중시키고, 정작 정예부대는 만리장성 밑에 굴을 파서 사람이 모여사는 도성을 공격하는 방식은 영화속 캐릭터중 최고의 두뇌를 자랑하는 왕(유덕화) 책사를 뛰어넘습니다. 그리하여 벌어진 중국 도성에서의 전투씬은 최소한 이 영화의 관람비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스펙타클한 재미를 안겨줍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상상력은 없다.

 

확실히 [그레이트 월]은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을 담은 영화를 집에서 조그만 TV로 감상한다면 영화적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제가 이 영화에 만족한 것은 아닙니다. [그레이트 월]에 스펙타클한 블록버스터적 재미는 느낄 수 있었지만 애초에 제가 이 영화에 기대했던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닌 만리장성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레이트 월]은 캐릭터 구축이 빈약합니다. 주인공인 윌리엄과 린 메이의 캐릭터 자체가 대충 그려져있고, 그들의 과거는 서로의 대화로 마무리됩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갑자기 마음을 바뀌 타오티에와 싸우기로 결심하는 윌리엄의 모습이 납득되지 않았고, 페로와 발라드(윌렘 대포)의 배신 이후에도 윌리엄에게 검은 가루를 가지고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는 린 메이의 모습도 영화 속 린 메이의 캐릭터와 맞지 않았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타오티에입니다. 분명 타오티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긴 하지만 결코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던 타오티에를 한꺼번에 무찌르는 마지막 장면은 서두르는 감도 있었습니다. 하긴 너무 크게 벌려놔서 그것을 마무리하기엔 러닝타임이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 초기 걸작으로 거장으로 자리잡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라면 좀 더 치밀한 영화 구성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그레이트 월]은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상상력은 부족한 영화였습니다.

 

모든 영화적 재미는 내가 무엇을 기대했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내가 [그레이트 월]에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거대한 스케일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가 재미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만리장성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력을 기대했고,

그것이 이 영화에 만족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