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8년 영화노트

8월의 크리스마스 ★★★★1/2

쭈니-1 2009. 12. 9. 15:09

 

 



날짜 1998년 7월 12일
감독 : 허진호
주연 : 한석규, 심은하

사진이라는 의미는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특이하다. 쉴새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것도 사진이며, 인간의 짧은 기억력 속에 추억을 보충해주는 것도 사진이다.(요즘은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개체가 더 많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사진은 잊혀졌던 추억, 보고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과거 속에 자신의 모습 등 너무나 많은 것을 담아 낼 수 있다.
허진호 감독은 그러한 사진의 의미를 모아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 '8월'과 '크리스마스'라는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갖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지은 이 제목은 이 영화의 느낌을 잘 설명해 부고 있다. 8월달에 지나간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는 듯한 기분'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인 것이다.
'8월'과 '크리스마스'라는 상반된 의미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허진호 감독은 "우연히 보게 된 가수 김광석의 영정 사진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떠올렸다. 사진 안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죽음을 떠올리면 괴롭다거나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음의 순간을 맞을 때 굉장히 평온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의 일상은 어떨까? 그 역시 가족이 있을테고, 친구도 있고, 일로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연애도 할 것 같고... 결국 죽음이란 이별의 과정인 것같다."라고 자신의 영화를 짧막하게 설명했다.
더 간단히 이 영화를 소개한다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어느 사진사의 짧은 사랑이 줄거리다. 97년 들어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멜로 영화의 흐름에 비춰본다면 어쩌면 매우 상업적이며 통속적인 소재일런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관객의 눈물샘을 작그하는 일련의 멜로 영화와는 다른 것을 표방한다. 허진호 감독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값싼 감상주의가 아닌 그의 연출변처럼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일상생황을 꾸밈없이 그리는 것 뿐이다.
이 영화엔 두 명의 남녀가 증장한다. 한명은 죽음을 앞둔 사진사 정원(한석규)이며, 또 한명은 발랄하고 명랑한 주차 단속원 다림(심은하)이다. 두 사람 모두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을 살아 가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사진이 주는 의미는 다르다.
정원에게 있어 사진이란 지나간 추억이며, 자신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여인의 학창시절 사진을 보물 다루듯 소중히 아까며, 마지막 사랑이었던 다림의 사진을 사진관 앞에 걸어둠으로해서 자신이 말로 전하지 못했던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정 사진을 스스로 찍으며 죽음을 준비한다. 그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거라곤 단 몇장의 사진뿐이다.
그에 비해 다림에게 있어서 사진의 의미는 그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지긋지긋한 수단일 뿐이다. 주차 위반을 한 사람들의 자동차를 찍어 증거품을 제시해야 하는 그녀에겐 사진이란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렇듯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어진 두 사람의 사랑은 영화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담담하다.(영화 속의 사랑은 비현실적이어야 재미있다.) 어쩌면 허진호 감독은 정원과 다림의 사랑에 별 관심이 없었을런지 모른다. 다림이라는 캐릭터는 정원의 짧은 인생 속에 잠시 스쳐가는 추억일런지도 모른다. 허진호 감독은 진정으로 이 영화가 단순한 멜로영화의 틀 속에 존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죽음을 앞둔 정원의 일상생활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다른 상업주의적 멜로영화 속에서 돋보인다. 주인공인 장원의 죽음을 클로즈업하지도 않고 정원과 다림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지도 않는다.
그렇게 이 영화는 극적인 재미나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이 영화는 신선하다.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이 영화가 별 다섯이 아닌 넷과 1/2인 이유는???
아마도 너무 현실적인 지루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상당히 비현실적인 영화를 즐기는 타입이거든요.
그래도 이 영화 개봉 당시 상당히 흥행에서 성공한 것을 보면 많은 분들이 저와는 취향이 많이 다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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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현실적인 지루함이라...

정말 좋은 영화였는데요, 저한테는^^
대사도 좋았는데...

왜 이런거 있잖아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영화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사투리가 정말로 절묘하게 표현되면 대개 웃기거나 재밌거든요, 그런 느낌하고 비슷했어요.

저도 잘 몰랐는데, 저는 '죽음'에 대한 표현에 깊은 인상을 갖는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인상에 남는 영화인 것 같네요. 멜로라고 하기엔 좀... 그냥 멜로를 포함한 영화? ㅎㅎ

저희 엄마 영정사진 찍을때 지켜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리기도 했답니다.
 2007/07/21   
쭈니 제겐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
그냥 멜로답지 않은 현실성이 지루하게 느껴졌는지도...
물론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데엔 이견없습니다. ^^;
 2007/07/22   
축구왕피구
보통 영화라는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즐길수 있는 이유가 리얼리티 때문이라면, 이 영화는 오히려 반대죠

철저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또 반대로 어이 없을 정도로 심심합니다 하지만 이정도로 영화를 본 뒤에 여운을 남길정도라면 얘기가 달라지죠..

전 극장보다도 비디오로 다시 본뒤에 많은 감동을 받았던거 같네요..ㅎㅎ
 2007/07/23   
쭈니 역시 다른 영화노트보다 이 영화에 덧글이 많이 달리는 군요.(아직 2개뿐이긴 하지만... ^^)
저도 비디오로 봤습니다만...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었다기 보다는 보고나서 참 좋은 영화다 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습니다.
 2007/07/23